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산 중턱에 있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내려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학교 정문이 있었고 거기부터 다시 가파른 오르막길이나 계단을 올라가야 학교 건물들이 있었다. 덕분에 아이들의 종아리에는 알통이 박혔다. 여학생들인 우리들에게는 이보다 더한 불평거리는 없었다. 학교 배정이 선택이 아니라 뺑뺑이였기에 인생은 운이라는 푸념까지 했던 기억이 있다.
체육 선생님은 학교의 지리적 악조건을 주로 벌주는 용도로 이용하였다. 복장 불량이나 꾀를 부리거나 정신훈련 등의 이유로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선착순 달리기를 시켰다. 학교 운동장에서 내리막을 내려가서 왼쪽으로 돌아 남산 길을 지나 삼순이 계단까지 뛰어갔다 오는 거였다. 뛰든 걷든 각자가 알아서 할 일이었지만 문제는 선착순이었다. 끝에서 다섯 명, 어떨 때는 두
명, 어떨 때는 열 명. 선착순에 걸린 아이들은 학교 곳곳에 배치되어 청소를 해야 했다. 나같이 운동이건 뭐건 몸 쓰는 일에 젬병이어서 선착순에 걸리는 멤버들이 있었다. 그런데도 체육 선생님에게 적의를 느끼는 아이들이 거의 없었다. 선착순은 악의 축이라고 불평을 했던 나도 체육 선생님에게 적의는 없었다. 그것은 그날 선생님의 모습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날도 체육 시간이 있어서 우리들은 운동장에서 무슨 운동인가를 하고 있었다. 체육 시간이 다음이 점심시간이어서 다들 허기가 져 있었다. 언제 종이 치나 하면서 흐느적거리며 운동을 하고 있을 때였다. 멀리서 종소리가 들려왔다. 체육 선생님은 항상 지니고 다니는 긴 막대기를 두 손으로 잡고 고개를 숙이고 종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그렇게 하고 계셨다. 그때는 정오였다. 그 모습이 아직도 내 마음에 남아있다. 아이들도 덩달아 조용하게 서 있거나 앉아 있거나 했다. 종소리는 명동 성당에서 울려오는 종소리였다. 그전에는 종소리를 듣지도 못했고 들었다 해도 관심이 없어서 흘려들었을 것이 분명한데 선생님의 모습을 본 이후로 종소리는 내 귀에 매일 들려왔다. 심지어 종소리가 기다려지는 날도 있었다. 정오에 들려오는 종소리.
인생에도 선착순이 있다면 나의 위치는 어디쯤일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열심히 사는 만큼 순위가 매겨진다면 참 좋겠지만 산다는 게 꼭 그렇지만은 않아서 각자의 역량만큼 사는 것 같다. 거기에 약간의 운도 있겠지. 하지만 운도 노력에 비례한다는 생각을 한다.
열심히 사는 것도 다양한 종류와 다양한 방법이 있다. 각자가 선택하기 나름이다. 정답은 없다.
오늘도 내 자리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많이 읽고 많이 사색하고 많이 쓰는 길로 가기로 했다.
지금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