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창신동으로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오래전 친구가 창신동에서 자취를 했다.
친구의 자취방은 허름한 아파트의 방 한 칸이었다.
아파트는 방 두 개가 나란히 정면을 향해 있고 방 앞에 길게 쪽마루가 있는 구조였다.
그 아파트는 아직도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지하철 동대문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고 낙산 삼거리에서 하차했다.
종점은 낙산공원이지만 삼거리에서 내려도 공원까지 걸어서 일이 분 거리였다.
낙산 공원에는 한양도성을 중심으로 창신동 이화동 동숭동이 있었다.
동숭동은 이화동이 되었다고 했다.
한양도성에 서서 대학로를 내려다보았다.
음악소리와 사람들의 와글와글 하는 소리가 섞여서 두루뭉술하게 들려왔다.
한 끗 차이로 이쪽과 저쪽의 분위기는 달랐다.
오래전 낙산 종점에는 아주 작은 시장이 있었다.
지금은 낙산 공원인 자리에 층마다 공동 화장실이 있는
동숭 아파트가 있었다.
종점에 있는 작은 시장은 주로 그곳에 사는 주민들이 이용하였다.
시장이라고 해야 좌판 몇 개가 다였지만
종점에서 내리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요긴했다.
대학로로 향하는 비탈길에 비디오대여점과 목욕탕도 있었다.
동숭 아파트 사람들은 작은 마을을 이루고 그날의 행복을 누리며 살았다.
지금 그들은 어디에 흩어져 살고 있을까.
옛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보는데
한 무리의 관광객들이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한양도성을 따라 걸어오고 있었다.
영어를 사용하는 가이드는 한국인인 것 같았다.
저녁 6시가 넘어가는 시간이어서 더위가 서서히 가라앉았고
대학로에서는 화려한 불빛이 올라오고 있었고
낙산 공원에도 가로등이 켜지고 있었고
낙산 삼거리에도 가로등이 켜지고 있었다.
서울의 아름다운 저녁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관광객들은 놀라운 눈빛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낙산을 뒤로하고 창신동 골목시장으로 내려가는 방향인
절벽마을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 내려갔다.
내려가는 동안 어둠이 슬그머니 내려앉았다.
내리막길 양옆으로 가늘고 긴 골목들이 아래쪽으로 구불구불 나 있었다.
가파른 길이 가파른 인생길 같았다.
동네 사람들이 나와 앉아 있기도 했는데 외국인 가족들도 꽤 있었다.
창신동에는 네팔 거리와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가 있는데
아마도 그래서 창신동에는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것 같았다.
경사가 심해서 발가락에 힘을 주고 걸어서인지 다 내려오니 발가락 열 개가 얼얼했다.
창신동 골목 시장은 동남아 어느 나라에 와 있는 착각이 들게 했다.
베트남, 인도, 네팔의 음식점과 식료품점들이 즐비했고
한국말과 동남아 말들이 뒤섞여 들렸다.
창신동은 몇십 년 전과 다른 모습이기도, 여전한 모습이기도 했다.
여러 가지 모습이 공존하는 창신동은 스펙터클 하고 다이내믹한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