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생님이 좋아서 고민이에요 *

by clavecin

* 선생님이 좋아서 고민이에요 (2025.05.17.(토)) *


- 선생님이 좋아서 고민이에요.


수년 전에 우리 학교에 계시다가 다른 학교로 옮겨가신 A 선생님을 오랜만에 만났다. 전국에서 똑똑한 아이들은 다 모였다는 B와 C 학교 등에서 아이들을 가르치셨는데, 만날 때마다 이런 말씀을 하셨다.


- 아이들이 똑똑하니까 가르치는 게 어렵지는 않은데, 뭐랄까, 끝까지 관계가 남는 아이가 없더라고요. 아쉬운 게 없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주일날 오전, 30년 전의 사진이 필요하다는 C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교회에서 돌아온 오후 4시부터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상자를 뒤집어서 옛날 사진을 찾아보았다. 지금은 파일로 관리하지만, 옛날 사진은 인화된 것으로만 가지고 있는데 언젠가부터 뒤죽박죽되어 있는 통에 연도도 엉망이었고 이것저것 섞여 있어서 선별하기가 쉽지 않았다.


- 도대체 언제 사진이지?

- 아, 내 옆에 있는 이 사람이 누구더라.

- 이 아이들은 몇 반이었더라….


많은 사진 속에 펼쳐졌던 나의 젊은 시절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지도 못한 깊은 상념에 잠겼다.


- 아, 내가 이랬었구나.


고르고 골라서 뽑은 21장의 사진을 파일로 만들어서 보내드렸더니, 딱 2장만 필요했다며 놀라시는 C 선생님 덕분에 장장 2시간 30분 동안 옛날을 회상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어서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그리고 지나간 옛 시절의 내 모습을 기억해 냈다. 내가 얼마나 뜨거운 사람이었는지를….

지금과는 확연하게 다른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던 대학원 1학년 때, 신문에 있는 작은 광고를 보았다. 인천에 있는 D 직업전문학교였던 것 같은데, 직업전문학교가 어떤 학교인지도 모른 채 직접 그곳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때의 그 광고가 뭐였더라. 아마도 오랜 시간 교사를 모집했지만, 모여지지 않아서 애타는 듯한 그런 문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문구 속에는, 직업전문학교에 모이는 아이들이 얼마나 배움에 목말라하고 있는지를 말하면서 이 아이들을 살리고자 하는 교사를 모신다는 내용이었고, 나는 ‘배움에 목말라한다’라는 이 문구에 혹했었다.

엄마와 함께 지하철로 한참을 달린 뒤 내려서 또 한참을 걸어서 도착한 회색빛 건물이 지금도 내 머릿속에 선명하게 박혀있다. 어두웠던 그 색채. 나는 정말 그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었다. 교장선생님이 나를 받아주었으면 어땠을까를 생각해 본다. 교장선생님이 내 이력서를 보면서 말씀하셨다.


- 선생님은 이 학교에 오실 분이 아닙니다.


교사가 오기를 간절하게 원한다면서 왜 나는 안 된다는 것인지, 순진했던 나는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따져 물었다.’


- 네? 저는 이 학교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 안 됩니다.

- 네?? 왜요??

- 글쎄, 안 됩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지…. D 학교의 회색빛을 뚜렷하게 기억하는 것은, 너무나도 속상해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훌쩍거리며 그 건물을 계속 돌아보고 돌아보며 걸어 내려왔기 때문이다.

지금의 우리 학교에 오게 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도, 설립자이신 E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 공단에서 일하는 교인들의 피땀이 가득한 헌금으로 만든 학교입니다.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로 전환된 이후, 수많은 외제 차가 학교 언덕을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서, 머릿속이 복잡한 것은 사실이다. E와 이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 지금 우리 학교의 모습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E는 이렇게 대답했다.


- 하나님의 뜻이기를 바래야죠.


어제 G 학년 수업을 하고 난 뒤 진이 빠진 모습으로 F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 G 학년 수업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마음을 비워야지. 그렇지 않으면 못 해요.

- 아! 그런가요?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초등학생이라면 더 나을 것 같아요.

- 그냥 내버려두고 해야 해요.

- 이렇게 힘든데도 G 학년 수업을 지원하시는 분들은 대단한 것 같아요.


H와는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 아이들에게 이런 것도 가르쳐야 하나 고민이 된다니까요.

- 맞아요. 말하면 쪼잔하고 그냥 넘기자니 안 되겠고.

- 아이들이 점점 더 어려지는 것 같아요.


내가 생각하는 교육관과 아이들이 생각하는 교육관이 서로 부딪히는 것 같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워서 고민이 될 때가 많아진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머릿속으로는 여러 가지 생각이 몰아치고 있다.


- 이걸 말해야 하는 걸까?

- 그냥 두어야 하는 걸까?

-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휴.


이렇게 혼란스러운 와중에 이번 주에 내가 들었던 말 중에 가장 좋은 말은 I가 했던 말이다.


- 그런데, 선생님이 좋아서 고민이에요.


아,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뒤이어서 내가 말했다.


- 그니깐, 나도 너랑 맞는 거 같아! 너랑 이야기하는 시간이 이렇게 재미있을 줄!


J에 관계된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상담하던 I가 갑자기 내가 좋다는 말을 하니, 복잡하던 내 머릿속이 맑아지고 정리가 되었다. 그래서 K에게 기쁘게 말했다.


- K! I가 그러는데, 내가 좋아서 고민이래!

- 푸하하!

- 진짠데!

- 푸하하!!!


어느새 30년의 세월이 지나서 개교 30주년 행사를 비롯한 다양한 이벤트가 진행되었던 이번 주, D 직업전문학교의 회색빛 건물이 떠오르면서 가르치고자 하는 열망으로 들끓었던 그 옛날 젊은 날이 기억났고, 21장의 사진 속에 있던 나의 앳되고 통통했던 젊은 시절의 모습 속에 담겨있던 순수했던 열정과 소명 의식이 되살아났다. 이런 나에게 I의 말 한마디가 불을 당겨주었고. 그래서 L에게 말했다.


- 개교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려고요.


‘개교 때의 초심’이 뭘까? 아마도, ‘아이들만 바라보기’가 아닐까? 회색빛 건물을 돌아보고 돌아보며 눈물짓던 그때의 내 모습처럼…. 오늘도 아이들의 사진을 보면서 생각한다.


- 누가 나와 끝까지 갈까?

- 어느 녀석이 나랑 계속 연락이 될까?


온갖 일들로 하루에도 세, 네 번씩 눈물이 쏟아져서 화장실로 뛰쳐나가는 요즘이지만,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이 기쁘다. 언젠가는 내려갈 이곳. 아이들에게 내가 뭘 가르칠 수 있을까. 아마도 내가 가르치기보다, 아이들을 통해서 내가 좀 더 성장하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아이들에게 좀 더 기대야겠다.


****************


*** 몇 달 만에 학교에 온 M이 말했다.


- 선생님, 30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계속 출근하셨던 것이네요?


잠깐 멈칫했다가 말했다.


- 네, 그러네요. 30년 동안 쉬지 않고 계속 출근한 것이네요….


30년 동안 쉬지 않고 출근했던 1기 선생님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모두 다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모임은 처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오래오래, 자주 보았으면 좋겠다.

모인 선생님들과 찍은 사진을 요즘 유행하는 N 프로그램에 올리면서, 조금 젊은 이미지로 만들어달라고 했더니 나온 이미지.

1기 모임 (25-05-15) - 2.jpg

#선생님 #개교 #30주년 #사진 #배움 #소명_의식 #초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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