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의 죽음

by 윤인선

12년 함께 산 토끼가 죽었다.


며칠 전부터 밥을 잘 먹지 않았다는 걸 인지했을 때는 이미 죽은 후였다.


오전에 출근하기 전 베란다에 빨래도 널고 토끼집도 살펴보았다.

토끼가 유난히 코를 내밀고 앞발을 들어 창살에 매달렸다.

토끼 얼굴이 창살에 눌릴 정도였다.

밥을 더 달라는 건가 싶어 밥그릇을 보았는데 밥은 그대로였다.

물을 달라는 건가 싶어 물그릇도 보았는데 물도 거의 그대로였다.

문을 열어달라는 건가 싶어 저녁에 열어주겠다고 했다.

이상하게도 토끼의 눈빛이 애절하다 싶었다.


퇴근을 한 후에 아침의 토끼 모습이 떠올랐다.

베란다로 나가 토끼를 보았더니

앞다리와 뒷다리까지 온몸을 길게 뻗고 옆으로 누워 자고 있었다.

할 일을 하며 두 시간을 보냈다.

어두워질 무렵 빨래를 걷으러 베란다로 나갔다.

빨래를 걷으며 토끼를 보았는데,

두 시간 전의 자세와 같은 자세로 누워 있었다.

순간 몸이 덜덜 떨려왔다.

아! 자는 게 아니구나.

어떡하지, 어떡하지.

아침에 평소와 달랐던 토끼의 모습은 오래 못 버틴다, 는 신호였다.

마지막이라는 신호였다.

그러니 마지막 인사를 하자는 신호였다.

미안하고 무서워서 몸은 여전히 떨렸고 눈물이 났다.

토끼의 신호를 눈치채지 못한 미안함에서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했다.


주변을 둘러보면 삶이 힘든 순간에 신호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어떠한 형태로든 신호는 있다.

다만 알아채지 못하거나 모른 체하는 것뿐이다.

바빠서, 귀찮아서, 오지랖 소리 듣기 싫어서, 휘말리고 싶지 않아서

등의 이유로 스쳐 지나간다.


자연의 미세한 변화도 놓칠 때가 있다.

꼭 다물어진 꽃봉오리였는데

한 시간 지나고 보면 꽃봉오리가 몇 밀리 열려있고

또 한 시간 지나고 보면 꽃봉오리가 또 몇 밀리 열려있다.

아름다움을 선물해 주는 꽃 한 송이가 피어나려면

매초마다 꽃은 얼마나 힘을 들이고 공을 들이는지 알아채야 한다.

그렇게 핀 꽃이 아름다움을 선물로 주고

언제 어떻게 지는지 알아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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