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PT 91장 다 넘기고 올게요! (2025.03.29.(토)) *
- PPT 91장 다 넘기고 올게요!
매년 3월에는 모든 학교에서 학부모 총회가 열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학부모 총회를 비롯한 학부모 모임에 참석할 때의 복장, 일명 ‘학총룩’에 대하여 쓴 글을 읽었다. 이제 초등학교 1학년 학부모가 되는 기자가 학부모의 관점에서 쓴 글이라 흥미로웠는데, 그 글에 의하면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의 학부모 모임 복장과 분위기가 다르다고 한다. 샤랄라 분위기로 가장 반짝이며 화려한 패션은 유치원 스타일이고, 그나마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상당히 차려입는 분위기이지만,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교로 갈수록 실용적인 복장으로 바뀌며 고등학교에 가면 회색과 검은색의 엄숙한 분위기로 바뀐다고 한다.
글의 제목이 ‘학총 갈 때 전 재산 룩은 피해 주세요’였는데, 온갖 것으로 치장하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즉, 학부모 모임에 갈 때는 가능하면 단정하게, 튀지 않게, 과하지 않게 하라고 조언했다. (첫) 학부모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하는 학부모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되었지만 사실,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교사로서도 학부모의 복장은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본다.
메이크업을 전혀 하지 않거나 너무 편한 분위기도 조금 불편했고 반면 과한 치장은 아이를 이해하는 데에 분명한 장벽이었다. 화려한 보석, 짧은 치마, 강한 메이크업으로 약간 멈칫했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까지도 기억하는 것은 윗부분과 옆에 기다란 깃이 달린 하얀 모자를 썼던 학부모를 보고 깜짝 놀랐던 일도 있었고, 3월 중순임에도 초 미니스커트에 하얀 롱부츠를 신었던 분도 있었으며, 내가 신었던 슬리퍼보다도 더한 총천연색 보석이 박힌 화려한 뮬을 신고 딸깍딸깍 끄는 소리를 내며 오셨던 분도 기억난다.
하지만, 어떠한 복장과 스타일이건 아이를 위해서 준비하는 그 정성과 고민이 느껴져서 각각의 모습이 모두 좋게 보였다는 것도 말해 놓는다. 학부모가 시간을 내어 학교에 와서 학부모 모임을 하고 담임교사를 만난다는 것은 결국 아이를 위해서일 테니, 아주 약간의 마음만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너무 힘을 들이지 마시기를.
학부모 모임 때 학부모가 복장에 대해 고민하는 것처럼, 대부분 교사도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 당연히 고민한다. 남자 선생님들은 재킷이나 넥타이만으로도 분위기를 다르게 표현할 수 있지만, 여자 선생님들은 신경을 더 쓰게 된다. 편한 복장을 추구하는 분은 단 한 분도 계시지 않을 것이고 학부모들과 마찬가지로 과하게 치장하게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겠다. 아마 내 경우가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하하.
올해도 역시 3월 중순에 학부모 모임이 있었고 반마다 학부모가 몇 분이나 오실까 궁금해했다. 많이 오시면 부담이 되고 적게 오시면 무언가 아쉽지만, 지나친 관심으로 몰려오기보다는 차라리 적당한 무관심으로 적게 오시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반은 딱 적정한 인원수의 분들이 오셨다. 나는 그날 ‘약간의(a little) 샤랄라 패션’으로 무장했는데 우리 반 학부모님들은 아주 보통의 학부모다운 패션으로 참석하셔서 마음이 편했다. 심적으로 거리낄만한 것이 없었다고나 할까.
처음 학부모들을 만날 때는 학급 운영에 관해 이야기하게 되는데, 종이로 인쇄하는 시대는 이미 옛날 옛적에 지나갔기에, 나는 PPT로 자료를 만들고 QR Code로 링크를 걸어서 학부모들과 자료를 공유했다. 담임교사에게 주어진 시간은 딱 20분이었는데 내가 만든 PPT 자료는 어찌어찌하다 보니 91장이나 되었다. 시간이 되어 교실로 들어가기 전에 교무실에서 이렇게 외쳤다.
- PPT 91장 다 넘기고 올게요!
사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과연 될까? 싶었으나,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딱 적당하게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정말 빠르게 말했으니까. 하하. 하지만 중간중간 농담도 넣고 가끔 헛소리도 하면서 함께 웃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진행했다. 얼마나 다행인지! 학부모 상담 기간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 학부모님과 상담할 일이 생길 때는 학생에게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제가 오시라고 할 때입니다. 그러니 학부모 상담은 크게 신경 쓰지 마세요.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것이다.
- 혹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나 비합리적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더라도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지도 방법의 하나라고 생각해 주시고 믿어주시고 따라주시기를 바랍니다.
신기하게도 학부모들의 얼굴이 환하게 변하던 때는 이 말을 했던 때였다.
- 아이들은 혼자서도 잘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날 참석했던 20여 명의 학부모들이 어떤 옷을 입고 왔는지는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 아마도 학부모들은 엄청나게 많이 고민하고 그날 복장을 선택했겠지만 말이다. 사람들의 편견과 달리 내가 다른 사람의 옷을 전혀 보지 않고 얼굴만 보는 면도 있지만, 학부모들의 진지한 눈, 웃고 있던 눈, 때로는 약간 불안해 보이고 걱정스러워하는 눈과 표정만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내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마치 ‘잘하고 있어요, 선생님!’이라고 말하는 듯한 웃는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왼쪽과 오른쪽에 앉아계시던 두 분은 특히 더 기억난다.
설레는 마음과 기대하는 마음도 한가득이지만, 걱정과 염려스러운 마음이 좀 더 많았을 3월 첫 학부모 만남이, 내년 2월 헤어지는 날에는 서로에게 감사함과 뿌듯함과 보람으로 가득 차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어본다. 또 그 이후 먼 훗날에는, 더 은혜롭고 감동적인 시간으로 우리의 삶에 새겨져 있으면 더 좋겠다. 과거는 무언가 더 아름답게 포장이 되어서 기억이 되니까. 내가 PPT를 91장이나 만들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니까!!!
아직은 여전히 어색하고 낯을 가리고 있지만, 조금씩 껍질을 벗고 있는 아이들은 부모님과 함께 주말을 잘 쉬고 있겠지?
- 언제 갈까, 3월이….
학년 부장을 할 때와는 전혀 다른 마음으로 보낸 3월이, 매일 아침 되뇌었던 말, ‘언제 갈까, 3월이’ 이렇게 스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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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앞문 옆에 붙여 놓은 (2025) (1-3) 학급 경영 안.
이대로 잘 경영할 수 있겠지??
91장의 PPT 중에 있었는데, 보셨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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