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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래여울

by 윤인선 Mar 13. 2025



 얼마 전 일 때문에 가래여울에 들어가느라 마을버스를 탔다. 한적한 길을 달리는 마을버스 창밖으로 굴삭기, 대형트럭들 아래에서 만신창이가 된 밭 터가 보였다. 차마 볼 수가 없어서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반대편 창 밖, 그곳에 시간을 가늠할 수 없는 장면이 보였다. 평상에 앉아 다리를 흔들며 아이스크림을 먹는 아들과 캔커피를 손에 들고 있는 내가 있다. 

 가래여울은 서울의 동쪽 가장 끝자락에 있다.

 가래여울의 정확한 소속은 서울특별시 강동구 강일동이다. 그러니까 가래여울은 서울이다. 그러나 서울이 아닐 수도 있다. 강일동이 아파트단지인 강일지구로 재개발되어서 세련된 서울 새댁 같다면 가래여울은 첩에게 남편을 내주고 문간방으로 나앉은 본처 같다고나 할까.

 지금은 이미 이루어진 개발과 앞으로 이루어질 개발로 가래여울 초입까지 아파트촌과 아파트촌이 될 자리가 들어섰지만 십여 년 전에는 평범한 시골 마을 풍경이었다. 02번 마을버스를 타고 들어가는 길도 지금이야 포장되어 날렵하게 버스가 달리지만 그때는 포장도로이긴 했어도  먼지가 풀풀 날리는 시골길과 다를 바 없었다. 굴다리를 지나서 종점에 다다르면 마을이 있었는데 무허가 판잣집들이 낮게 깔려 있었다. 골목도 어른 한 명이 간신히 지나갈 정도로 좁아서 개미골목이라 불렀다. 마을에는 작은 슈퍼가 있었는데 그 앞에 마을을 굽어보는 키 큰 느티나무가 있었고, 그 아래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도 하고 쉬기도 하는 넓은 평상이 있었다. 

 아들이 다니던 유치원을 나서면 바로 마을버스 정거장이 있었다. 유치원으로 아들을 데리러 가는 날에는 정거장을 지나지 못하고 기어이 02번 마을버스를 타고 가래여울로 작은 여행을 했다. 

 느티나무 아래 평상에서 나는 캔커피를, 아들은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노라면,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노을의 붉은 기운이 온 마을을 뒤덮었다. 그때쯤 마을 아이들이 하나 둘 모여 하루의 남은 시간을 최선으로 즐겼다. 아들은 마을 아이들에게서 눈을 못 떼고, 마을 아이들은 아들의 아이스크림 묻은 입에서 눈을 못 떼다가 한바탕 같이 놀기도 했다. 

 어둑어둑 해지자 놀던 아이들도 하나 둘 개미골목으로 사라지고, 놀던 자리에 아들만 덩그마니 남아 있었다. 아들은 뒤를 돌아보고는 나를 향해 뛰어오며 우리도 집에 가자, 했다. 우리는 그렇게 작은 여행을 마치고 다시 02번 마을버스를 타고 길에 있는 엉덩이(아들은 과속방지턱을 그렇게 불렀다)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향하여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어느덧 마을버스는 종점에 섰다. 바로 옆 동네인데도 십여 년이 지나서야 다시 오니 마치 타임캡슐이 열린 것 같았다.  마을버스 종점은 그대로인데, 풀풀 날리던 먼지 사이로 판잣집과 개미골목은 사라지고 뛰어놀던 아이들의 웃음소리만 내 눈에 남아있다. 버스에서 내려 몇 걸음 가니 구멍가게가 반쯤 쓰러진 채 있었다. 목이라도 축이고 갈 요량으로 음료수를 사서 구멍가게 앞에 있는 파라솔 아래에 앉았다. 음료수를 마시며 천천히 둘러보니 마을 초입에는 백숙, 오리탕, 감자탕을 파는 감나무집, 배나무집, 은행나무집이 있었다. 

 집이란 게 가족이란 이름으로 맺어진 사람들이, 가족이 아니어도 가족 같은 정으로 맺어진 사람들이 편안하게 머무는 곳인데, 여기에 있는 감나무집, 배나무집, 은행나무집에서 밥을 먹으면 집에서처럼 편안하게 먹을 수 있겠구나, 그 시절 이 마을에 낮게 깔려 있던 판잣집들도 아이들에게는 뛰어놀다가도 해가 지면 돌아갈 편안한 집이었겠구나, 생각했다.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생각하며 하늘을 올려다보니 가게 앞에 서 있는 버드나무가 나를 굽어보았다. 마치 그 시절 키 큰 느티나무처럼. 그때 구멍가게에서 주인할머니가 나오더니 슬그머니 옆에 앉았다. 이곳에 무슨 볼 일로 왔나 궁금했는지 혼자 밥 먹으러 여기까지 온 건 아닐 거고 무슨 일로 여기까지 들어왔냐고, 여기 살던 사람들은 다 나가고 지금은 음식점을 하며 사는 몇 가구, 저 쪽에 사는 몇 가구, 하우스에서 농사지으며 사는 십 여 가구 말고는 없다고 했다. 그래도 반장이 있어서 반모임도 한다고 덧붙였다. 들으며 둘러보니 음식점 몇 군데 말고도, 저 쪽 단층 건물에 몇 가구가 모여 사는지 가스통이 줄줄이 보이고 그 옆으로 빨랫줄에서 빨래들이 깃발처럼 펄럭이고 있었다. 하우스에서 농사지으며 사는 사람을 만나러 왔다고 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하우스까지는 한 5분 정도 걸어야 할 거라는 할머니의 말을 뒤로하고 이름도 정다운 감나무집과 배나무집 사이로 나있는 골목을 지나 걸었다. 할머니 말대로 5분 정도 걸어가니 하우스들이 나타났다. 하우스를 양쪽으로 끼고 걸으며 생각했다. 굴삭기와 대형트럭들이 이곳까지 밀고 들어와 이곳마저도 세련된 서울 새댁 같은 아파트촌으로 만들어버릴 날은 얼마나 남았으며, 이곳 사람들은 또 어디로 가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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