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어 죽고 말겠어요! *

by clavecin

* 얼어 죽고 말겠어요! (2025.04.05.(토)) *


- 얼어 죽고 말겠어요!


A의 이야기를 들었다.


- 작은 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토요일 진료가 끝나고 곧바로 시골에 홀로 계신 어머님을 찾아뵈어 어머니와 주말을 같이 보내고 월요일 아침에 병원으로 곧장 출근합니다. 어느 날 우연히 어머니와 B 음악방송을 함께 듣게 되었는데, 별생각 없이 시작된 일이 지금은 어머니와 나만의 작은 기쁨이 되었습니다. 어머니와 무언가를 함께 듣는다는 것이 이렇게 기다려지는 일일 줄 몰랐네요.


아주 작은 일이지만, 일정한 시간에 누군가와 무언가를 함께 하는 것이 얼마나 기다려지는 일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해 준 A의 이야기. 매일, 매주, 매달 또는 매년 거의 비슷한 프로그램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도 이렇게 작은 기쁨을 주는 일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아마도 매년 있는 수련회 즉 주제별 체험학습이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 이전까지 매년 진행되던 체험학습이 코로나 이후 2년을 멈추었고, 2023년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늘 강원도 평창에서 맴돌던 체험학습이 충남 태안으로 잠깐 나갔다가 다시 강원도로 돌아왔는데, 작년에는 춘천을 거쳐 올해는 정선으로 오게 되었다. 말로만 듣던 정선을 처음으로 가게 되어서 더 많이 기다려졌던 것이 사실이다.

늘 3월 말에 가던 체험학습이 전국연합 학력평가로 인해 4월로 넘어가게 된 것도 작년부터다. 3월 말에도 추웠는데 4월임에도 여전히 추워서 아이들은 패딩과 온갖 겨울옷을 걸치고 체험학습에 참여했다. 3박4일의 체험학습을 모두 마친 소감은 뭐랄까, 일단 학기 초에 완수해야 하는 큰 임무를 수행한 안도감이라고나 할까.

정선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했던 프로그램은 정선아리랑 배우기. 총 6개 학급 아이를 앉혀놓고 아리랑을 배운다는 말을 들었을 때 사실 깜짝 놀랐다.


- 아리랑을 배운다고?


아리랑을 배운다고 말하던 C가 이렇게 덧붙였다.


- 엄청 지루할 겁니다.


이 말에 파안대소했지만 내심 걱정했었는데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았고 아이들이 떠들기는 했지만 나름 잘 따라주었다. 앞에 나와서 배운 아리랑을 불러 보라는 말에 나서서 노래하는 아이들이 있었다는 것이 더 놀라웠다.

또 재작년 충청도 태안에서의 대천 레일바이크, 작년 강촌 레일바이크에 이어 올해도 레일바이크의 원조인 정선 레일바이크를 탔는데,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정말 긴 레이스를 보여주었다. 다리가 짧아서인지 자전거 페달이 헛돌다가 내 정강이를 맞추어서 까맣게 멍이 들어버리기는 했지만 즐거운 경험이었다.

첫날 저녁에 진행하는 학급찬양발표회를 준비하는 기간이 길지 않았는데 거의 모든 학급이 준비를 많이 한 모습이었다. 심지어 남학생들도 아주 열정적인 무대를 보여주어서 보는 사람들을 흡족하게 해 주었다. 특히 무대 위를 떠나서 객석을 종횡무진 뛰어다니는 학급도 있었고, 부흥회 찬양집회를 하는 것 같은 학급도 있었는데, 대부분 다양한 율동과 찬양 조합으로 열띤 무대를 보여주었다.

3월에 처음 만난 아이들이 한 달을 보낸 뒤 진행하는 체험학습은 해당 기수 아이들의 성향을 가늠해 보는 좋은 잣대가 되기도 한다. 선생님들과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 이번 기수는 굉장히 열정적인데요?

- 이번 녀석들은 좀 조용한 것 같아요.

- 이번 아이들은 서로 잘 챙기는 것 같네요.


올해 31기는 어떨까. 내가 보기에 그 전 아이들보다 (중학생같이) 많이 어려 보이고 귀엽고 더 많이 활발하게 느껴진다. 체험학습에 매년 참석하는 D는 이렇게 말했다.


- 이전 아이들은 자기 학급 아이들 할 때만 환호성을 지르는 것 같았는데, 이번 녀석들은 다른 반 아이들이 할 때도 자기 반 아이처럼 함께 노래하고 좋아하는 모습이 다른 것 같아요.


