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것을 좋아한다.
주변을 둘러보며 걷기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걷기도 하고, 생각할 거리가 있을 때는 곰곰이 생각하며 걷기도 하고, 기도를 하며 걷기도 한다.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었다. 볼 일이 있어서 을지로 입구에 가던 날이었다. 약속을 정한 일이 아니어서 급할 건 없었다. 을지로 4가에서 내려 을지로 입구까지 지하도를 따라 걸었다. 한참을 걸어가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낯선 곳이었다. 다시 찬찬히 둘러보니 낯선 듯 낯설지 않은 그곳은 시청역이었다. 을지로 입구를 지나 시청역까지 갔던 거였다. 다행히 약속 시간을 정한 일이 아니었다. 같은 길로 되돌아가자니 심심해서 역 밖으로 나왔다. 화창한 날씨에 갓 돋아난 여린 나뭇잎들이 햇빛에 빛났다. 을지로입구역을 향해 날씨를 음미하면서 천천히 걸었다. 사람들의 얇아진 옷차림, 부드럽게 찰랑거리는 햇빛, 사람들의 희망에 찬 표정과 발걸음... 이런 것들이 보였고 느껴졌다.
걷기는 초스피드 시대의 흐름과는 다른 방향이다. 버스 타고 10분이면 갈 곳을 굳이 40분 걸려서 걸어간다. 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걷기라면 속도를 내서 걸어야겠지만 일상에서의 걷기는 내 보폭으로 내 페이스대로 걷는다. 사람들은 그날이 그날이라는 말을 한다. 듣기만 해도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 사는 게 그날이 그날이라면 매일 시간을 내서 걸어보세요,라고 적극 권유하고 싶다. 천천히 걸으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들리지 않던 소리들이 들리니 걸어보세요. 교차로에서 아슬아슬하게 우회전을 하는 자동차, 지나쳐가는 사람의 한숨소리 또는 기쁨에 벅찬 숨소리, 유아차에서 잠든 아기들의 천진한 표정, 산책 나온 강아지들의 눈빛,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소리, 하다못해 미세먼지까지도 세세하게 느껴진다. 분명히 그날이 그날이 아닌고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오늘과 내일은 또 다를 것이다.
내일은 무슨 일이 있을까. 내 안에 나는 또 어떤 마음과 어떤 생각을 할까?
잠자리에서 이런 생각을 하며 잠에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