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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라우디아 Aug 01. 2020

그동안 즐거웠어 2

브루투스 너마저





집 알아보는 건?





내 국을 떠서 식탁에 앉으며 아들에게 물었다. 머리를 맞대고 앉아 밥 한 숟가락에 그냥 한 이야기, 반찬 한 젓가락에 저냥 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보통의 날들처럼 무심코 던진 말이었다. 아들이 어떤 동네에서 어느 정도 규모의 집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하며 나열하는 동네 이름 중에 '안양'이란 단어가 나왔다. 내 목구멍 톨게이트를 통과해 막 식도로 진입하던 밥알이 급정거했다.




"뭐 뭐 뭐 안양? 거기가 어딘데? 거긴 어떻게 가는데?"

"사당역에서 안양 가는 교통편 있어요. 우리 동네는 집값이 만만치 않아요."

"뭐 뭐 사당? 사당? 거기는 또 어떻게 가는데?"




음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아들이 사는 집을 찾아가는 나를 상상했었다. '으이고, 청소 좀 하고 다니지. 으이구 음식쓰레기는 제때제때 버려야 냄새가 안나지'라고 구시렁대며 아들의 집을 이 잡듯이 구석구석 쓸고 닦는 나를 그렸었다. '냉장고에 새 반찬 갖다 놓았다. 저번에 갖다 놓은 반찬 그대로더라, 내가 도루 갖고 간다, 그건"이라고 아들에게 전화하는 나를 상상했었다. 그런데, 안양이라니, 머리에 짐을 이고 지고, 한 번도 가볼 생각도, 가본 적도 없는 그 '먼 곳'을 어떻게 가라고.




아들들의 '거친' 독립생활과 그걸 지켜보는 '불안한 눈빛'의 엄마들을 보여주는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를 구태여 떠올릴 필요도 없다. 딸이건 아들이건 따로 사는 자식 집에 김치와 반찬 보따리를 이고 지고 찾아가는 엄마들이 바로 내 엄마들이었다. 그 '사랑'의 유전자를 장착한 나도 시어머님과 친정어머님, 두 분께 받은 바가 그러했고 그래서 학습이 아주 잘되어 있었다. 오호! 드디어 이제 내 차례가 왔군!이라고 생각했었다, 자연스럽게.




['그래도 음... 가도 되냐고, 허락은 구하고 아들 집을 찾아가야겠지?, 암만,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현관 비밀번호를 묻는 건 실례일까? 아니 아니 아니야 울 아들은 그런 거 개의치 않을 거야 암만. 국이나 찌개를 들고 가면서 국물이 흐르면 어떡하지? 밀폐력이 좋은 반찬통을 사야겠어. 포스코 정품으로 만든 스텐 밀폐용기, 음 그게 좋겠어. 내 앞치마는 두 개쯤 갖다 놓아야지. 가만있어보자... 다림질하려면... 내가 쓰던 다리미, 그게 손에 촤악 감기고 좋은데, 하나 사다 놓을까? 출근하는데 바빠 아침을 건너뛰며 안될 텐데, 간단히 먹을 수 있게 베이글도 많이 구워다 놓아야겠군. 크림치즈는 보관기간이 짧은데 한꺼번에 많이 사다 놓으면 안 되겠지? 아들에게 갈 때마다 신선한 것으로다가 하나씩 사다 놓아야지. 누룽지도 만들어서 갖다 놓아야지, 그러면 국을 따로 덥히지 않고 반찬만으로 훌렁훌렁 넘길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좋아하는 소고기 전& 편채는 어떡하지? 만든 자리에서 먹어야 신선하고 맛있는데, 음. 집에 올 때마다 해주는 수밖에 없겠군. 익은 김치는 질색팔색이니 김치는 조금씩 퍼다 날라야 겠어.’ 나는 아주 그냥 대하소설을 썼었다, 누구도 채택하지도, 읽지도 않을 소설을.]





