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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라우디아 Sep 02. 2020

그동안 즐거웠어 4

십일조

큰아들이 취직하고 난 후 첫 월급부터 지금까지 매달 용돈을 받고 있다.





a 엄마, 얼마면 돼?

b 니가 알아서 죠.

a 에이, 내가 알아서 줬다가 엄마 섭섭하면 안 되지, 얼마면 돼?

b 에긍, 주는 데로 받을게, 니가 주는 용돈으로 집을 살 것도 아니고 논밭을 살 것도 아닌데, 그냥 용돈인데, 걍 알아서 죠.

a 아냐, 그래도 말해줘. 내 생각에는 적당했는데 엄마 생각이 적당하지 않으면? 앙대요 앙대 그건 안대요, 얼마면 돼?





원빈도 아니고, 참나, 아들은 '얼마면 돼?'로 '용돈 액수 주제가를 불렀다. 속에는 전광석화처럼 빠른 치타 성품이 들어앉아 있는데, 겉으로는 나무늘보의 이종사촌쯤 되는 듯이 찬찬한 행동의 아들은 나에게 줄 용돈 액수를 섣불리 말하지 않고 '얼마면 돼'라며 줄곧 ‘간'을 보았다. 며칠 동안 탐색과 모색만 거듭하다가 급기야, 서로 생각하는 액수를 하나, 둘, 셋 하면 동시에 톡으로 보내자고 아들이 의견을 내놓았다.




30만 원 달라고 할까? 하아, 이제 월급 타면, 아빠와 엄마 빨간 내복도 사야 하고,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취직턱도 내야 하고, 지 동생 용돈도 줘야 하고, 하아, 쓸 곳이 많을 텐데, 20만 원? 아냐 아냐 넘 많아, 15만 원? 아냐 숫자가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잖아, 10만 원? 흠.... 5만 원? 에게게게 누구 코에 붙이려고, 지 옷들 드라이클리닝 비용도 안 나오겠네. 10만 원이 좋겠어. 그 정도면 뭐 아들이 용돈 줬다고 친구들하고 한 번씩 밥이나 먹지 뭐. 맘속으로 10만원으로 낙찰을 보고 나는 심호흡을 하고 카톡창을 열고 아들과의 대화방에 들어갔다.




하나아아, 두우울, 세에엣! 파팍! 카톡창에 '10'이라는 숫자 두개가 동시에 떴다. 아들도 10, 나도 10이라고. 이렇게나 절묘한 찌찌뽕이라니. 그런데 찌찌뽕에 흔히 뒤따라오는 희열이 느껴지지 않았다. 흠, 구뢔에? 너는 엄마 용돈으로 '꼴랑' 10만 원'밖'에 생각하지 않았단 거지? 나는 널 생각해서 많이 줄였는데, 니가 더 준다고 하면 내가 아니냐 아니 그러면서 줄여줄 생각이었는데, 넌 '겨우' 10만 원, 칫 그걸 누구 코에 붙이려고. 니가 발 벗고 뛰어봐라, 부모 맘을 따라오나, 힝,칫. 나는 누군가의 코에 붙일 돈을 5만 원에서 갑자기 10만 원으로 올린 스스로의 모순을 생각지 못한 체 맘속으로 '섭섭한' 소설을 썼다. 한편 아들은, 10이라는 '찌찌뽕'에 몹시 기쁘다는 듯 이빨이 쏟아지라 웃고 있었다.




a 엄마도 그렇게 생각한 거야? 다행이다, 엄마가 생각한 액수랑 내가 생각한 거랑 같아서 다행이야. 그럼 세금이니 이것저것 다 떼고 월급 통장에 찍히는 숫자의 10프로, 오케이? 결정된 거야.

b 뭐, 뭐, 10프로, 10만 원이 아니고?

a 잉? 10만 원? 아니 내 월급의 10프로, 엄마, 십일조 있잖아 십일조. 엄마 용돈으로 내 월급 10프로, 통장으로 쏠게. 아라찌!




나는 얼른 돌아섰다, 얼굴이 화끈거려서. 헉, 이게 바로 골든 크로스인가, 이제 나의 육신은 늙고 심보는 작아지고, 아들의 맘은, 도량은 어느새 이렇게 커졌나! 헉. 이렇게 조금은 부끄럽고 고마운 맘으로 받던 '십일조 용돈'을 이번에 아들이 독립하면서 갱신했다. 이번엔 내가 먼저 자진해서 액수를 내렸다. "이제 혼자 살아봐라, 이것저것, 그것 저것 할 것 없이 죄다 돈이다, 내가 많이 깎아 줄게, 그동안도 고마웠어. 이제 20십만 원만 줘, 너 적금도 몇 개 인 것 같던데, 엄마는 그 정도면 충분해.""엄마 그래도.." 아들은 머리와 눈을 데구루루 굴리면서, 안도와 동시에 미안한 맘으로 말끝을 흐렸다.




대신 한 달에 한번 수제버거 만남을 갖기로 했다, 물론 아들이 쏘는 거로. 코엑스 사거리의 '크라이 버거', 혜화의 '버거 파크', 여의도와 충무로의 '바스 버거', 여의도의 '브루클린 버거 조인트'와 광화문의 '쉑쉑 버거'들이 아들과 내가 주로 찾는 버거 집들이다. 한 달에 한번 이들 버거집 중 한 곳에서 아들이 쏘는 점심 먹기가 용돈 액수 재 조정과 함께 두 번째로 결정된 사항이다. 아들과 내가 동시에 좋아하는 브랜드 '코스'의 독일과 미국 직구 시 발생하는 세금과 택배비 분담도 계속 동일하게 적용하기로 했다.





코엑스 사거리의 '크라이 버거'







광화문의 '쉑쉑 버거'






여의도 '바스 버거'






혜화동 '버거 파크'






버거집에서 한 달에 한번 점심, '코스'직구 시 비용 분담, 그리고 매달 용돈 20만 원, 이 세 가지가 아들이 독립할 때 나와 합의한 내용이다. 이 외에는 각자도생 하자, 그동안 즐거웠다, 오다가다 만나자!






...... 라는 것이 결의안이었는데, 아들은 여전히 월급통장에 찍히는 액수의 10분의 1을 나에게 보낸다. 십일조는 지금도 유효하다. 






동경 긴자의 '코스'






큰아들 드레스룸






표지 사진 : 충무로 ‘바스 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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