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Rutherford, New Jersey
베이글, 시작이 좋았고 사연과 노력이 더해졌고 지금도 좋아한다
뉴헤이븐에 있는 남편 후배의 본가로 초대받았다.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이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것은 예일대학만이 아니다. 1600년대 초반 런던의 청교도들이 천로역정 끝에 닻을 내리고 정착한 역사로도 유명한 곳이다. 당일치기로 다녀오기에 적절한 거리였고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온 선조가 만들었다는 그의 집을 볼 수 있는 기회 앞에 망설이지 않았다.
WASP의 후예들이 만든 집들로 이루어진 마을이었다. 담벼락에는 그 집이 지어진 연도가 각각 새겨져 있었다. 우리가 그날 방문한 집은 고색창연하였으나 '늙은' 집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보수하고 개량하여 흐르는 세월과 발을 맞추어 걸어온 집이었다. 늘 '현대적'인 집이었다. 중력과 세월의 먼지를 완곡하고도 완벽히 따돌린 집이었다. 몇백 년 전의 조상이 마무리한 규모에서 별로 더하지 않은 크기의 집에는 평안과 편리의 기운이 그득했다. 긴 역사 동안 잠시라도 사람이 살지 않은 적이 없었다는 그 집은 사람의 손길과 사랑을 아낌없이 받아온 티를 집 안팎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오래되거나 새 것인 가구와 집기 그리고 식기들은 홀로도 빛났고 더불어서도 빛났다.
몇 년 뒤 로드아일랜드의 뉴포트에서 천문학적인 재산을 아낌없이 쏟아부은 미국 대부호들의 저택들을 보았다. 그곳 저택들의 규모와 화려함은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화들짝 놀랄 정도였다. 이제 더 이상 놀랄 일이 없겠지 하다가 그다음 저택에 들어가서는 또 한대 꽝, 그다음에도 꽝꽝꽝이었다. 그러나, 미국 역대 대통령들의 여름 별장들이라는 권위와 밴더빌트나 아스터 집안의 막대한 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뉴포트의 어느 저택보다도 뉴헤이븐의 그 작은 집이 매력적이었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정의에서 뉴헤이븐의 그 '늙고', '작은'집보다 더 사랑스럽고 살아 보고픈 집을 그때도 지금도 나는 보지 못했다.
뉴헤이븐의 볼거리 몇 군데와 그 집의 가업인 장미농원을 둘러보고 나니 저녁식사시간이 되었다. 후배의 어머니께서 준비하신 저녁 식탁 자리에 앉았다.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의 식탁은 우리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날 뉴헤이븐의 집에서 우리 모두는 맛있게, 많이 먹었다. 그러나, 뉴헤이븐 여행 후,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 저녁 음식 중에서 내 혀와 기억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 것은 오로지 베이글이다. 그날 내가 먹은 것은 그저 크림치즈와 마스카포네 치즈의 중간 어디쯤의 부드럽고 밍밍한 치즈를 슬쩍 바른 베이글이었다.
최근 드라마 '멜로가 체질이다'에 극 중 인물인 손범수 감독과 임진주 작가가 함께 평양냉면을 먹는 장면이 있다.
- 평냉을 처음 먹는다는 진주 작가의 말에 범수 감독은 '이 맛있는 것'을 먹지 않고 살아온 세월이 아까우니 이제부터라도 많이 먹으라고 말한다. '평냉'을 먹고 나서 진주 작가는 '도대체 이게 무슨 맛이냐, 니맛도 내 맛도 나지 않는다'라고 평한다. 범수 작가가 '바로 그거다, 아무 맛도 나지 앉는다 그런데, 아마 빠르면 오늘 저녁, 아 평냉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솟구칠 것이며 조만간 이 자리에서 다시 평냉을 먹게 될 것이다'라고 예측한다. 정말 그렇게 된다. - 대충 정리하자면 '평냉'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이러하다.
'멜로가 체질이다'에서 말하는 '평냉'의 맛, 그 맛이 1988년, 뉴헤이븐에서 내가 처음 맛본 베이글의 맛이었다.
