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의 아내로만 살 생각은 없어 (2025.04.26.(토)) *
- 누군가의 아내로만 살 생각은 없어.
학교 행사 때 찾아왔던 졸업생 A에 대하여 B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B에게 물었다.
- A는 대학교 졸업하고 무슨 일을 했다고 하던가요?
- 특별한 일은 하지 않았나 봐요.
- 아, 그냥 쉬었구나.
그때 B는 나를 보면서 이렇게 짚어주었다.
- 쉰 게 아니라, 아이들을 키운 거지.
- 아?? 그렇게 말할 수 있겠네요.
고등학교 때 선생님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똑똑하기도 했던 A가 명문 여대로 진학한 뒤 소식이 궁금했는데, 어느 날 좋은 엄마가 된 모습으로 우리에게 연락해 주었다. ‘쉬었구나.’라는 나의 말을 ‘아이들을 키운 거지’라는 말로 B가 정정해 주었을 때 나는 사실 깜짝 놀랐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랄까. 어떤 직업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이 아니면 ‘쉬고 있다’라고 쉽게 생각하던 나를 일깨우는 말이었으니까.
수업하다가 내가 예뻐하는 C를 보게 되었는데 눈두덩이가 이상했다. C를 남겨서 물어보았다.
- 눈에 무얼 칠한 건가요?
- 죄송해요.
- 어느 녀석인가요??
- 죄송해요.
- 어느 녀석이 흔든 건가요?
- 죄송해요.
- 데리고 오세요.
- 아무도 없어요.
나와 C의 대화를 듣던 아이들은 깔깔대며 웃고 난리였지만, 멀쩡하게 다니던 C의 달라진 모습에 나는 조금 속상했다. C는 무척 성실하고 순진한 녀석이라고 챙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 아니, 이 녀석이! 잘 참고 다닐 것이지! 이러면 안 되는데!
쉬는 시간마다 늘 복도에 나와 있는 D 학급과 수업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 여기서 누굴 사귈 건가요?
- (모두) 하하하!
- 설마, 여기 아기들하고 사귈 건 아니죠?
- (모두) 하하하!
- 누군가를 좋아할 수는 있지만, 혹 누군가 사귀자고 하면 이렇게 해 보세요. 턱을 조금 들고 콧대를 올리고, 약간 눈을 내리깔고, 이렇게 말하세요. ‘나랑 사귀려면, 성적표 가져와!’ ‘나랑 대화는 되어야 하잖아?’
그러면 아이들은 박장대소를 하지만, 한마다 덧붙인다.
- 뭐, 영어 단어나 수학 공식 가르치면서까지 사귀려면 그렇게 해도 되고요.
3학년 E 학급 시간에 F가 진로 발표를 하기로 했다. 본인의 관심 진로 분야를 발표하는 것인데 F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 저는 아직 진로를 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진로를 찾게 되는 과정을 설명해 보려고 합니다.
흥미롭게 듣고 있는데 F가 이렇게 말을 이어간다.
- 저의 롤 모델은 저희 어머니입니다.
F의 이 말에 모든 학생이 집중했다.
- 여러분이 알고 있는 것처럼, 저는 고등학교 1학년부터 2학년까지 아무 생각 없이 즐겁게 살아왔습니다. 공부는 하나도 하지 않았고요. 그러다 2학년 겨울방학 때 엄마와 이야기하다가 엄마에게 질문했습니다. ‘엄마는 왜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한 거야?’ 엄마가 이렇게 대답해 주셨습니다. ‘누군가의 아내로만 살 생각은 없었다’라고. ‘내 이름 석 자로 살아가기 위해서 공부했다’라는 말에 제가 자극을 받게 되어서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부터 조금씩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F의 말에 우리 모두 다 깜짝 놀랐다. 누군가의 아내가 되기는 하겠지만, 누군가의 아내로만은 살지 않겠다는 말이 어쩜 그렇게 멋있었는지! 지금도 계속 공부하고 연구하고 있는 엄마를 롤 모델로 삼는다는 F가 1학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책상에서 공부하고 있는 것을 보니 뿌듯하면서 기대감이 뿜뿜 솟는 것을 느낀다.
언젠가 G에게 이야기했다.
