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빵

by 윤인선

동네 삼거리에 십 여 미터 간격으로 빵집이 네 곳이나 있다.

한 곳은 뚜로 시작하는 기업 프랜차이즈 빵집이고 나머지 세 곳은 주 종목이 다르다.

한 곳은 식빵 전문점이고, 또 한 곳은 치아바타와 바게트 전문점이고,

나머지 한 곳은 다양한 샌드위치 전문점이다.


워낙 빵을 좋아해서 길을 가다가 어디선가 공기 중에 퍼져오는 빵 냄새를 맡으면

저절로 냄새나는 쪽으로 고개가 돌려진다.

빵 중에서도 최애의 빵은 촘촘하게 밀도가 높은 빵과 꾸민 맛이 없는 빵이다.

가령 스콘, 베이글, 프레첼, 식빵, 치아바타와 같은.


빵에 대한 기억 중 가장 오래된 빵은 식빵이다.

어릴 때 동네에 제일 제과점이 있었다. 온갖 빵을 파는 유일한 제과점이었다.

빵을 좋아하는 엄마 덕분에 아주 어릴 때부터 빵맛을 알았는데 그 맛은 식빵의 맛이었다.

갓 구운 따뜻하고 자르지 않은 식빵은 탐스러웠다.

특히 볼록하게 올라온 식빵의 등을 검지로 살며시 만지면 거친 듯, 조금이라도 힘을 주면 바삭하고 부서질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눈총을 받으면서도 갈색으로 바삭하고 고소한 윗부분을 떼어먹었다.

지금은 눈총을 받을 일이 없어 맘 놓고 먹고 싶은 부위부터 야금야금 떼어먹는다.


건강을 지켜야 할 나이가 되어 건강에 해로운 식습관을 하나하나 바로잡아 가는데

빵과의 이별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굳건한 결심을 해도 사방에서 보이는 빵집의 고귀한 자태에 결심은 하루를 못 버티고 무너지고 만다. 다시 굳건한 결심을 하고 하루하루를 버티던 어느 날인가는 빵집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빵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서 있기도 했다. 마치 성냥팔이 소녀처럼.


초등학교(국민학교) 5학년 때였다.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데, 하교 후에 다시 학교에 갔었다.

교실로 가려고 옆 반을 지나는데 작은 웃음소리가 났고, 고소한 냄새가 넘실댔다.

저절로 옆 반 교실 앞에 걸음이 멈추었다. 담임선생님과 옆 반 선생님이 환한 미소와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며 뭔가를 먹고 있었다. 기척을 느낀 담임선생님이 돌아보고 깜짝 놀랐다.

다가와서 손을 잡아준 담임선생님에게 이끌려 두 선생님 사이에 앉았다.

책상 위에는 집에서 보았던 식빵과 우유 두 컵이 있었다.

선생님은 컵을 가지고 와서 우유를 따라주며 빵을 이렇게 떼어서 우유에 살짝 담가서 먹으라고 했다. 머뭇거리다가 손을 내밀어 빵을 조금 떼면서 ‘이거 식빵이죠? 집에서 먹어봤어요.’ 정확하게 이 표현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말했다. 어색한 마음을 감추려고 잘난 체한 거였다. 그때 우유에 살짝 담갔다 먹은 식빵의 맛은 앞으로도 머리와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 맛은 선생님이 잡아주었던 손의 감촉만큼, 씹지 않고도 삼킬 수 있을 정도로 물렁했고 부드러웠다.

지금도 마음이 지치고 거칠어지려고 할 때, 식빵을 우유에 담갔다 먹는다.

우유가 스민 식빵은 그때 두 선생님의 온화함에 가 닿아서 마음이 서서히 수그러든다.

오늘도 동네 삼거리에 있는 빵집 네 곳을 지나갈 것이다.

빵은 스쳐 지나가지만 해도 마음이 절로 둥둥 떠다니게 하는 그런 것이다.

특히 식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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