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참했던 봄과 여름의 끝을 잡고 가을이 성큼 왔다. 선풍기나 에어컨 없이 창문을 열어 놓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시원하더니 어느새 아침저녁으론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베란다 문을 열면 집 안에 앉아서도 나뭇잎의 떨림으로 바람이 부는 걸 알 수 있고 나뭇잎의 손짓으로 바람의 방향도 알 수 있다. 은행나무에 은행들이 노랗고 말간 얼굴로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사람들도 저렇게 옹기종기 모여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마음껏 이야길 나누던 때가 있었다.
마음을 나눌 사람도, 공간도 허락되지 않던 시간을 견디니 선물 같은 가을이 왔다. 베란다 창을 꽉 채우고 있는 가을 잎들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친구였다. 뭐 하니? 그냥 있지. 수업 안 해? 응, 있었는데 없어졌어. 그럼 와. 지금? 어 지금. 그래. 친구의 한 마디에 후다닥 씻고 길을 나섰다. 동대 역까지는 길지 않은 노선이지만 두 번의 환승을 해야 했다. 남산 산책이 아니면 중간 지점의 카페에서 만나곤 했다. 그곳은 작지만 조용하고 분위기 있는 최고의 접전지였다. 이것도 저것도 필요 없이 단지 친구가 보고 싶고, 친구와의 수다가 필요할 땐 그랬다.
동대 역으로 갔다. 늘 그렇듯이 친구가 몸담고 있는 교내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남산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남산을 걷다 보면 우리가 다닌 여고가 있었다. 우리의 여고는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전을 해서 없지만 같은 장소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다른 학교들은 대부분 그대로 있었다.
동대 역에 내려서 계단을 올라가니 친구가 개찰구까지 내려와 있었다. 서로를 보며 크게 손을 흔들었다. 우리가 서로를 얼마나 목말라했는지 말 안 해도 알 수 있었다. 친구의 한 손에는 태극당 빵 봉지가 들려 있었다. 그건 왜? 나의 눈짓에 친구는 빵 봉지를 들어 보이며 어어, 아직 학교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가 없어서 샌드위치를 샀다고 했다. 학교로 올라가는 가파른 길이 매년 조금씩 힘에 부치더니 기어이 숨이 턱에 찼다. 나는 그렇다 치고 너는 거의 매일 오르면서도 숨이 턱에 차면 어쩌니. 그러게 말이야, 내가 너보다 한 살 많잖니. 우리는 친구의 연구실 앞 벤치에 앉아서 샌드위치와 친구가 준비해 온 커피를 먹고 마셨다. 하늘이 하늘색이었다. 구름도 없이 하늘색이었다.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있어야 제격인데 망망대해처럼 파랬다. 우리 얼굴 본 지 꽤 됐지? 응, 그런데 자주 카톡을 주고받으니까 어제 본 것 같네. 그러게. 우리는 거의 40년을 먹어 온 태극당 샌드위치 맛이 세월 따라 변했네, 안 변했네 따위를 주장하며 시시덕거렸다. 우리는 좀 더 젊었을 때 시시덕거리는 시간을 한심하게 여겼었다. 친구도 나도 앞만 보고 열심히 달리던 시절이었다. 스스로 짊어진 일들을 해내느라 하루 24시간이 항상 부족했던 나날이었다. 친구는 그 길을 계속 갔고, 나는 노선을 바꿨지만 선택한 길을 달리느라 바빴던 건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같은 길을 가다가 갈림길에서 각자의 길을 선택했을 때,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동경이나 미련은 없었다. 단지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었을 뿐이었다. 선택한 길의 끝에 잘 도달했는지 아직은 모른다. 좀 더 살아봐야 알 일이다.