- 여학생 학급 담임을 오래 했었고, 또 남학생 학급 담임을 오래 하다가 ‘이제 내년에는 여학생 학급을 맡아야겠다’라고 생각하던 중에 학년 부장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올해 다시 담임을 하게 되면서 여학생 학급을 하게 되었는데 이유는 이것이었죠. ‘똑똑한 여학생이 많은데, 여학생을 잘 키워보자!’ 여자가 중요하니까요! 그런데, 내년에는 어떻게 할지 조금 생각 중이에요. 나는 학생을 좀 거칠게 다루는데 여학생은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니, 답답해서 속이 터질 것 같아서요. 하하.
소리를 지를 수도 없고 때릴 수도 없고 나긋나긋하게 이야기하는 것에 지쳐가고 있던 차에, 다행스럽게도 아이들이 조금씩 조금씩 변해가는 것을 보고 있다. 즉, 거칠게 다루는 나와 잘 맞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 그런데 여기저기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온다.
- 선생님 반 아이들이 두 눈 똑바로 뜨고 수업을 잘 듣는데요?? 깜짝 놀랐습니다!
- 선생님 반 아이들이 똑똑하던데요, 말을 잘 알아듣네요?
그래서 아이들과 매일 복창한다.
- 천천히 걷자. (천천히 걷자)
- 쉬지 말고 걷자. (쉬지 말고 걷자)
- 날아오를 수도 있으니! (날아오를 수도 있으니!)
이제는 아예 이렇게 이야기한다.
- 날아오르자! (날아오르자!)
어디 하나에 꽂히면 정신을 못 차리는 나인데, 매일매일, 주말에도 우리 반 아이들이 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어서 정신을 못 차리겠다.
- 내가 뭘 해 주어야 할까?
- 내가 뭘 할 수 있는 거지?
- 우리 반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하지?
세상을 바꿀만한 놀라운 인재는 아니더라도, 세상을 바꿀 수도 있는 귀한 아이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고 주어진 재능을 마음껏 꽃피우게 해서 저 멀리 날아오르게 하고 싶다는 생각. 지금은 온통 이 생각뿐이다.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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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전 나를 보며 H가 말했다.
- 너는 집에서 살림만 해도 잘했을 거야.
나를 잘 알아보았던 H였기에 많이 좋아했었다. 직장에 다니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집에서 살림하는 것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일일 것이다. 나를 정확하게 보았던 H의 말처럼, 아마 나는 집안 살림도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잘했으리라 추측해 본다. 집안 살림 같지 않게 정말 집중해서 난리를 피우며 재미있게 하지 않았을까! 하하. H는 덧붙여서 이런 말도 했다.
- 아마, 애들도 엄청나게 닦달했을 것 같아.
그 말도 빙고! 역시 난리를 피우며 아이를 잡지 않았을까 싶다. 하하.*^_^*
근래에 찾아오는 졸업생들이 많이 있다. 1기부터 작년 아이들까지 수시로 찾아오고 연락을 주어서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외국에서 찾아온 아이들도 있었다. 모두가 누군가의 아내가 되거나 집안 살림을 잘하기 위해 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지 않았고, 각자 나름 뚜렷한 비전을 가지고 공부하거나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으며, 이미 직장에 다니면서 조금씩 성과를 이루어가고 있는 아이들도 많았다. 또 오랜 시간 마음에 품고 있던 꿈을 위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아이도 있었다.
여학생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 네 돈은 네가 벌어서 써!
- 다른 사람에게 받아서 쓰지 마!
- 네가 벌어서 누구 눈치 보지 말고 마음껏 쓰라고!
- 너도 능력이 있으니까!!!
나를 찾아왔던 아이들은 모두 이 말대로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즉, 능력 있는 직장 여성의 삶을 표방하며 성장해 가고 있었다. 모두 예쁘고 멋있었다!
아마 우리 반 아이들도 본격적인 첫 번째 관문인 다음 주 1차 지필고사를 위해서 지금도 시간을 쏟고 있겠지. 재능을 꽃피우기 위해서 진로를 찾고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이 지치지 않기를 바라며.
* 지난 (2025년 3월) 전국연합학력평가를 치르고 있는 아이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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