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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vecin Feb 04. 2023

* 각자의 전장에서 힘들게 싸우고 있으니 *

*각자의 전장에서 힘들게 싸우고 있으니(2023.02.04.토) -2*

각자의 전장에서 힘들게 싸우고 있으니 (2023.02.04.) - 2 * 

- (2편 중 두 번째 이야기) *

- (이번 주는 글이 쏟아져 나와서 2편의 글을 썼습니다) -     


 - 언니~ 정근 수당이 뭔지 알아요??

 - 아니??     


   거의 10여 년 만에 대학교 후배 A를 만났다. 나보다 2살 아래면서 대학교 때 내 양(Lamb)으로, 나는 그의 목자(Shepherd)로 성경공부를 같이 했었던 피아노과 졸업생이다. 착하고 소박하고 수수하던 그때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지난 주 토요일에 우연하게 연락이 되어서 만나게 되었는데 내가 지금까지 들었던 소식 중에 가장 놀랍다고 할만한 소식을 전해 주었다. 재작년에 중등임용고시에 합격을 해서 작년부터 서울에서 음악선생님을 하고 있다는 것!     


   초임 교사로 1년을 보내면서 내 생각이 났다고 한다. 유학을 다녀오고 박사까지 하고 온 A가 여러 대학교에서 시간강사를 하다가 교사에 대한 꿈을 가지고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준비해 왔고 결국 그 꿈을 이루게 된 인생 스토리를 조곤조곤 이야기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놀랍게도 우리는 단 한번도 일어나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 했다. 물 한잔도 갖다 마실 시간도 없이….     


   무엇을 시도하기에는 조금 늦었다고 할만한 중년의 나이에, 모든 것을 전페하고 10년을 공부해도 힘들다는 임용고시를, 그것도 서울로, 용감하게 준비하고 과감하게 도전해서 멋지게 이루어낸 초임 교사 A는 내가 모르는 것들을 너무도 많이 알고 있었다.     


 - 언니, 정근 수당이 뭔지 알아요??

 - 언니, 교사는 50% 할인해 주는 치과가 있는 거 알아요??

 - 언니, 장기저축 구좌가 늘어난 거 알아요??

 - 언니....블라블라..     


   내가 질문했다.     


 - 왜 교사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     


   A는 이렇게 대답했다.   

  

 - 월급이 필요해서요!

 - (폭소) 뭐라고???? *^_^*..

 - 돈이 되는 건 뭐든지 하려고요!

 -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어서가 아니고??

 - 네! 일정한 돈이 들어오는 게 필요했거든요!     


   A의 이야기를 들으니 오히려 그게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는 게 스트레스 받지 않는 모습 일 수도 있겠다...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교사를 하게 되면... 아이들 때문에 힘들 수 있을테니까...

 - 맞아요! 아이들은 별로...*^_^*..     


   교회에서 반주를 하고 있는 A는 또 이런 말들을 쏟아놓으며 나를 생각에 잠기게 했다.     


 - 언니, 피아노 반주하는 게 너무너무 좋고 감사해요..

 - 방학 때, 하루에 2시간씩 피아노 연습을 하려고 해요..     


   20년은 재직해야 연금을 받을 수 있었는데, 얼마 전에 법이 바뀌어서 10년만 재직해도 연금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A가 말했다.     


 - 앞으로 10년 남았는데 열심히 하려고요..

 - 하하하.. 하루하루 지우면서??
  - 네! 그래야 할 것 같아요..

   언니는 퇴직하고 뭐 하고 싶으세요??

 - 나...??...나는 글을 쓰고 싶어.. 너는..??

 - 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일하려고요.. 

 - 돈 벌려고..??

 - 네~~*^_^*.     


   A가 했던 말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이것이다.     


 - 언니는 별 고민없이 언니에게 잘 맞는 일을 금방 찾으셨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이것저것 하다가 자기에게 맞는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 피아노과 전공한 34명의 친구들 중에 음악으로 직업을 삼은 경우, 많지 않아요...

 - 20대 초반에 몇 년 공부한 것으로 평생의 업으로 삼는다는 것이 더 말이 안되는 것 같아요.     


   A의 이야기와 그녀가 전해준 몇몇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물 안에서 별 움직임 없이 조용히 살고 있어서 반쯤 감겨 있는 나의 눈을 크게 뜨게 해 주었다.      


