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한다

20180818

by 도대영

규원이가 집에 온 지 2주가 되었다. 그동안 집안의 풍경도 많이 바뀌었다. 평온은 거짓말일 테지만 비교적 매끄러워지고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 우리는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리고 그 최선이 하나의 실로 엉성하게 이어지고 있다. 아직은 견고하지도, 튼튼하지도 않지만 우리 모두가 각자가 아닌 가족임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찌푸린 표정이나 한숨보다 미소와 웃음이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게 그 증거다.

딸내미는 생애 첫 상실감을 비교적 잘 승화시키고 있다. 아직은 아이이기에 속상하고 심통 날 때가 많지만 자기 나름대로 스스로에게 설명하고 선을 만드는 모습이다. 처음에는 규원이에게 수유를 못하게 하더니 이유를 납득하고 나름의 규칙을 만들었다. 울며 떼쓰는 것보다는 놀아달라고, 옆에 있어달라고 이야기하는 빈도가 더 늘고 있다. 그러면서도 세상 다정하고 애틋하게 동생을 살피고 보듬는다. 서로를 꿀 떨어지게 쳐다보는 둘의 투샷은 부모가 예정된 험난한 미래에도 둘째 출산을 결심하는 이유임을 뼈저리게 느낀다.

가장 고생하는 안해는 더욱 많이 성장했다. 경험이 깡패라는 말처럼 아이에 대해 마음과 태도가 첫째 때와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넓어졌다. 어쩔 때는 넘치는 여유로움에 내가 깜짝깜짝 놀라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딸내미의 상실감까지 세심하게 신경 쓰는 모습이 무척 고맙다. 서툰 내 살림 솜씨나 아기 케어 솜씨에도 웃으며 격려해준다. 본디 남자는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건다고 했다. 나는 현재 안해로부터 좋은 격려를 받고 있다.

규원이는 본인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잘 먹고 잘 누고 잘 잔다. 종종 잠투정을 해 신생아임을 어필하지만 밤잠을 비교적 잘 자며 이 정도면 양호하다 싶은 생각이 들게 한다. 무엇보다 가끔 보여주는 옹알이나 미소 한 방으로 사정없이 무장해제시킨다. 지연이 때는 너무나 예쁘고 신기했지만 우리가 서툴렀다. 그래서 일상이 힘들어 아이 자체의 예쁨을 덜 느꼈던 것 같다. 그러나 둘째는 조금 경험이 붙다 보니 예쁜 모습을 볼 여유가 생겼다. 이래서 둘째들이, 막내들이 한없이 예쁘다고 하나 싶다.

나는 나대로 노력하고 있다. 사실 이제 방학이 끝났다. 월요일부터 바쁜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 개학 날 아이들에게 들려줄 나의 방학은 딱 한 줄이다. ‘육아했다.’


이번 방학 때 참 많은 걸 느꼈다. 육아의 진 맛 끄트머리를 맛봤다고 할까? 누군가는 겨우 한 달 해보고 뭘 아냐고 핀잔을 줄지도 모르겠다. 또 누군가는 쓸데없는 육아 부심 가진다고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내 글을, 내 모습을 통해 어떤 해석을 내릴지는 그 사람들의 몫이다. 그리고 나는 거기에 전혀 관심이 없다.(이건 나를 조금이라도 깊게 아는 사람들이라면 알아주리라 믿는다.) 왜냐하면 그들의 해석은 나의 깨달음과 정확히 반대되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 느낀 건 ‘당연한 건 없다’는 것이다. 내가 경계하는 것 중에 하나인데 이번에 실감했다. 우리는 다수가 하는 것, 혹은 다수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결혼은 당연히 하는 것이며 부모는 당연히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맛있게 먹는 집밥은, 아이들의 깨끗한 옷은, 고마운 말과 행동을 하는 자녀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그 속에는 누군가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다. 손을 대지 않아도 차려지는 밥상은 없고, 가르치지 않아도 인사하는 아이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가치들을 당연함이라는 무명 속에 가두고 살아간다. 왜냐하면 그것들 하나하나의 가치를 인정하는 순간 그 어려움과 수고스러움을 맞닥들 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걸 감당하고 나눌 용기가 많은 사람들에게는 없다. 그 무명성을 경험하며 자란 사람이라면 더욱 가치를 찾기는 어려워진다.


두 번째는 시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건 내 육아의 기본 신념이기도 하다. 시간을 투자하면 결과가 좋을 확률이 높다는 건 상식이다. 문제는 투자 결과가 쉽게 눈에 보이지 않는 경우다. 교육이 그러하고 양육이 그러하다. 컴퓨터 게임도 하루를 하면 캐릭터가 레벨업을 하는데 이놈의 학생들은, 아이들은 퍼부어도 퍼부어도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일 년이라는 시간을 쏟아야 겨우 발걸음을 떼니 이 얼마나 비효율적인 일인가!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지치고 다른 곳에 눈을 돌린다. 같은 시간을 투자해도 더 인정받고 더 수익을 낼 수 있는 곳에 몰두하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이다. 하지만 나는 그 합리적인 판단을 애초에 미루기로 했다. 누구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선호하는 나이기에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내가 아이에게 쏟는 시간이 아이의 삶을, 나아가 우리 가족의 삶을 어떻게 바꿀지 믿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름 딸내미를 통해 내 가설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하기 시작했다. 물론 주변에 자기 발전과 커리어를 위해 날아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조급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다짐한다. 아이는 부모의 시간을 먹고 자란다. 나는 가장 장기적이고 효율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는 역시 최고의 즐거움은 내가 인정하는 즐거움이라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나는 육아를 잘한다고 말하거나, 남들보다 열심히 육아한다고 자랑할 생각이 없다. 이번 방학 때 육아만 한 이유는 단 하나다. 내가 즐겁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가족에 대한 나의 소속감을 느끼는 게 즐거웠다. 언젠가 안해에게 한탄 하 듯 말했었다. 나는 지연이가 힘들게 하더라도 울며 매달리는 안해 당신이 부럽다고. 왜냐하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었다. 이번 방학 때는 오롯이 내가 경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가족을 위해 내가 열심히 할 수 있는 게 있었다. 물론 힘들었다. 피곤했고 졸렸고 어려웠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 ‘가족을 위해 노력했나?’라고 물었을 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어서 좋았다. 남들의 칭찬도, 인정도 중요하지 않았다. 나의 즐거움, 그것이 최고의 보상이었다.


마지막은 두 번째 깨달음과 이어진다. 시간을 보낸다는 것의 의미. 그것은 일상을 공유한다는 것이었다. 아이를 위한다는 건 무언가 거창한 것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근사한 곳에 함께 놀러 가고 아주 특별한 것을 선물하거나 만들어주는 것, 해외여행을 하고 최고의 음식을 맛 보여 줘야만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을 SNS에 실시간으로 올리고 내가 얼마나 멋진 부모인지 나와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것이 길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우리가 부모를 사랑하고 의지하는 것은 그들이 가장 아름답고 가장 부유하고 가장 재미있기 때문이 아니다. 일상이라는 나의 삶의 큰 부분을 함께 공유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함께 손을 잡고 어린이집을 가고, 함께 놀이터에서 노는 것,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핸드폰을 손에서 놓고 오롯이 몰입하면 금상첨화리라. 앞으로도 나의 시간을 어떻게 선물해야 할지 확신했다.

누군가 나에게 이번 방학 때 뭐했냐고 묻는다면 답은 똑같다. 육아했다. 어땠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것이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행복했다고. 그리고 앞으로 더 행복할 방법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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