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릿하게 세상 보기

by 윤인선

눈이 아주 좋았었다. 지금은 아니라는 말이다.

일찌감치 노안이 왔다.

지금은 노안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눈이 안 좋아져서

가까운 것도 먼 것도 다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의사는 노안경 외에 안경을 하나 더 쓰라고 강력하게 말했다.

아니면 수술을 하라고 했다.

아직 수술까지는 아닌데 정 안경을 안 쓰겠다면, 이라는 말과 함께.

그래서 안경이 두 개다.

가까운 것을 볼 때 쓰는 돋보기와 일상생활을 할 때 쓰는 안경.

안경을 쓰니 겹쳐 보이고 흐릿하게 보이던 세상이 아주 선명하게 보였다.

분명하고 선명하게 보이니 세상이 내게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 같았다.

그런데 한두 번 안경을 쓰고 나니 슬며시 불편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세상이 너무 선명하게 보여서 불편한 마음이었다.

굳이 선명하게 안 봐도 될 것까지 너무 정확하고 선명하게 보였다.

모임 하는 곳에서 안경을 썼다가 깜짝 놀라 얼른 벗은 적이 있었다.

사람들의 얼굴에 있는 잔주름이 어디로 흘러내리는지,

그들의 눈동자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눈동자의 미세한 흔들림도,

다른 사람을 보는 그들의 표정의 미세한 변화까지,

다른 사람의 말 한마디에 흔들리는 그들의 감정까지,

너무 다 보여서 정작 내 눈을 둘 데가 없었다.

이후로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안경을 잘 안 쓴다.

때로는 세상을 좀 흐릿하게 봐도 되지 않을까!

흐릿하게 보고, 대충 넘어갈 건 넘어가고, 모른 척할 건 모른 척하고,

그래도 세상 사는데 큰일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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