초등학교 6학년 맑고 쾌청한 어느 날, 나의 독수리오형제는 날개가 꺾였다.
선풍기를 틀고 수업을 할 정도로 더위가 시작하던 날, 담임선생님은 장래희망이란 제목으로 글짓기를 해오라고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책읽기와 글쓰기는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숙제 중 단연 으뜸이어서 교실은 그야말로 아우성이었다. 가방을 챙기면서 툴툴거리는 아이들, 괜히 의자를 발로 툭 차는 아이들, 아아 하면서 머리를 쥐어뜯는 아이들, 아이들의 반응은 천차만별이었지만 의미는 한 길로 통했다. 하기 싫다, 였다. 나 역시 글짓기건 뭐건 숙제라면 딱 질색이라 다른 아이들처럼 발로 의자를 차지만 않았다 뿐이지, 오만상을 찡그리고 가방에 교과서를 아무렇게나 쑤셔 넣었다. 나는 책 읽는 걸 좋아해서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지만 담임선생님이 정해주는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오라고 하면 세상에서 제일 고역이 책읽기가 되었다. 차라리 일주일 동안 교실 바닥에 왁스칠을 하는 편이 더 나았다. 집에 가면서 숙제를 어떻게 안 할 수 있을까, 묘책을 생각했지만 딴 도리가 없었다. 담임선생님은 규칙과 원칙을 교육의 잣대로 여겼기 때문에 한번 내준 숙제는 절대 물리는 법이 없었고 숙제 검사를 반드시 했다. 어떨 때는 숙제 검사가 원칙을 실천하기 위한 것인지 아이들의 성실성을 파악하기 위한 것인지 분간하기 어렵기도 했다. 숙제를 제출하는 유효기한이 지나도 언젠가는 해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나의 생각은 저절로 어떻게 잘 쓸까? 라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었다. 장래희망이 없는 게 아니라 숙제가 하기 싫었던 거라 숙제를 하고자 하면 쉽게 할 수 있었다.
나는 그 당시에 로봇이 주인공인 만화영화에 푹 빠져 있었다. 주로 로보트태권브이, 마징가제트, 짱가, 독수리오형제였다. 만화영화에서 로봇은 인간처럼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을 했다. 로봇이 인간처럼 느끼고 생각해서 말을 하고, 인간처럼 움직이고, 사회악을 위해서 싸우는 모습은 나에게 그야말로 별나라 이야기였다. 만화영화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현실에서도 충분히 실현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어른이 되면 로봇을 만들고 싶었고 결심도 했다. 특히 독수리오형제에 심취해 있었는데, 남자 네 명과 여자 한 명으로 구성된 오형제가 분리되었다가 합체되는 모습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신선하고도 충격적으로 멋졌다. 그중에서도 홍일점인 백조 준은 나로 하여금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했다. 내가 준이 되어 다른 형제들과 합체하는 장면을 수십 번 수백 번 상상했다. 비록 상상이지만 합체하는 순간에 온몸에 전율이 일곤 했다. 게다가 준은 너무도 예뻐서 내가 준이 되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집에 와서 가방을 던져놓고는 뒹굴뒹굴하면서 책을 읽었다. 눈은 책에 두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숙제로 꽉 차 있었다. 안 되겠다 싶어서 책상 앞에 앉았다. 해야 한다와 하기 싫다 사이에서, 이성과 감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몸을 일단 일으켜 세우는 것까지는 성공을 했는데, 의자에 앉은 몸은 면벽의 상태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갈등을 휴지조각처럼 구겨서 버리고 나는 가위로 공책 한 장을 정갈하게 잘랐다. 백지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하고 드디어 장래희망에 대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장래희망이란 거창한 주제로 글을 쓰는 건 처음이라 그 순간은 사뭇 진지했다. 나중에 반드시 꿈을 이루겠다는 굳은 결의도 했다. 그리고 그리 되어 있는 나의 모습도 상상했다. 나의 장래희망은 인간처럼 말하고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로봇을 만드는 과학자가 되는 것입니다, 로 시작해서 열심히 공부해서 반드시 지구를 지키는 인조인간을 만드는 훌륭한 과학자가 될 것입니다, 로 끝나는 글짓기 숙제는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를 찍으며 끝났다. 물론 공책 한 장이 앞뒤로 꽉 찰 정도로 구구절절 사연이 많았다. 첫 문장을 쓰기 시작하자 연필에 날개가 달린 듯했다.
