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 유감

20180830

by 도대영

규원이가 온 이후로 딸내미는 많은 격정을 경험하고 있다. 온전히 본인의 것이었던 걸 나누거나, 빌려주거나,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꼬맹이는 아직 제 몸도 가누지 못하건만 벌써 누나의 영역에 깊숙이 들어와 버렸다.

대표적인 건 바로 엄마의 젖가슴이다. 이미 빨지도, 만지지도 않지만 엄마의 젖가슴은 아이에게 큰 의미이다. 한 때 본인의 생명줄이었으며 엄마와의 깊은 유대감의 상징이었던, 본인만이 향유할 수 있는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오롯이 자기를 위한 것이었는데 지금은 동생이 그 세계에 침공한 것이다. 딸내미의 상실감을 우려해 우리는 임신 때부터 동생에게 수유를 해야 한다는 걸 설명해왔다. 동생을 아끼는 딸내미는 기특하게도 적극적으로 동의했었다. 하지만 세상사라는 게 계획한 대로 되던가? 감정은 언제나 실제로 다가올 때만 작동하는 법이 아니던가? 막상 엄마가 동생에게 젖을 물리는 걸 목격하자 딸내미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평상시에는 그나마 나았다. 하지만 졸리거나 엄마와 무언가를 하고 싶을 때는 달랐다.


“쭈쭈 주지 마!”

“내 거야!!!”


큰소리로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규원이는 모유를 달라고 울고, 딸내미는 안된다고 우는 상황은 최근 우리가 경험하는 최고 난이도의 재난 상황이다. 당장 데프콘을 올리고 수습하려 하지만 이미 감정의 영역과 생존의 영역에 있는 두 아이는 어느 쪽도 달래지지 않는다. 정말 넷 다 울고 싶은 순간이었다.

위기의 순간이 오면 사람마다의 생존 방식이 작동한다. 나는 겹치고 급하면 신속한 판단을 내리고 행동하는 편이다. 그리고 거기서 오는 여러 대미지들은 감내하거나 후에 수습한다. 우물쭈물하다 위기를 지속시키거나 크게 만들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해는 달랐다. 안해는 평소에 나보다 성질이 더 급하다. 그런데 유독 아이 문제에서는 침착하고 현명하다. 나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지연이의 감정을 뒤로 미루고 규원이부터 케어하자고 했지만 안해는 끝까지 지연이의 감정을 포기하지 않았다. 설명하고, 설득하고, 부탁했다. 물론 제대로 통하지는 않았지만 효과가 있었다.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고, 진정된 딸내미에게 여러 번 설명하고 부탁했다. 그리고 우리는 딸내미에게 결정권을 주었다. 어떤 상황이라도 딸내미의 허락 없이는 수유하지 않았다. 급한 경우에는 늦더라도 유축한 모유를 데우기도 했다. 그러자 점차 딸내미의 어깃장(이라고 표현하기 미안하지만)이 줄어들었다.


“엄마, 규원이 쭈쭈 앉아서 줘도 돼요!”

“지연아, 규원이 쭈쭈 주라고 해줘서 고마워.”

“규원이 배고프니까 누워서 줘요!”

“그래, 알았어.”


우리의 작전은 적중하기 시작했다. 딸내미가 순간 느끼는 가장 큰 감정은 상실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게 소외감으로 이어질까 봐 걱정이었다. 하지만 딸내미는 본인이 권한을 가지자 관계의 중심이 되었다고 판단했고 소외되지 않는다고 여긴 것 같았다. 그건 곧 빼앗기는 게 아니라 본인이 자발적으로 빌려준다는 인식을 만들었다. 그러자 한없이 자상하고 너그러운 누나가 되기 시작했다. 수유에 필요한 수유 쿠션이나 베개를 가져다 주기도 하고, 밥을 먹는 규원이 옆에서 노래를 불러주거나 챙겨주기도 했다. 가끔 어깃장을 놓기는 하지만 지금은 거의 없어졌다고 봐도 될 정도였다. 그렇게 우리는 어려운 하나의 미션을 해결했다.


많은 부모들이 양육의 힘듦을 알면서도 둘째를 고민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첫째이다. 첫째가 외롭지 않을지, 사회성을 키울 수 있지 않을지 싶어 동생을 만들어주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형제자매로서 당연히 경험할 관계적 갈등이 전제되어 있다. 이는 오롯이 부모의 몫이기도 하다. 그래서 형제자매 양육은 힘들다.

그러나 그래서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뭘 알겠냐만은 적어도 어떤 방향으로 상황이 흘러갈지는 보인다. 그리고 그건 부모로서의 전문성을 발휘해야 할 영역이기도 하다. 안해와 나, 그리고 지연이, 규원이가 함께 만들어낼 하모니, 그 길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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