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가 나나요?? (2024.11.30.(토)) *
- 화가 나나요??
내가 없을 때 내 자리로 온 전화를 당겨 받은 A 선생님이 말했다.
- 선생님에게 온 전화를 제가 받았는데요, 와~ 선생님 자리로 이런 전화가 오나요? 몰랐네요.
이것저것을 따지는 어떤 분의 전화였다고 한다. 내가 말했다.
- 아, 그래요? 대부분 예의를 잘 갖추시는데. 그러면 이렇게 말씀하셔요. 지금 떠 있는 이 전화번호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니면, 학생에게 전해 줄까요? 하고요. 전화번호가 뜬다는 것을 잘 모르시더라고요. 그래서 검색 안 되는 전화로 연락하는 분도 계시지만.
B와 C에게 이런 전화가 왔다고 한다.
- 끝난다는 시간에 왜 안 끝내주냐고 막 따지더라고요.
놀라서 내가 말했다.
- 1년 동안 아이를 맡았던 담임선생님에게,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이 시점에, 그렇게 따졌다고요?? 와우!
매해 수능을 보는 날 전후는 어김없이 한파가 찾아왔었다. 감독하기에 거추장스럽지 않으면서도 따뜻한 옷을 찾아서 입었었고, 찬바람을 맞으며 새벽길을 나서서 수험생들이 춥지 않도록 밤새 틀어놓은 히터로 온기가 가득 채워진 교실에 들어섰었다. 점심시간 이후 식곤증을 참아가며 영어 듣기평가를 치르는 아이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히터를 끄는 일도 늘 반복되던 일이었다. 그런데 올해 수능 날은 영상 17도까지 올라갔던 더운 날이었다. D 선생님은 반소매를 입고서도 땀을 뻘뻘 흘렸다고 한다. 11월 중순 이후로도 새벽에는 쌀쌀했지만, 한낮의 기온은 20도를 넘나들더니 마지막 주 초에도 15도 전후까지의 이상기온이었다.
그러던 이번 주, 갑작스럽게 내린 2024년의 첫눈은 42cm가 넘는 눈 폭탄으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다. 눈이 오면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짧지 않은 거리를 운전해야 하는 나로서는 눈이 온다는 것 자체가 고민의 시작이다. 불안한 마음으로 벌벌 떨면서 과감히 차를 몰고 가야 할지, 차를 놓고 지하철로 3번을 갈아타면서 2시간 30분을 가고 그다음 날 또 그 고생을 하면서 와야 할지, 고민에 고민을 한다.
너무도 눈이 많이 온 그날, 용기를 내어 차를 가지고 퇴근하기로 하고 보았던 내 차의 모습이란! 내 눈에는 거의 100cm로 보이는 눈이 차 지붕 위에 쌓여 있었는데, 지붕과 앞 유리를 완전히 뒤덮어버린 눈을 치우기 위해서 결재판으로 한 30분을 쓸어내렸는데도 도저히 다 치울 수 없었다. 무릎까지 푹푹 잠겨질 정도의 눈을 밟고서 운전석 문을 겨우 열었고, 계속 내리는 눈을 보며 겨우겨우 힘들게 퇴근했다. 진정 이게 실화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지하철로 가려 했다가, 다시 운전해서 갈까? 했다가 결국 다시 지하철로 결정하기까지 몇 번의 번복을 한 뒤 3번을 갈아타고서 오전 10시가 다 되어 학교에 도착했다. 등교 시간이 늦추어졌음에도 많은 아이가 지각을 했고 결석했다. 아이들이 이렇게 말했다.
- 오전 7시에 나왔는데 지하철역까지 오는 마을버스에서 1시간 넘게 있었어요. 10분 정도면 도착하는 거리인데요.
- 지하철이 오지 않아서 계속 기다렸어요!
- 지하철역 밖에까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을 정도로 사람이 많아서 역 안에 아예 들어가지를 못했어요.
- E 역에서 학교까지 1시간 30분을 걸어서 왔어요.
- 제 친구네 F 학교는 휴교한다고 해서 지하철로 오다가 다시 집에 갔대요!
코로나로 3월 개학이 6월까지 미뤄졌었던 2020년도가 생각날 정도로 깜짝 놀랄 날들이었다. 연이틀 등교 시간이 늦춰지고 일찍 귀가시켰고 야자가 없어졌다. 온 나라가 들썩였고 눈으로 인한 사고가 많았던 이번 주. 어느 사람도 예상치 못한 이런 일들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지하철로 출근하려고 준비하던 목요일 오전 7시경, 1학년 단체방에 이런 메시지가 올라왔다.
- 오늘 조식, 차가 눈 때문에 막혀서 현재 먹을 수 없다고 합니다. 언제 올지는 모르나 늦어질 것 같아요.