지금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거나 내가 만들어 먹고 있는 베이글과 달리 설탕이나 버터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맛이었다. 뉴헤이븐의 베이글은 '이것은 빵인가 서양 수제비 반죽인가?'라는 의문이 드는 맛이었다. 베이글을 한입 베어 입에 넣고는 한참을 오물거린 후 목젖 뒤로 넘긴다. 바로 그때 우리가 흔히 빵에게 기대하는 고소함이 느껴질랑 말랑한다, 그러나 이내 사라진다. 감질이 나서 급히 한입 더 베어 문다. 역시 고소함은 약 올리듯 느껴질 듯 말듯할 뿐이다. 빵에 대해 조금 알고 난 지금 생각해보면 뉴헤이븐의 베이글은 오로지 밀가루, 물, 약간의 소금과 이스트를 세월이 건네준 배합으로 빚어낸 맛이었다. 장식과 기교를 배제하고 민낯을 드러내는 빵이었다. 베이글을 처음 먹은 날은 몰랐다, 그 민낯의 진가를.
뉴헤이븐에 다녀온 다음 월요일 출근길, 뉴요커들이 커피와 함께 손에 든 빵, 베이글이 내 눈에 들어왔다. 가까운 델리에 들어가 베이글을 주문했다. 그 당시 뉴욕에 지금의 커피전문점만큼이나 많았던 '델리'는 빵, 커피, 팩에 포장된 샐러드 등 가벼운 먹을거리를 파는 곳이었다. 주문을 받으면 베이글 위에 버터를 듬뿍 발라 그릴에 굽는다. 고소하고 따뜻한 버터가 베이글의 내부에 침투하고 한편으론 겉표면을 따라 질질질 흐른다. 그릴에서 꺼낸 베이글은 손님의 주문에 따라 기름종이에 싸서 딸기잼 또는 블루베리잼을 발라준다. 이런 타입의 베이글에는 연하고 어마 무시하게 뜨거운 '커피'가 제 짝이었다. 이것이 내가 맨해튼에서 일하던 1987년에서 1991년, 뉴요커들이 사랑하던 베이글이었다. 뉴 헤이븐에 가지 전까지는 보고도 못 보았고 먹어볼 생각도 하지 못했던 99센트짜리 'Bagle & coffee'가 그날부터 하루에 한 번 꼭 먹는 아침식사가 되었다. 베이글을 베어 물고, 입천장을 데어가며 커피를 마시는 출근길이 거듭되자 한국인치고도 작은 편인 내 키에는 택도 없이 높았던 뉴요커들의 키와 코, 그리고 그들의 문화 장벽이 성큼 내려왔다.
1996년 귀국 후 베이글을 먹을 기회를 갖지 못했다. 시중에서 베이글을 쉬이 구할 수 없었고 어렵사리 찾아서 먹고 싶을 만큼 안달을 낼 정도도 아니었다. 10년 만에 돌아온 모국에는 베이글 말고도 맛난 것 천지였다. 세월이 한참 흘렀다. 언제부턴가 베이글이라는 빵이 사람들의 입과 빵집 매대 위에 올랐다. 강남 갔던 제비를 맞이하는 기분으로 빵집에서 베이글을 사 먹었다. 내 혀가 기억하는 맛이 아니었다. 빵집에서 사 온 베이글위에 스프레드나 토핑을 이리저리 바꾸어도 보았다. 내가 아는 '뉴 헤이븐의 맛에서 오히려 멀어졌다.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마음먹었다. 베이킹 스튜디오에 가서 베이글 만드는 법을 전문적으로 배웠다. 그것도 내가 기억하는 맛이 아니었다. 구글링도 하고 블로그나 유튜브에서 레시피를 얻어 만들어 보기도 했다. 뉴욕 스타일 베이글도 배우고 일본 스타일의 베이글도 배웠다. 여전히 내 가슴이 기억하는 맛이 아니었다. 바깥에서 배우기를 중단했다. 나혼자 집에서, 재료의 배합이나 반죽-발효-휴식-발효-데치기-굽기의 과정 중 각 부분들을 조금씩 바꾸어 보았다. 실패가 쌓였다. 이미 갖고 있던 레시피들을 수정하거나 버렸다. '전설적인 FM'인 나에게 이러한 여러차례의 '실험'들은 역사적인 행위이다.
아직도 나는 뉴헤이븐의 맛을 찾아가는 과정 중에 있다. 최근 유튜브에 올라온 베이글 만들기 영상 하나를 지금 주목 중이다. 여드름이나 뾰루지가 더 이상 괴롭히지 않는 이 나이가 되고 보니 희망이라든가 욕망으로 가슴이 들끓는 일이 드물다. 그러나 뉴헤이븐의 베이글 맛을 찾아가는 '욕망'은 결코 꺼트리고 싶지 않다.
* WASP : 백인, 앵글로-색슨, 개신교도(White Anglo-Saxon Protest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