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당신

by 윤인선

금이 할머니는 화요일이면 학교에 간다. 성당에서 운영하는 작은 학교이다. 여기에서 할머니들이 한글을 배운다. 교실 앞에는 직사각형인 초록색 나무판에 한글학교라고 쓰여 있다. 할머니들은 평생을 자신들의 문맹이 드러날까 눈치 보며 살았다. 주민 센터에서, 은행에서, 글을 읽고 쓰는 일이 필요한 상황이면 혹시라도 아는 사람들이 있을까 봐 주변을 둘러보았다. 세상 눈치를 보는 거였다.

금이 할머니 집에는 벽에 농협에서 준 커다란 달력이 걸려 있는데, 매주 화요일에 빨간 동그라미를 그려 놓았다. 금이 학생, 이 글자가 화예요. 화요일 할 때 화, 알았지요? 은영이 반복해서 알려주었다. 알아요, 알아요, 화, 학교 가는 날. 금이 할머니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은영은 한글학교 선생님이다. 은영은 학생들 집에 가정방문을 가곤 했다. 말이 가정방문이지 결석을 연달아하는 할머니에게 무슨 일이 있나 알아보는 거였다. 빨간 동그라미도 결석한 금이 할머니 집에 방문했을 때 그려 놓은 거였다. 달력 옆에는 화이트보드가 있는데 글자들이 삐뚤빼뚤 쓰여 있다. 쓰기 연습을 할 때 고개를 숙여야 해서 머리도 아프고 눈도 아프다고 해서 칠판에도 쓰라며 금이 할머니의 딸이 사다 주었다. 딸이 금이 할머니 손을 꼭 잡고 물었다.

우리 엄마, 한글 배우면 누구한테 제일 먼저 편지할 거야?

당연히 내 딸 너지. 그거 있잖아. 핸드폰으로 보내는 거.

엄마, 그거 문자라고 해.

응, 문자 보낼 거야.


금이는 육이오 전에 태어나서 다섯 살에 전쟁이 끝났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던 시절이었다. 전란에 고아가 안 된 것만도 다행으로 알라고 할머니가 금이에게만 늘 말했다. 그래서 그런 줄 알고 살았다. 아버지는 멀리 돈 벌러 가고 엄마는 동네 온갖 잡일을 하느라 금이를 보살필 틈이 없었다. 금이는 하루 종일 할머니와 둘이 지내면서 할머니가 시키는 심부름을 했고, 더 자라서는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 마을 아이들이 나이가 차서 책보를 사선으로 메고 학교에 가도, 세 살 터울인 오빠가 학교에 가도 그런 줄 알고 살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알았다. 그런 줄 알고 살면 안 되었던 걸. 이름도 읽고 쓸 줄 몰랐던 금이는 남편에게 글자를 배워서 간신히 이름 석 자는 그림 그리듯이 쓰게 되었지만 살기 바빠 모르면 모르는 대로 하루하루 살아졌다. 남편과 장사를 하며 눈에 익은 글자들이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엄마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금이가 우편물을 뚫어지게 쳐다보면 눈치 빠른 딸이 일부러 큰 소리로 발신처를 읽었다. 고등학생이던 딸이 엄마도 글을 배우라고 말한 적이 있었지만 새벽부터 밤까지 장사하느라 몇 년이 훌쩍 갔다. 뭉텅이로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은 자라서 제 갈 길로 갔다. 남편도 몇 년 전 세상을 뜨고 금이는 혼자 남았다. 아이들이 자주 연락하고 찾아와도 혼자인 시간이 더 많았다. 그럴 때면 장사를 그만두고 다니기 시작한 성당에 갔다. 아프거나 폭우나 폭설이 아니면 매일 갔다. 성당에 다니면서 소원이 생겼다. 글을 배워서 성경을 읽고 싶었다. 또래 할머니들이 안경을 코에 받쳐 쓰고 성경을 읽고 쓰는 모습이 부러웠다. 신부님 말씀이 좋은 날에는 더욱 글을 배우고 싶었다. 어느 일요일 성당 로비에서 자매들이 한글학교 학생을 모집한다고 크게 말했다. 하지만 아무도 다가가지 않았다. 금이는 귀가 번쩍했지만 다가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때 젊은 자매가 다가가더니 이것저것 물었다. 본인은 아닐 거고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알아보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 모습을 보다가 어디에서 용기가 솟았는지 성큼성큼 다가갔다.

글 배우고 싶어요.


한글학교에 가던 날이 금이 할머니가 새로 태어난 날이었다. 신부님의 배려로 성당 교리실에 마련된 작은 학교이지만 금이 할머니에게는 학생이라고 불린 첫 학교였다.

이금이 학생.

네, 선생님.

모두 할머니들인 열 명의 학생들은 책상 위에 책과 공책과 연필과 지우개를 가지런히 놓았다. 다들 희망에 들뜬 밝은 표정이었다. 은영이 칠판에 김 은 영이라고 썼다.

학생 여러분, 선생님 이름이에요. 김 은 영. 다 같이 따라 해 보세요.

김 은 영.

열 명의 학생들은 큰 소리로 따라 했다.

금이 할머니는 더디지만 열심히 했다. 신부님이 말하는 성경구절을 찾아서 더듬더듬 읽을 수 있었다. 두 글자를 배우면 한 글자를 잊어버렸지만 글자들이 금이 할머니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한 글자 한 글자 배우면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것 같았다. 한 눈으로만 보다가 두 눈을 뜬 것처럼 세상이 훤히 보였다. 못 보았던 것들을 글로 볼 수 있게 되었다.

하느니미 보시기에 참 조앗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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