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아합니다! (2025.03.22.(토)) *
-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소개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아침과 저녁에 열심히 학생을 상담하고 있던 A에게 말했다.
- A! 상담 많이 했죠?
열심히 달리고 달려서 ‘저, 이제 2명 남았어요!!!’를 크게 외치려고 사전에 포석을 까는 질문을 던진 것이었는데, A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이렇게 대꾸했다.
- 저는 이미 다 끝났는데요!
나는 깜. 짝. 놀라서 말했다.
- 진짜요??
이 말을 들은 B는 나보다 더 놀라며 말했다.
- 다 끝났다고요? 저는 이제 몇 명밖에 못 했는데….
아주아주 바쁜 3주가 지났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에 담임 선생님들이 해야 하는 가장 큰 일은 ‘학생 상담’이다. 30여 명의 학생들에 대한 기초 조사라고 할 수 있다. 나는 3월 첫 번째 상담을 일명 ‘호구조사’라고 부른다. 어디서 왔고 어디서 다니며 가족은 몇 명인지 등을 물어본다. 또 새로 사귄 친구는 있는지, 분위기는 어떤지, 잘 온 것 같은지, 입학 후 학교생활은 어떤지 등도 포함된다.
지금까지는 번호대로 상담을 해왔었는데, 올해는 하루에 3명씩 2주 동안 할 생각으로 미리 인터넷으로 신청을 받았다. 그렇게 진행된 30명의 상담이 어제 최종적으로 마무리되었다. 그야말로 ‘할렐루야!’다.
가장 먼저, 기초적인 내용을 담은 자기소개서를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거주지, 중학교, 부모님 이야기를 하게 된다. 특히 부모님과의 친밀도를 확인하는데, 부모님끼리는 친밀하신지, 학생과 부모님은 친밀한지, 또 학생과 아버지는 친밀한지 등도 물어본다. 상담학에서 보았을 때, 자녀와 아버지와의 친밀도가 자녀의 사회성 형성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항상 확인하는 내용이다. 남학생 학급을 맡았을 때를 돌아보면 부모님끼리의 친밀도나 학생과의 친밀도가 그리 높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여학생들의 경우 거의 90%의 아이들이 부모님과 친밀하다고 했고, 아버지와도 친밀하다고 말했다. 담임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굉장히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다.
부모님 이야기를 거쳐 형제자매 이야기를 하면서는 이야기꽃을 피운다. 대부분 혼자인 경우가 많지만, 형제가 많은 경우도 적지 않아서 동생이나 오빠나 언니의 이야기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갖기도 한다. 언니나 오빠가 우리 학교 졸업생인 경우도 많이 있고 더 놀라운 것은, 부모님이 졸업생인 경우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내가 몇 년 전 담임이었던 학생의 동생을 우리 반 학생으로 맡게 되는 경우도 자주 있는데, 올해 맡은 C의 언니 D도 8년 전에 담임과 제자로 만났었다는 말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이어서 건강 이야기, 좋아하는 과목과 어려운 과목, 학원 이야기, 또 학교에 입학할 때 적었던 진로와 한 달 새에 바뀐 진로 등 미래에 관한 이야기도 중요하게 다룬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16년의 삶을 적은 <My Life>를 보며 좀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발견’하는 것이다. 어디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은 어떠했고, 초등학교와 중학교 이야기를 포함한 16년간의 길지 않은 인생 이야기를 적어 놓은 <My Life>는 아이별로 자유로운 형식으로 작성하는데, 이를 통해서 아이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름의 가치관을 알게 되어서 중요한 시간이다. 모든 아이의 <My Life>가 재미있었고 흥미로웠으며 감동적이었지만, 그중에 E가 작성한 몇 줄의 글이 나의 시선을 끌었다.
- 조용하고 차분했던 성격에도 불구하고, 나는 초등학교에서 정말 좋은 친구들을 만났다.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들은 실수했을 때의 나를 항상 존중해주고 배려해 주었으며, 잘할 수 있다고 응원해 주었다.
글의 내용이 무척 따뜻하고 놀라웠기에 E에게 물었다.
-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 말해 줄 수 있을까요??
E는 이렇게 대답했다.
- 초등학교 5학년 때였는데요, 제가 어떤 일을 잘하지 못하고 실수하는 적이 많았는데도 친구들이 저에게 늘 이렇게 말해 주며 격려해 주었어요. ‘괜찮아! 잘했어!’ 그 말이 저에게 아주 큰 힘이 되었어요.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이 조금 부족한 모습을 보인 친구에게 저런 격려를 할 수 있다니! 그런 ‘배려와 존중’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는 ‘성숙한’ 친구들을 만났던 E가 정말 부러웠기에 문구를 저장해 놓았다. 또 F의 <My Life>에는 이런 내용이 있어서 나를 멈추게 했다.
- 저는 좋아하는 것이 명확합니다. 싫어하는 것은 몰라도 좋아하는 것은 한번 생기면 그것만 좋아하는 편입니다. 저는 피자와 옥수수를 좋아합니다. 고구마피자를 제일 좋아합니다.
2/3 정도를 좋아하는 음식으로 가득 채운 F의 글을 보고 박장대소를 했다. 뒤이어 이런 내용도 나왔다.
- 색 중에서는 보라색을 제일 좋아합니다. 그리고 열쇠고리를 좋아합니다.
입학한 첫날부터 3주 동안 오랜만에 맡게 된 담임 업무를 하느라 무척 바빴는데 가장 서둘렀던 일은 학급의 온갖 일들을 정리하고 분류하고 부서를 정하고 역할을 나누는 일이었다. 하지만 3주 내내 매일 밤 10시가 다 되어 퇴근했던 가장 크고도 중요한 이유는 상담을 통해 아이들을 파악하고 작은 조언을 해 주는 것이었지만, 올해 3월의 상담은 17살 아이들이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들의 길지 않은 인생을 통해 내 삶을 돌아보게 하고 반성하게 하고 부러워하게 하고 급기야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을 품게끔 해 주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기록해 놓는다. 상담하다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참 이야기하던 G에게 말했다.
- 아!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 할 것 같아.
내 이야기를 들은 G는 이렇게 말했다.
- 아! 아쉽다! 선생님이랑 이야기하는 거, 너무 재미있는데….
아이들은 알까.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옛날의 그 시간….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것처럼,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그 누군가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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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로 <My Life>를 다 채운 F의 글에서 발견한 문장.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소개하는 것을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인생을 채워가고 싶다는 이런 멋진 말이라니!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예쁜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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