두 번째 날에 배웠다는 무려 6개의 강강술래를 이리저리 자유롭게 펼치는 아이들을 보면서 새삼 강강술래의 웅장함에 매료되었고, 온갖 모습을 보여주는 장기 자랑을 통해서 끼가 많은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혀를 내두르게 되었다. 무대를 바라보면서 시대가 점점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과 이런 아이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또 어떤 방향으로 가르쳐야 하는지 등 다양한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마지막 날 행군을 다녀온 뒤 하이라이트인 세족식을 하기 전에 어떻게 자세를 잡아야 할지 고민했지만, 가장 기본적인 자세를 취하기로 했다. 즉, 무릎꿇고 하기! 2시간이 다 되는 동안 무릎을 꿇고 아이들의 발을 씻겨주었는데 신기하게도 지금까지도 무릎이며 어깨며 몸이 아프지 않다. 어떻게 된 일이지??

떠나오는 날 마지막 프로그램으로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올랐는데 내 옷차림을 본 E가 말했다.


- 추워 보여요, 선생님!


내가 말했다.


- 두툼하게 입느니, 그냥 얼어 죽고 말겠어요!


사실 오기 전에 F에게도 말했다.


- 날이 춥다고 하니, 옷을 따뜻하게 입고 오세요. 저는 멋을 내고 올게요. 멋쟁이는 차라리 얼어 죽고 말겠어요.


아직 겨울 날씨이지만, 4월이라는 숫자에 맞게 옷을 갖춰 입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물론 나는 멋쟁이가 아니다. 하하.

어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우리 반 아이들에게 말했다.


- 맺고 끊는 것을 잘해야 합니다. 체험학습에 관계된 모든 활동은 토요일까지, 가능하면 주말까지 모두 정리해야 해요.


이렇게 말했지만, 아이들은 주말까지 체험학습 모드로 갈 태세인 듯하다. 이것저것 체험학습 관련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것들이 많이 있는데 완료한 아이들이 많지 않다. 내 마음 같아서는 적어도 토요일인 오늘까지 모든 것이 다 정리되었으면 좋겠는데 예전과 달라진 양상이라고나 할까. 몇몇 선생님들은 우리 반은 다 완료했다고 자랑하신다. 쳇!

예전 같으면 우리 반이 1등을 하기 위해서 아이들을 닦달했겠지만, 이제는 힘도 빠진 데다 조금 느긋하게 기다릴 줄 아는 여유와 끓어오르는 성질을 누르고 조용히 참을 줄 아는 인내심이 생겼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하하.

고작 3박4일이 지났을 뿐인데, 굉장히 긴 시간이 지난 듯한 느낌이다. 보통 체험학습 이전에는 아직 서먹하던 관계가 체험학습 이후에는 훨씬 더 가까운 관계로 나아가게 된다. 내가 아직 가르치지 않는 다른 반 아이들이 체험학습 첫날까지만 해도 인사도 하지 않고 쌩하고 스쳐 지나간 녀석들이 있었지만, 세족식이 끝난 후 양손을 벌리며 나에게 다가와서 이렇게 말하는 녀석들이 많았다.


- 선생님! 안아주세요!!!

- 선생님! 우리 2학기에 만나요!!!


이런 녀석들에게 나 또한 두 팔을 벌려 안아주며 말했다.


- 그래! 이리 와, 안아줄게! 2학기를 기대해!!!


어머니와 함께 음악방송 듣는 것을 주말의 큰 기쁨으로 삼고 있다는 A의 말을 기억해 보며, 신입생과 함께 체험학습 참여하는 것을 매년 학기 초의 큰 기쁨으로 삼고 있는 나의 2025년 신학기가 이제야말로 비로소 시작되었다.

주말, 잘들 쉬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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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 올해 체험학습에서는 특히 선생님들과 사진을 많이 찍었다.


다른 곳에 갈 수도 없으니, 숙소에서 찍은 사진들이 대부분인데, 예년에 비해 무언가 더 많이 찍은 기분이다. G는 계속 외쳤다.


- 남는 건 사진뿐이에요!


적어도 사진을 찍는다는 건, 기쁘고 즐거운 시간이었을 테니, 우리 삶의 어느 시간에 함께 했던 이 역사적인 기록을 보며 흐뭇하게 웃게 되기를.

세월이 지나도 함께 했던 이 시간은 기억하기를.

사진에 남겨진 이 얼굴들은 잊지 말기를.


* (2025.04.04.(금)) 케이블카를 타고 오른 정상에서 찍은 1학년 전체 사진.


6. 얼어죽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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