큰 아들이 모든 베이커리 중에 제일 좋아하는 플레인 베이글과 플레인 크림치즈






한 끼 먹기에 알맞은 크기로 만들어 쟁여두는 누룽지



소고기를 먹는 101가지 방법 중 아들이 제일 좋아하는 소고기 전& 편채





"거기 사당인지 안양인지, 하아, 거기를 나더러 어떻게 가라고?"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와중에도 밥상머리인지라 목소리와 분노를 한껏 낮추어 물었다. "엄마가 왜 오시려고요?" "당신이 거길 왜 가려고?" 아들과 남편이 동시에 내게 물었다. 이 와중에 부자간의 찌찌뽕이라니. 남편과 아들의 '당연한' 이구동성에 나는 일단 숨 고르기를 했다. 내가, 내 생각이 잘못이로구나 이번 판은,  나는 느꼈다. 감정을 숨기는데 젬병인 내 얼굴에는 '안양'이 할퀴고 간 '마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아들이 나를 힐긋 쳐다본다. 남편은 이쪽으로 힐긋 나를, 저쪽으로 힐긋 아들을 쳐다본다. 아들과 나의 '거칠고 불안한' 신경전을 보던 남편이 아들의 손을 잡고 높이 들었다, 늘 그랬듯이 군더더기가 없는 말로, "네가 가고 싶은 데로, 네가 하고 싶은 데로 해. 독립한다는 게 그런 거지."




심하게 늦둥이인 나는 태어나길 위가 약했고 조금이라도 신경에 스크래치가 나면 체하는지라 어김없이 문제의 그 저녁식사자리에서 체했고 한 달 동안 명치끝을 누르며 체기를 다스렸다. 그날 저녁부터 한 달 동안 나는 삐쳐있었다. '그래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네가 이렇게 엄마와의 끈을 싹둑 자른다 이거지. 나라고 가만있진 않겠어. 좋아, 내가 어디 찾아가나 봐라. 네가 어디 사는지 주소도 안 물어볼 거야. 언젠가는 엄마 반찬이 그립겠지? 흥 꿈도 꾸지 마. 어림 반푼 어치도 없어 그럼, 그럼. 사 먹어! 요즘은 만들어 파는 반찬도 많다던데, 대기업도 반찬시장에서 대활약이라던데. 그래 그렇게 맛있는 거 골고루 입맛대로 사 먹으면 되겠네 뭐, 흥!' 혼자 소설을 쓰고 또 썼지만 '안양'이라는 불쏘시개가 지핀 내 가슴속의 불길은 쉬이 꺼지지 않았다.




문득, 아들이 '자유'의 집을 얻기 위해 필요한 '독립군자금'을 떠올렸다. 남편과 내가 합의하고 아들에게 약속한 그 '돈'을 좀 깎을까?라는 생각을 잠시, 아주 잠깐 했다. 너무 화딱지가 나서 잠시 이성을 잃은 몇 초였다. 부모로서, 어른으로서 대단히 '꼰데스럽고 비열한 생각'을 했던 그 2~3초를 떠올리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래 좋아 나도 쿨하게 보내주겠어. 누구보다도 어떤 부모보다도 멋있게, 쌈빡하게 보내주겠어. 너의 독립에 관해 잔소리는 한 음 절도 보태지 않겠어. 강 건너, 바다 건너, 우주 멀리 불구경 보듯 하겠어. 그리고 집에서 독립하는 날, 집을 떠나가는 날 딱 한마디만 하겠어, '그동안 즐거웠어 잘 가'




평생 쿨하지 못했고, 관계에 있어 시종일관 질척거리는데 있어서 대가인 내가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쿨하게 아들을 보내는 장면을 상상했다. 그렇게도 '멋진' 나를 생각하노라니  비로소 '안양'이라는 단어가 내 맘속에 지핀 '화병'이 사그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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