오전 7시에는 조식을 먹게 되는데, 눈 때문에 도로 상황이 무척 좋지 않았기에 조식 차량이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했던 것. 물론 9시20분경에는 조식을 먹을 수 있었는데, 그 사이 아이들은 편의점에 가서 식사를 해결하거나, 오늘 안에 밥을 먹을 수 있는 건지, 왜 휴교를 하지 않느냐며 계속 투덜거렸다. 학부모들에게서도 이런 연락이 왔다.
- 학교가 왜 이렇게 신속하지 못한 건가요.
- 아침을 못 먹었다는데 어떻게 된 건가요.
- 점심은 먹을 수 있는 건가요.
- 왜 휴교를 하지 않는 건가요.
- 내일도 인정 결석이 되는 건가요.
보내온 메시지를 보면서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이렇게 답했다.
- 오늘은 예측 불허 상황이었지만, 내일은 되지 않을까요. 일정에 맞추겠지요.
- 조식, 9시20분경에 진행되었고, 중식, 준비 중으로 압니다. 오늘은, 등교도, 출근도, 모두다 난리였으니까요.
- 관련 부서에 문의했으니, 모두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기를 말씀드려 주세요. 일부러 이렇게 진행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G 학급에 들어가서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 오늘 아침에 학교에 오는 것도 힘들었잖아요.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도로 상황이 어떤지, 지하철역, 버스 상황, 다 보고 느꼈죠? 오늘 아침에 조식이 많이 늦어졌어요. 이런 일이 있으면 엄마에게 즉각 연락하나요??
- 네!
- 엄마! 조식 차가 오지 않아서 조식을 못 먹었어! 짜증 나! 이렇게요?
- 네!
- 도로에서도 늦어졌고 차량 3대가 교내에 들어오지 못해서 급식실까지 재료를 들고 이동하느라 시간이 늦어졌다고 해요. 이런 상황이 이해가 안 가나요?
- 이해는 되지만, 일단 화가 나니까요.
- 화가 나나요??
- 네!
- 무엇에 대하여, 누구에 대한 화, 짜증인가요?
- 음….
- 날씨에 대하여? 학교에 대하여? 급식 업체에 대하여?
- 날씨??
- 그럼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빵이라도 사서 주었어야 했을까요, 아님, 어떻게 해야 했나요?
- 음…. 그건 아니지만….
- 이런 때일수록 더 유머러스하게, 여유 있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화가 난다고 하니, 여러분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화가 났다고요….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에, 원하는 속도에 맞추지 못한 일들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라고 가르쳐야 할까. 눈 때문에 제시간에 급식을 제공하지 못하고 2시간이나 늦어졌던 업체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아이들의 이런 투정에 어른은 어떻게 대답했어야 했을까.
- 뭐라고?? 조식을 못 먹었다고?? 그게 말이 되니?
설마, 이랬을까? 그리고 다른 방에 이렇게 글을 올렸을까?
- 세상에, 우리 아이가 그러는데, 지금, 이 시각까지 조식을 못 먹었다고 하네요. 학교에서 대책을 주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어떻게 이럴 수 있죠?? 아무리 눈이 왔다고 해도 말이죠. 말이 안 되지 않아요?
설마, 이렇게 했을까?? 생각하고 싶지 않다. 고개를 가로저어 본다. 그 대화에 끼고 싶지도 않다. 누군가는 이렇게 답하는 사람이 있었기를 바란다.
- 이렇게 눈이 많이 왔으니, 뭔가 어려움이 생겼나 보네요. 조금 기다리면 되지 않을까요. 투정하는 아이들처럼 학교에 대해 쉽게 말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혹 못 먹이더라도 이유가 있겠지요.
아이에게 해가 될까 봐 예의를 갖추어 조심스럽게 말하고 행동하던 사람들이 헤어질 때가 되어가고 다 끝나가는 지점에 이르러 무서울 것 없이 거칠게 바뀌는 것을 매년 경험하기에 놀라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대하던 처음의 그 모습으로 기분 좋게 헤어지기를 바란다. 약간의 가식 아니, 심한 과장과 가식과 연기가 있더라도 말이다. 우리는 그 사람의 마지막을 기억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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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과 나누었던 연말 프로젝트.
끝나가는 때가 되면 누구에게나 어김없이 찾아오는 흐트러짐.
처음 보던 빤짝이는 모습까지는 아니더라도, 서로에게 기본적인 예의는 지키도록 하자!
아님, 좀 더 과장된 연기력을 갖추도록 하자!
기분이 좋을 때는 더 기분 좋은 모습으로,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더욱더 기분 좋은 모습으로!
생각나는 대로 말하지 않기를, 느껴지는 대로 행동하지 않기를!
화가 날 때는 잠깐 멈추기를, 말을 멈추고 생각을 멈추고 행동을 멈추기를!
이 중 제일 마음에 드는 문구는, 20번.
처음 만났던 3월인 듯 부끄럽고 얌전하게 지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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