 - 아..학교 가기 싫어..

 - 네가 선생님인데 학교 가기 싫으면 어떻게 해??

 - 아...그렇지..*^_^*..     


   이런 광고가 있었던 거 같다. 선생님인데 학교에 가기 싫어하다니..*^_^*.. 그런데 사실, 직장인 학교에 가기 싫고 선생님들이나 아이들을 만나기 싫은 적이 얼마나 많았던지..     


   A를 만나고 오면서 생각한다.      


 - 남아 있는 10년을 A처럼 아까워하면서 소중하게 보내야겠어...

 - 피아노 반주하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야겠어..

 - 아이들에게 묵직하게 목표를 두었던 것을 조금 가볍게 해 볼까...        


  

   나보다 3살 어린, 오르간을 전공하고 같은 교회에서 오르간 반주를 20년 넘게 하다가 몇 년 전에 그만 둔 B와 이번 주에 교회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B와의 대화 일부..     


 - 오르간 생각나지 않아??

 - 아니! 전혀!

 - 진짜?? 그래도 반주를 그렇게 오래 했는데..??

 - 집에 있던 피아노도 팔았어..

 - 와우...진짜??? 그럼 지금 뭐해?? 

 - 나, 백화점에서 여성복 매장 하잖아!      


   정말 깜.짝. 놀랐다. 무엇보다 B는 이렇게 말하며 나에게 감동을 주었다.     


 - 정말, 나에게 딱! 맞는 일이야! 너무 좋아!

 - 사람들 만나는 게 좋더라고!     


   음악을 전공하고 오랜 시간 음악활동을 했지만, 우연히 전혀 다른 길로 들어섰는데 그 일이 자기 적성과 잘 맞아서 너무나 좋다는 B가 정말 행복해 보였다. 전공한 음악에 대한 아쉬움이 없다는 말이 오히려 부러웠고 시원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 맞아! 꼭 전공을 살려야 해??? 그 정도 했으면 됐지!!!     


***************     


***C가 나에게 물었다.     


 - 소명의식이 있어??

 - 그럼요! C도 있지 않아요??

 - 소명(召命)은 목숨을 내놓는다는 건데...


   ‘소명 – Calling’이 목숨을 내놓을 정도의 가치가 있는 일에 나 자신을 내어 맡긴다는 의미라고 한다면, 내 목숨과 맞바꿀 수 있는 일에 나의 삶을 던진다는 의미라고 한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풀어서 나 자신에게 다시 질문해 보아야 할 듯 하다.     


 - 지금 하는 일에 목숨을 내놓을 수 있어요?

 - (아주 자신있게) 네!!! (이건 아주 젊은 날 버전)

 - 아.......그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좀 생각해 보아야 할 듯 해요..(이건 지금 버전...)     


   예전에는 ‘소명’이라는 말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지만 지금은 조금 달라지는 것 같다. 우리의 삶이 그렇게 단순하고 명쾌하게 단정짓게 되지는 않으니까...     


   하나의 직업으로 평생을 가는 사람도 있고, 시도 때도 없이 직업을 바꾸는 사람도 있고, 퇴근 후 또는 주말에 다른 직업으로 생활비를 버는 사람도 있고, 돈과 상관없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삶을 쏟아부으며 그것에 의미를 두는 사람도 있고..      


   소명의식이 없어도 살아가기 위해서는 목숨을 내어 놓을 정도로 나의 열정과 시간을 쏟아부을 수도 있고, 소명의식이 있다고 했지만 받는 월급만큼만 일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으니까...     


   소명의식이 있어도 이해받지 못할 수도 있고 소명의식이 없어도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살아간다는 것, 살아낸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어 보려 한다. 이제는...     


   다만, 다만 아쉬운 한가지는, 이런 이야기를 나눌 만한 누군가가 있었으면 하는 것.... 그게 늘 아쉬울 뿐....

     

 - 다산 정약용이 사람을 사귈 때 되새겼다는 문구 중 하나   

                     

#각자의_전장에서_힘들게_싸우고_있으니  #임용고시  #중등교사  #음악교사  #초임교사  #소명의식  #calling  #콜링  #다산_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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