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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vecin Mar 04. 2023

* 나로 살아가기 (2023.03.03.토) *

나로 살아가기 (2023.03.03.) *      


  원년 멤버인 A선생님이 방문을 했다. 몇 년 만인지….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서 단번에 결정하지 못하고 흐지부지하며 감정의 뒷 끝이 긴 나와는 다르게, 명쾌하고 단순하며 속전속결인 A선생님은 어린 시절의 나로서는 잘 이해되지 않는 선생님이었다. 겉으로만 건성건성 교제하던 선생님이었다고나 할까….    

 

  그렇게 메마른 감정으로 대하던 A선생님은, 이상하게도 유독 나를 잘 챙겨 주었다. 실제적으로 여기저기서 좋은 사람도 많이 소개시켜주었고 어린 여동생을 다독거리듯이 나의 무심함과 냉랭함을 잘 받아주었다. A선생님은 약간 남자같았는데 그런 점은 이상하게도 좋았다. 그래서 더 불친절하게 대했었다 사실….     


  오랜만에 찾아온 A선생님의 얼굴과 눈빛을 보며 나는 울컥했다. A선생님은 2시간여의 점심시간 동안, 나를 바로 선생님 앞에 딱 끌어다 앉혀놓고 뚫어져라 쳐다보며 이것저것을 물었다. A선생님이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은 뭐랄까… ‘애처로움’이었다. A선생님은 왜 나를 그런 눈으로 바라보았을까…. 그리고 나는 그 눈빛이 왜 그렇게 좋았을까….      


  그리고 지금 나는, 그 흔들림 없던 얼굴표정과 강렬하고 따뜻한 눈빛으로 나를 완.전.히. 감싸주던 그녀를 다시금 기억해 보며 나에게 무언가를 ‘열심히’ 말하며 나를 탐색하던 그녀의 마음을 읽어보며, ‘이해했다고’ 여기에 글을 적어 본다. 그녀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 힘들지 않았니??

 - 잘살고 있는거야??

 - 네 이야기 듣고 싶은데….      


  A에게 이렇게 말해 본다.     


 - 선생님.. 선생님의 눈이 저를 정확하게 보았어요…. 

 - 선생님이 보던 모습 그대로예요….

 - 선생님에게 할 이야기가 많은데….

 - 함께 있을 때 더 많이 이야기할걸 후회가 되네요….



  큰 언니, 큰 누님 같았던 원년 멤버 B선생님이 퇴직을 했다. B를 보내는 아쉬운 마음을 C선생님이 영상편지에 담았다. 1시간이 넘도록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마음을 잘 다독여주며 따뜻하게 위로해 주던 B에 대한 사랑을 가득 담은 내용이었는데 그 영상을 보며 생각했다.     


 - 맞아…. B는 저런 삶을 살았었지.

 - 그런데 나는, 나는 저렇게는 하지 못할 것 같아….     


  함께 단체 사진을 찍을 때 옆에 있었던 D 선생님에게 말했다.    

 

 - 나 나갈 때, 저렇게 영상편지 만들어 줘~          



  예전에 E가 나에게 말했다.     


 - 이렇게 저렇게 하면 좋을 것 같아….     


  그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 사람은 바꿔 쓰는 거 아니라던데….

 - 네…. 한번 노력해 볼게요…. 

 - 그런데… 제가 다듬어지면 그게 저일까요..??     



   지혜로운 직장생활에 대한 짧은 글을 읽었었는데 거기에 적혀있던 글 중에 눈에 들어온 이야기는 이런 내용이었다.     


 - 다른 사람에게 기대를 하지 말아라

 - 너의 이야기를 다 풀어내지 말아라

 - 직장은 직장일 뿐이다     


  24시간 중 적어도 10시간 이상을 직장에서 보내는데 머리로 알고 있는 내용을 실제로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기대하지 말아야지’ 하다가도 나도 모르게 약간의 희망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기대하다가 실망하거나 상처를 받기도 하고, ‘내 이야기를 다 할 필요 없어’ 하다가도 마음이 풀어져서 솔직하게 이야기했다가 때론 배신감을 느끼거나 뒤늦은 후회가 밀려오기도 하며, 월급을 받는 직장일 뿐이지만 또 어느새 잊어버린 채 ‘혹시나’ 하는 작은 희망으로 그 이상의 ‘달콤함’을 기대했다가 또다시 눈물을 삼키게 되기도 하니까…. 이게 늘 반복인 생활이었던 듯 하다.     


  어제를 돌아보며 현재를 계획해야 할텐데 언제나 그렇듯이 눈앞에 계속 밀려오는 현재를 숨가쁘게 살아내며, 저만치 흘러가는 과거를 조금씩 조금씩 뒤돌아보며 아쉬워하는 나를 본다.     


  예전의 E에게 말해 본다.     


 - E~, 이렇게 저렇게 노력은 해 보겠지만 저는 그냥, 모나고 거칠고 울퉁불퉁한. 한참 다듬어야 하는, 저 자신으로 살아갈게요.     


  나는, 나를 애틋하게 바라보며 나를 이해하려고 했던 A도, 다른 사람 말을  잘 들어주고 맞장구 쳐주던 B도, 멋진 문구로 편지를 썼던 C도, 나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던 E도 될 수 없다. 노력은 해 보겠지만, 노력해서 바뀔지도 모르겠고, 역시나 늘 여전한 모습이어서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거나 또 내가 힘들 수도 있을텐데, 그래도 나는 그냥 ‘나로 살아가기’를 선택하려 한다.  

    

  29년째를 맞이하는 학교에 29번째 아이들이 입학하면서 2023년의 새로운 생활이 또다시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또 한번의 학교생활을, 나는 또 한번의 직장생활을 시작한다. 나는 ‘나로 살아가기’를 선택할텐데, 아이들은 어떤 각오로 학교생활을 시작하려 하고 있을까….      


  많이 다듬어지고 반들반들한 보석의 (내가 아닌) 나보다, 모나고 거칠고 울퉁불퉁한. 한참 다듬어야 하는 보석의 (내 모습 그대로의) 나로 살아가기를 다시! 시작한다. 보석은 보석이니까….


* 29기 입학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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