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에 등산을 즐겨했고 주말이면 산에 가곤 했다.
등산 가방이 항상 챙겨져 있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까지 일을 한 후에 가방을 메고 떠났다.
예봉산에 갔을 때의 일이다.
예봉산은 서울과 아주 가깝고 적당한 높이에 험하지 않아
반나절이면 다녀올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날도 등산을 함께 다니는 친구와 열심히 오르고 올랐다.
정상을 찍고(그때는 정상에 올라야 한다는 강박 같은 생각이 있었다.)
잠시 쉬다가 하산을 했다.
분명히 올라간 길로 다시 내려오는데 이상한 기운이 감돌았다.
산속으로 점점 깊이 빠져 들어가는 것 같았다.
나무들이 굵어졌고 발밑에는 넝쿨이 깊이를 알 수 없어서 발을 내딛기 두려웠다.
하늘이 가려져 어둠이 내린 것 같았고
넘어질까 봐 짚은 나무에는 손가락 굵기의 송충이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방향 감각을 잃은 우리는 앞으로만 걸었다.
이상하게도 어느새 그 자리에 와 있기를 몇 차례 반복했다.
분명히 예봉산은 조난을 당할만한 산이 아니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멀리서 자동차 소리도 들리고 민가의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친구도 분명히 자동차 소리를 들은 것 같다고 했다.
우리는 잠시 서서 정신을 가다듬고 물길을 찾아 따라가기로 했다.
얼마 걷지 않아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물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냅다 뛰었다.
계곡이었다.
그런데 동시에 개 짖는 소리도 들렸다.
우리는 우두커니 서서 마주 보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둡던 하늘과 습한 기운은 온데간데없고 쾌청하고 맑은 하늘이
우리의 머리 위에 있었다.
민가가 멀지 않았다는 안도보다는
뭔가에 홀렸었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쳤다.
어쨌거나 우리는 곧 민가를 만났고
근처 식당에서 한숨을 돌리고 칼국수를 먹었다.
아직까지도 예봉산의 깊은 곳에서 나무를 짚다가
만진 커다란 송충이의 꿈틀거림이 손에 남아있다.
살면서 앞에서 뒤에서 옆에서 날아오는 돌멩이를 피하느라
정신이 혼미해질 때가 있었다.
여기가 어디이고, 과연 나는 누구인지를 놓칠 정도로 삶이 힘들 때가 있었다.
삶의 방향을 잃었을 때
예봉산의 그날이 떠오르곤 하는데,
돌고 돌다 결국에는 제 길을 찾아서 갈 것이다,라는 말이
내 안의 어디에선가 울려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