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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라우디아 Sep 11. 2021

구기동에서 10

수렵인과 채집인 1





남편과 나는 많이 다르다.

 




정치색을 비롯한 몇 가지를 제외하면 남편과 나는 공통점이 거의 없다. 남편과 나는 다르구나, 달라도 이렇게나 다르구나를 깨달은 것은 신혼초부터였다. 내가 결혼했을 당시의 혼수 중에는 특정 색상으로 만든 두꺼운 솜이불과 원앙 한쌍을 수놓은 배게가 포함되었었다. 덮고 자다가 밤사이 질식사할까 겁이 날 정도로 요와 이불은 두텁고 무거웠다. 어느 날 아침, 남편에게 이불 좀 개 주세요라고 새댁답게 수줍게 부탁했다.  




저녁에 또 덮고 잘 건데 이불은 왜 개냐고 답하는 남편의 얼굴은 정말이지 순진무구 그 자체였다. 그 대답으로 깨달았다, 아 이 사람과 나는 다르다.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침대에 누워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며 서서히 잠에서 빠져나오는 편이다. 눈을 뜨면 벌떡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는 남편은 나에게 말한다, '침대는 눈을 감고 자는 곳이지, 눈을 뜨고 버두덩대는 곳이 아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수시로 소파에 누워 눈을 감았다가 책을 봤다가 그도 저도 아니면 멍도 때리는 나를 보고 남편은 말한다, 소파는 앉아 있는 곳이지, 누워 있는 곳이 아니다.' 나는 목적지로 가는 버스를 30분이건 1시간이건 제자리에서 서서 꼼작 않고 기다릴 수 있다. 단 몇 분을 기다리지 않고 목적지로 가는 다른 방법을 재빨리 모색하는 남편은 식성 또한, 물론, 나와는 아주 다르다. 과자를 보면 '으이구 설탕 덩어리' 하고 몸을 부르르 떠는 남편에게 햄버거와 콜라로 한 끼를 때운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특히 콜라는 마치 장희빈이 사약을 대하듯 온 얼굴의 근육을 쓰며, 온몸의 힘줄을 불끈거리며 거부한다, 저 시커먼 액체를 어찌 사람의 목구멍으로 넘길 수가 있단 말인가라며.  




삼시 세 끼를 제시간의 오차범위 내에서 먹는 남편과 달리 나는 군것질도 좋아하고 수시로 뭔가를 찹찹 거리며 먹는다. 식사 중 한 끼를 과자와 우유로 때워도 좋고 샌드위치 또는 햄버거와 콜라의 조합이라면 정말이지 땡큐 땡큐인 나는 그런 욕구를 친구나 아들들과 해소해왔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왔다.




이제껏 남편은 늘 저녁 약속이 많았기에 아침만, 혹은 아침과 저녁식사만 준비해왔던 생활방식이 하루아침에 바뀌었다. 재택근무가 빈번해지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저녁 약속들이 줄어들더니 그마저 없어졌다. 이는 내가 하루 삼시 세 끼를, 즉 '돌밥 (돌아서면 밥)'을 짓게 되었다는 뜻이다.















내가 만든 빵, 사과, 올리브유에 구운 토마토, 나또, 요구르트와 삶은 계란 등으로 먹던 아침식사는 코로나19 이전과 같았다. 나머지 두 끼 중 한 번은 찌개나 국과 밥, 그리고 반찬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집밥을 준비했다. 남은 한끼 또한 집밥을 먹기에는 식재료 공급도 버거웠고, 우선 내가 먹기에 지겨워서 고기나 물고기에 야채를 곁들인 '원 플레이트 푸드'를 준비했다, 스테이크 샐러드 또는 야채 듬뿍 집어넣은 새우 감바스 같은.




 











그런데, 좋은 노래도 한두 번이고 꽃구경도 두어 번이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 19가, 재택근무가, 몇 달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났다. 마침내 해도 넘기게 되자 남편과의 '진솔한' 소통으로 재택근무 시에는 하루 두 끼로 합의를 보았다. 몇십 년 동안 당연한 듯 먹어온 삼시 세 끼가 두 끼로 바뀌자 고인물에 물꼬가 트이듯 내 생각이 자유분방해졌다, 나는 용감무쌍해졌다.




남편을 꼬드겼다. 광화문의 쉑쉑 버거에서 햄버거로 저녁을 먹고 광화문에서 청운동 초입까지 따릉이를 타는 것을 콘텐츠로 한 회유 작전을 시작했다. "햄버거가 그래 봬도 '완전' 식품이다, 패티가 고기이고 나름 야채도 있고 토마토도 있다. 콜라가 싫으면 당신이 좋아하는 맥주와 같이 먹으면 된다, 저저번에 글쎄 쉑쉑에 갔는데 어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마주 보고 앉아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드시더라, 매장 전체에 우글거리는 젊은이들 한가운데에서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자연스레 앉아계시는 그 두 분을 보니 참 멋있어 보이더라. 버거집 바로 앞에는 따릉이 거치대도 있다, 따릉 따릉 따따릉 한 바퀴 두 바퀴 세바퀴 맘껏 돌다가 당신이 원한다면 2차로 맥주를 내가 쏘겠다. 경복궁역 우리 단골집에서 IPA 두 잔까지 내가 확실히 쏘겠다, 안주로 먹태도 시키겠다."









광화문 쉑쉑 버거에서 자그마치 저녁식사로 남편과 함께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먹었다. 치즈를 녹인 감자튀김은 내 입천장에 착착 달라붙었고, 내 혀는 마구마구 구름 위에서 뛰놀았다. 콜라에 빨대를 꽂고 주욱주욱 힘껏 들이켰다. 속이 뻥 뚤렸다.. 정말이지 햄버거와 콜라의 콜라보는 견우와 직녀, 로미오와 줄리엣에 버금가는, 인류가 낳은 위대한 환상의 한쌍이다. 또 다른 어떤 자유를 향한 초대장인 이날 저녁 영수증을 고이 모셨다.













역사의 한 획을 굵직하게 긋는 햄버거 데이날, 남편과 나는 경복궁역 단골 맥주집에서 2차를 했다. 남편은 평소 즐겨마시던 IPA를 벌컥벌컥 들이키며 목구멍과 식도와 위장에 남은 햄버거 끼니의 기억을 싸그리 씻어내리는 듯했다. 가늘가늘하고 고소한 먹태가 소복히 올라앉은 접시를 넌지시 남편 쪽으로 밀며 나는 물었다, "햄버거 데이 일 년에 두 번?"




먹태를 쥔 남편의 손이 사시나무 떨리듯하더니 손가락 사이로 먹태가 주룩 흘렀다. 남편이 말했다, 으으응, 일 년에 한 번만." 다시는 ‘아내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듯 비장했던 남편의 표정! 딱 박제각이었는데, 아! 아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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