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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vecin Feb 17. 2024

* 결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곁에 머무는 것 *

결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곁에 머무는 것 (2024.02.17.) *

    

 - 우리가 타인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강한 행동은, 결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곁에 머무는 것이다.     


   A가 B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속상해하기에 물었다.     


 - 계속 스트레스를 받던 사람인가요, 새롭게 등장한 사람인가요?

 - 새롭게 등장한 사람이에요!

 - (모두 폭소) 하하하~

 - 새롭게라고요?? 그럴 때마다 나를 생각하라고 했잖아요.

 - 아주 잘하고 있는 것같이 보여요.

 - 무슨 말인가요. 다 소용없어요. 가족 이외에는….

 - 그렇기는 하죠.

 -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가 뭔가요?

 -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서요~

 - 제대로 대우를 해 주지 않는 것 같아요?

 - 네!     


   답변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답변했다.     


 - 무시당하는 것을 참을 줄 알아야 해. 아무렇지도 않게 넘겨야 할 텐데.     


   내가 지금까지 사회생활을 하면서, 아니 인간으로서 살아오면서 배운 한가지는, 무시당하는 것을 참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 누가 어떻게 대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넘길 줄 알아야 한다는 것, 성숙한 인간이란 바로 이것이 아닐까 하는 것…. 물론 나는 전혀, 전혀 되지 않아서 늘 속을 끓이고 있거나 눈물을 삼키고 있거나 벽을 두드리고 있거나 달려들어서 싸우고 할퀸 뒤 후회하거나 남모르게 복수하거나 하지만 말이다.     

     

   저명한 영화 관련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과 감독상 등을 비롯한 다수의 수상을 하면서 유명해진 미국 드라마 C를 보게 되었다. 미국에 살고 있는 동양계 이민자들의 이야기로 사업으로 성공한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힘들게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한국, 중국계와 일본인까지 동양계 배우들이 등장하여 전혀 낯설지 않은 이야기들로 엮어진다.     


   이야기의 중심은 로드 레이지(Road Rage) 즉, 난폭운전으로 촉발된 (작은) 분노가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무너지게 하는지를 보는 것이다. 특히 이 사건들을 통해 겉은 번지르르하고 화려하지만, 문제를 덮어버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겨우겨우 살던 주인공들이 썩을 대로 썩어있는 자기의 현실을 정확하게 마주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운전하는 D에게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E의 분노로 시작되어 자기도 무시당하였다고 생각한 D의 분노가 이어지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분노의 이야기가 10부작의 코미디로 펼쳐지는데, 어둡고 추악한 인간의 심리를 낱낱이 보여준다. 어느 한 사람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끊어버리고 스쳐 지나갔으면 펼쳐지지 않았을 이야기….     


   사람을 알아보는 법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 화날 때의 그 사람의 모습을 보세요.     


   정말 분노하고 화가 날 만한 상황에서 대처하는 모습을 보고 그 사람의 참모습을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아마도 내가 가장 찔리지 않을까 싶다.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들은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것 같은 요즘 현대인들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나마 무겁지 않아서 다행.     


   사실 C 드라마에서 내 눈에 띄었던 것은 분노의 시발점이었던 주인공 E보다도 교회 오빠로 나오는 F였다. 대학교도 나오지 않고 거친 삶을 살고 있지만 생활력이 강한 E와 서로 좋아하는 여자 친구 G는 E가 아닌, 매력적인 눈웃음을 띄며 멋지게 찬양을 인도하는 잘생긴 교회 오빠 F와 결혼한다. 하지만 결혼은 실제라는 말처럼, 팍팍한 삶으로 인해 부부는 싸움이 잦아지고 G는 사사건건 E와 비교하며 F의 자존감을 깎는다. 가진 것 없지만 용감하고 저돌적인 E에게 늘 질투를 느끼는 F의 비열함까지 보게 되면 속상하기까지 하다.     


   무엇이나 해 보겠다는 경제적인 의지가 부족한 F는 결국 E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는데, 그토록 밝게 빛나던 F의 얼굴이 점점 생기 빠진 얼굴로 바뀌어가는 것을 보는 것은 슬픈 일이었다. 아마도 대부분은 멋지게 기타 연주하며 찬양 인도하는 교회 오빠의 모습에 혹하게 될 텐데, 실제 생활에서의 진짜 모습이 저토록 나약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모습일 듯….     


   언젠가 H가 말했었다.     


 - 그 사람의 밑바닥을 보아야 해.     


   I는 이렇게도 말했었다.     


 - 나와 J는 서로의 밑바닥을 다 보아서 오히려 말하기가 편해.     


   겉으로 보이는 멋지고 화려하고 강인하고 넉넉하고 배려심 많고 사람 좋은 모습과, 바닥까지 경험한 뒤의 후줄근하고 볼품없고 나약하고 질투심 많고 이기적이고 심성 고약한 진짜 참모습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진짜 사랑’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렵고도 놀랍고도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다. 한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정말 사랑한다는 일은….     


 - 인간은 빛의 형상을 상상함으로써 깨닫는 게 아니라, 어둠을 의식함으로써 깨달음을 얻는다 – 칼 융   

  

   C 드라마 감독 K가 드라마를 제작하는 내내 붙들었다는 문구를 읽어보며, 그가 했던 말을 옮겨 본다.   

  

 - 우리가 타인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강한 행동은, 결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곁에 머무는 것이다.     


   대수롭지 않은 일에 예민하여 분노하고 화를 내더라도, 또 서로의 밑바닥을 경험하여 숱한 결점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떠나지 않고 서로의 곁에 그대로 머물러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 교직 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임을 하시는 두 분의 선생님께서 선물을 주고 가셨다.     


   어떤 과정을 마쳤다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직장생활을 해 본 사람들은 모두 다 알 것이다.    

   좋은 일, 기쁜 일, 빛나는 일들도 많았겠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일들이 훨씬 더 많지 않았을까.     


   중간에 떠나거나 그만두지 않고 그 모든 것들을 덤덤하게 견디어내고 결국 이 과정을 멋지게 마무리하여 제2의 인생으로 들어서신 두 분의 앞날이 더 아름답기를 바라며….     


 - (2024.02.07.금) 정년퇴임을 하신 분들의 선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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