이제 슬슬 걸어볼까? 그래. 우리는 남산으로 난 문을 통과해 사람들 속에 섞여 걷기 시작했다. 일상이 된 마스크를 쓴 사람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었다. 천천히 가을을 만끽하며 걸었는데도 어느새 남산서울타워가 눈앞에 나타났다. 지금은 레트로 시대라고 하는데, 레트로 식으로 표현하면 울긋불긋 총천연색이었다. 머리부터 노란 물감, 빨간 물감을 흩뿌려 놓은 듯 나무들은 가을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모처럼의 휴가를 맞은 듯 사람들이 꽤 많았다. 여기저기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고, 폰에 가을을 담느라 들뜬 표정들이었다. 우리도 가을을 배경으로 각자 한 컷, 둘이 한 컷 찍었다. 젊었을 때는 사진을 잘 안 찍었는데 이제는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는 생각에 어딜 가도 흔적을 남겼다. 요즘은 촌스럽게 알록달록한 게 좋더라. 거 있잖아, 시골 다방 앞에 매달려 있던 꼬마전구들의 알록달록 하던 불빛, 그게 요즘에는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 너도 그러니?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다시 길을 나서 유명한 드라마의 삼순이 계단을 내려와 우리가 다닌 여고가 있던 곳까지 왔다. 교문을 중심으로 위아래로 뻗어있는 가파른 길은 여전했다. 지각의 위기에 처한 아이들이 헉헉대며 뛰어 올라가던 길이었다. 뛰어 올라가는 아이들을 향해 학생주임 선생님이 지금부터 20명까지 통과고 나머지는 지각이다, 하고 소리를 지르는 순간 아이들은 죽기 살기로 달렸다. 죽기 살기로 달려도 달리기 능력에 따른 성패는 반드시 있어서 포기하는 아이들이 속출했고, 그 애들은 방과 후 화장실에 마대자루를 들고 나타났다. 체육시간에도 단체로 벌을 설 때면 삼순이 계단까지 뛰어갔다 와야 했는데, 선착순이었다. 물론 뛰어갔다 오든 걸어갔다 오든 그건 우리의 자유였다. 선생님도 그것까지 뭐라 하지 않았다. 걸어갔다 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들었고 벌의 효과가 있었으니까. 너도 기억나지? 교문 앞 오르막길을 보면서 묻자 친구도 당연히 기억난다고 했다. 그걸 어떻게 잊겠어. 우리들의 추억인데. 그래서 우리 여고 애들은 종아리에 알이 박혔잖니. 다리만 봐도 어느 여고 다니는지 안다고 옆 학교 애들이 그랬잖아. 맞아, 그랬었지.
부쩍 짧아진 해가 지고 있었다. 교문 앞에서 어느 쪽으로 내려갈까 잠시 생각하다가 명동역 쪽으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 내려오면서 보니 불과 몇 년 전에 왔었는데도 분위기가 더욱 바뀌어 있었다. 게스트 하우스가 많아졌고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많았다. 야자(야간자율학습)를 하다가 배가 고프면 찾아갔던 분식집은 이미 없어진 지 오래였다. 출출한데 뭐 좀 먹을까? 나이 들면 배고픈 거 못 참는다더니 샌드위치 먹고 걸었더니 배고프네. 나도 배고프다. 우리는 퍼시픽 호텔 근처 중국집에서 나는 우동을, 친구는 짬뽕을 먹었다. 커피를 테이크아웃해서 을지로 4가까지 하릴없이 거닐다가 5호선을 타고 아직도 어릴 때 살던 동네에 사는 친구는 청구역에서 내렸다. 건강하게 잘 지내고 또 봐. 그래, 건강하고, 톡 해. 지하철 문이 닫히고 지하철이 어두운 굴속으로 빨려 들어갈 때까지 친구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친구의 전화 한 통에 호사를 누린 하루였다. 호사의 대가로 다리는 뻐근했지만, 앞으로도 더욱 뻐근하겠지만 친구와의 동행은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이 소중했다. 39년을 가까이서, 때로는 멀리서 지켜 온 우리의 우정은 올해 더욱 빛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