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최애로 꼽는 세 가지 음식 중의 하나가 빙수이다.
빙수 중에서도 단연 원톱은 팥빙수이다.
그것도 옛날 팥빙수이다.
어린 시절 땡볕 여름 한낮에
빙수 가게 앞을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더위가 식혀졌다.
하늘색 팥빙수 기계는 흡사 재봉틀과도 비슷했다.
팥빙수 기계 위에 얼음을 넣고
아래에는 커다란 그릇을 놓고
손잡이를 돌리면 드르륵드르륵 소리가 나며
마술처럼 갈린 얼음이 사르륵사르륵 내려왔다.
어린 시절 엄마 따라 시장에 갔을 때 먹어보긴 했을 텐데
그 맛에 대한 기억은 없다.
팥빙수 맛의 첫 기억은 고등학교 때이다.
학교 앞에 있던 분식집에서 7월과 8월에만 팥빙수를 팔았다.
지금으로 보면 계절메뉴였다.
우리는 직사각형 종이에 매직으로 쓴 팥빙수를 글자로만 보다가
한번 먹어보자고 했다.
다들 라면, 김밥, 쫄면으로 배가 부르니
맛만 보자며 네 명이서 한 그릇을 시켰다.
팥빙수를 기다리며
누구는 팥빙수를 먹었던 경험을 이야기했고,
누구는 먹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팥빙수 맛에 대한 기억이 없는 1인으로 팥빙수를 기다렸다.
얼음 가는 소리가 드르륵드르륵 나더니 조금 후에 드디어 팥빙수가 나왔다.
한 겨울 눈밭처럼 곱게 갈린 얼음 위에
미숫가루, 연유, 팥, 알록달록한 정사각형 젤리가 차례대로 소복이 올려져 있었다.
먹어본 친구가 팥빙수는 이렇게 다 섞어서 먹는 거라며 얼음과 토핑들을 섞으려고 했다.
아아, 잠깐만. 섞기 전에 한 숟가락만 먹어볼게.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가진 토핑들을 한 번에 다 섞어버리는 건
너무하다(폭력)는 생각이 들었다.
높게 쌓인 팥빙수 토핑들을 무너지지 않게 조심히 골고루 숟가락으로 떠먹었다.
첫맛은 각각의 토핑들 맛이 느껴졌고
조금 후에는 녹은 얼음과 토핑들이 섞인 맛이 느껴졌다.
팥빙수를 다 섞으려다 기다려준 친구는 아무튼 특이하다며 이제 됐냐? 며
숟가락을 푹 넣어 팥빙수 탑이 무너지지 않게 경험자다운 스킬로 잘 섞었다.
우리들은 걸쭉하게 섞인 팥빙수를
와 시원하다. 달다. 고소하다 등의 평가를 하며 먹었다.
네 개의 숟가락이 몇 번 왔다 갔다 한 후에 그릇은 바닥을 드러냈고.
마지막으로 경험자 스킬로 팥빙수를 잘 섞은 친구가 그릇을 들고 마셨다.
성인이 된 후에는 여름의 최애 음식 세 가지 중 하나인 팥빙수를 자주 먹는다.
어느 해에는 팥빙수를 사 먹는 돈이 아깝기도 하고
먹고 싶을 때 먹겠다는 의지로 팥빙수 기계를 산 적이 있었다.
결국에는 몇 번 해 먹다가 팥빙수 기계는 필요한 사람에게 주고
먹고 싶을 때 사 먹고 있다.
요즘에는 다양한 종류의 빙수가 있다.
팥빙수에도 여러 가지 버전이 있다.
그렇지만 뭐니 뭐니 해도 빙수계의 원톱은 팥빙수이고
팥빙수 중에서도 원톱은 오리지널 옛날 팥빙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