다음날 학교에 가서 당당하게 숙제를 제출했다. 아우성을 치고 툴툴거렸지만 아이들은 모두 숙제를 해 왔다. 선생님은 숙제 검사를 한 후에 내일 돌려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앞으로 인조인간이 만들어지면 이깟 글짓기 숙제도 알아서 척척 해 줄 것이고, 너무 하기 싫은 교실바닥 왁스칠도 인조인간이 다 하겠지라고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숙제를 제출한 다음날, 전날 글짓기 숙제를 낸 것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학교에 갔다. 하루를 어제와 별반 다를 것 없이 보내고 마지막 수업 시간이 되었다. 선생님은 어제 제출한 글짓기 숙제를 돌려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두 명의 숙제는 읽어주겠다고 했다. 선생님은 첫 번째 글짓기를 읽은 후에 잘 썼다고 칭찬했고 나중에 꼭 그렇게 되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 것을 읽었는데 나의 장래희망은 인간처럼 말하고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로봇을 만드는 것입니다, 로 시작하는 나의 글짓기였다. 다 읽고 나서 선생님은 이런 헛된 꿈은 꾸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사람처럼 말하고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로봇은 없고, 그런 세상은 오지 않는다고 했다. 로봇이 절대 인간을 대신할 수 없고, 공상은 공상일 뿐이고 현실성이 없고 허무맹랑하다고 했다. 그래도 자기 생각을 글로 잘 표현했고, 잘 썼다고 칭찬했다. 나는 그 순간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교실을 뛰쳐나가고 싶었고, 마음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나의 미래가 꺼져버렸고 나는 그런 헛된 꿈이나 꾸는 아이인가 싶었다. 선생님은 나의 꿈을 독한 바늘 끝으로 찔러서 터뜨려 버렸다. 그 이후부터 졸업할 때까지 나에게 6학년 시절은 암흑의 시대, 희망 제로의 시절, 학교 가는 게 지옥행 열차를 타러 가는 것보다 더 못하게 느껴지던 시절로 남았고, 선생님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이 마음에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큰 슬픔은 내 마음속에서 독수리오형제의 찬란한 날개가 꺾였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도 다행인 것은 선생님은 허무맹랑한 꿈이 누구의 꿈인지 밝히지 않았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숙제를 일일이 하얀 편지봉투에 담아서 돌려주었다는 것이다.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채로 집에 오면서 버려진 깡통도 발로 차고 돌멩이도 집어서 던졌다. 나는 자기 생각을 글로 잘 표현하고 잘 썼다는 선생님의 말을 덤으로 끼워주는 서비스 같은 말이라고 치부했고, 보석 같은 그 칭찬을 그때는 길에 널려있는 돌멩이 나부랭이로 여겼다.
그 일로 나는 더욱더 생각이 많은 아이가 되었고, 책을 더욱더 많이 읽었고, 과연 나는 과학자가 될 수 없는가에 대해서 고민하는 내용의 일기를 썼다. 그래서인지 내가 돌멩이 나부랭이처럼 버렸던 선생님의 칭찬이 마법을 부리 듯, 나는 중 고등학교 시절에 글만 쓰면 잘 쓴다는 칭찬을 들었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면서 6학년 담임선생님의 말이 틀렸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과학은 나날이 발전하고 최첨단 로봇들이 우리 삶을 윤택하고 편안하게 한다. 최첨단 기술의 혜택을 누리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선생님이 미래를 살아보지 않고 했던 확신에 찬 말이 얼마나 위험하고 한 아이의 미래까지도 뒤흔들었는지 깨달았기를 바란다는. 만약 선생님이 내 숙제를 읽어주었던 그때를 기억하고 있다면 나의 이름은 잊었겠지만 그 아이에게 조금은 미안하게 생각할까? 라고 생각하곤 했다. 나는 대한민국이 교사의 한마디 말 때문에 나라의 국력에 이바지할 과학자 한 명을 잃었다고 가끔 농담 삼아 말하곤 했다. 그러나 사실 선생님의 그 말이 내게는 전화위복이었다. 만화영화에 빠져서 성향에도 맞지 않는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과학 공부를 열심히 했다면 성적은 어찌어찌 잘 나왔더라도 나의 삶은 갈등의 연속이었을 것이고,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어렴풋한 동경으로 많은 시간을 낭비했을 것이다. 담임선생님은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은 없었는지 몰라도 제자의 성향이나 취향을 꿰뚫어 보는 혜안은 있었던 것 같다. 더운 여름 바람이 불던 날 6학년 교실에서 무너져 내렸던 내 마음은 책 읽기와 일기 쓰기로 재건되었고, 지금은 길이 아닌 길로 가지 않았음을 다행으로 여기며 눈부시게 발전한 과학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