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봄

by 윤인선


먼 훗날 그해 우리들의 봄은 죽었다, 라고 말할 것이다.

1월 초에 마카오를 다녀왔다. 그로부터 이 주쯤 지나고 서서히 전 세계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퍼져가는 소문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거대한 괴물이 물밑으로 스으윽 스으윽 지나가는 것 같았다. 형체 없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괴물이 정체를 드러낸 순간 두려움은 공포감으로 극대화되었다. 감염이 된 사람들은 확진자 1, 2, 3 으로 호명되었다. 호명되는 순간부터 그들의 삶은 송두리째 만천하에 드러났고 확진자라는 주홍 글씨가 등에 붙었다. 바이러스의 발원지인 중국의 한 도시는 통째로 폐쇄되었다. 사람들이 죽어 나갔고 시체가 불태워졌다. 영화에서 보던 바이러스 전쟁 장면이 떠올랐다. 세상이 멈췄고 일상도 멈췄다. 행여나 지나가는 사람과 옷깃이 스칠 때면 깜짝 놀랐고, 옆에서 기침 소리만 나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마트에 가도 살 것만 빠른 시간 내에 사서 사람들과 되도록 멀리 떨어져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 바로 손을 씻었는데 마트에 잠깐 다녀오는 동안에도 손은 소독제로 도배가 되어있었다. 출근하는 남편에게 "조심해. 손 꼭 씻고. 어딜 가도 마스크 벗지 말고." 이 세 문장이 인사말이 되었다. 아들은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되었다. 그래도 온라인으로 수업은 진행이 되어 공부하러 학교가 아닌 카페로 등교를 했다. 집 근처에 있는 카페에 가는 아들에게도 남편에게 하는 세 문장의 인사말이 반복되었다.

일상은 멈추었어도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때가 되면 꽃은 피고 졌다. 일상이 멈추니 자연이 돌아왔다. 올봄의 하늘은 미세먼지도 없이 유난히 맑고 높았다. 마치 가을 하늘처럼. 예년 같았으면 뉴스에서 어디 어디 꽃놀이가 한창이라고 나왔을 텐데 꽃놀이는커녕 동네 앞산에 가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반면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은 보란 듯이 화려한 자태를 드러냈다. 인간이 떠도는 섬처럼 고립된 것은 제발, 그만 괴롭히라는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일까? 낮에는 엄두가 나지 않아서 10시가 지나면 밤거리를 거의 매일 거닐었다. 아니, 헤매고 다녔다고 해야 할까. 낮에는 집안에 고립되었다가 어둠이 내리면 면죄부를 받은 양 돌아다녔다. 동네를 큰길부터 골목골목까지 걸어 다니면서 가로등 아래에 앉아 있기도 했고 하얗게 흩날리는 벚꽃 아래 앉아 있기도 했다. 다니다 보면 나와 같은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모두 마스크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서로에게서 멀리 떨어진 채 이리저리 걸어 다녔다. 떠도는 섬들이었다. 가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결코 이런 식은 아니었다. 일상에서 벗어남은 재충전의 의미가 있지만 고립은 다른 의미의 에너지 고갈이다. 몸은 편하지만 마음은 힘들고 지친다.

일도 두 달 동안 쉬게 되었다. 처음 며칠은 쉬니까 좋다, 게다가 일도 안 하는데 휴직 수당이라 이름 붙여진 급여가 나오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날수록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막연함이 밀려왔고 답답했다. 한동안은 눈만 뜨면 티브이를 켜 놓고 실시간 방송되는 상황을 지켜보며 혀를 차기도 했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확진자가 발생할 때마다 크게 공감하며 저런, 조심 좀 하지, 라며 청소를 하다가, 설거지를 하면서 혼잣말을 했다. 남아돌 줄 알았던 시간은 오전 10시, 오후 2시에 하는 코로나 브리핑을 기준으로 아침, 점심이 지났고 저녁을 준비하면 노을이 졌고 어느새 어둠이 내렸다. 과자를 한 개 한 개 빼먹다 보면 어느새 빈 봉지가 되는 하루였다. 거실을 서성거렸고, 베란다 창밖을 내다보았고, 주방과 통하는 다용도실 창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하루 종일 책을 잡고 있어도 하루에 단편소설 한 편을 읽기 힘든 날도 있었다. 그래도 읽자, 읽자 하며 책 읽기에라도 몰입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나날이었다. 뭐라도 쓰자고 노트북을 켜 놓았지만 하루 종일 한 문장을 간신히 쓸 때도 있었고 하얀 여백에 커서만 등대처럼 깜빡이던 날도 있었다. 밤거리를 걷기 시작한 이후로는 다행히 책도 읽혔고 비록 대수롭진 않아도 한 문장 두 문장 써지기 시작했다.

봄, 한 계절이 가는 동안 많은 것들이 변했다. 가족들과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외식보다는 집 밥을 해 먹었다. 또한 가족끼리도 같은 냄비에서 밥 먹던 숟가락으로 찌개를 떠먹지 않았다. 무엇보다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다. 사람끼리 너무 부대끼다 보니 본질이 왜곡되고 변질되었었는데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면서 타인을 이해하게 되었다. 너무 밀착되어 있어서 서로를 올바로 바라볼 수 없어 밀착된 부분이 곪아갔는데, 거리 두기를 하면서 상대방을 전신거울처럼 올바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심리적 거리 두기든, 사회적 거리 두기든, 인간과 자연이 너무 밀착되어 있었고, 인간과 인간이 너무 밀착되어 있었다. 발톱이 잘못 자라면 제 살을 파고 들어가듯 서로를 마주 보며 서로를 파먹어 들어가는 걸 몰랐다. 모든 관계에는 바람이 살랑거릴 틈이 있어야 관계가 건강하게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고, 무너지지 않는 튼튼한 관계의 집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찬란하지만 처절했던 봄이 가고 이제 여름이다. 생전 처음 경험하는 상황에 좌충우돌하던 사람들은 실체가 없는 공격자를 피하는 방법을 터득해서 자신을 지키고 있다. 봄이 가고 여름이 왔듯,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겨울도 올 것이다. 가을과 겨울이 어떤 모습으로 올지 그 세상의 일은 아직 모른다.

단지, 먼 훗날에 2020년의 봄이 떠오르면 인류에게 더 큰 재앙을 당하지 않게 하려는 자연의 섭리였다고 생각되었으면 한다. 그해 봄은 그랬었지,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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