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잊지 않을게요. *

by clavecin

* 잊지 않을게요. (2025.10.04.(토)) *


(오늘 글은, 읽기에 다소 불편할 수 있습니다. 또 생각하기에 따라 약간 비밀스러울 수 있는 내용이 나옵니다.)

- 잊지 않을게요.


개교 이래로 미국과 일본으로 국외현장체험학습을 가고 있다. 보통 미국은 여름방학에, 일본은 겨울방학에 가는데, 올해는 여름방학이 없어서 미국은 이번 추석 연휴에 가게 되었다. 몇 년 전에는 겨울방학에 일본뿐만 아니라 태국도 갔었고, 또 근래에는 라오스도 가기 시작했다. 미국과 일본은 ‘연수’라는 부제가 붙지만, 태국과 라오스는 ‘선교’라는 부제가 붙는다. 모두 신청자를 받아서 진행하는데, 인원수가 많지는 않다. 아마도 학업 때문에 부담스럽기도 하고 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 아닐지 생각한다.

인원이 적더라도 면접을 진행하는데, 이번 라오스 선교는 60명이 넘는 아이들이 신청했다고 들었다. 나도 미국 연수보다는 라오스 선교에 대해 좀 더 강조해서 말하기도 했다.


- 라오스는 의미가 있는 연수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1, 2학년 중에서 우리 반 신청자가 13명(?)으로 제일 많았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학교 행사에 신청하는 아이들이 많으면 담임으로서는 기분이 좋다. 아이들이 활발하게 학교생활을 한다는 의미니까. 여하튼 얼마 전 우리 반 A가 와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 선생님! 라오스 선교 최종 합격자가 발표되었는데요, 저희 반이 제일 많아요!


최종 28명이 합격했는데 그중에 5명이 우리 반 녀석들이라며 A가 ‘너무도’ 좋아하길래 명단을 보았는데, A는 없었다. 자기는 상관없지만, 우리 반이 제일 많이 뽑힌 것에 대해서 좋아하는 A의 순수한 마음이 부러웠다. 그런데 B 선생님이 나에게 이런 부탁을 하셨다.


- 선생님! 라오스 선교 합격자 인원을 조금 조절해야 할 것 같은데, 아무래도 선생님 반 아이들이 제일 많이 뽑혔으니, 아이들에 대해서 ‘담임 의견서’를 써주면 참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순위도 매겨주시면….


이게 무슨 말이지? 아마도, 인솔 교사 3명까지 총 30명이 가야 하는데, 아이들을 27명이 아니라 28명을 뽑아 놓았으니, 1명을 추려야 한다는 이야기 같았다. 난감해하면서 5명의 아이에 대해서 담임 의견과 순위를 매겨 보았다.


- 학생 1은 이러저러한 훌륭한 아이입니다. 1순위로 추천. 학생 2는 저려 이러한 좋은 아이입니다. 2순위로 추천. 학생 3은…. 2순위로 추천. 학생 4, 학생 5…. 2순위로 추천.


이렇게 작성했다. 5명 중에 딱 1명을 골라놓고 나머지 아이들은 2순위, 즉, 모두 다 추천한다는 이야기였고, 1명을 잘라낼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모든 아이의 의견서 마지막에는 이런 설명을 똑같이 넣었다.


- 라오스 선교가 학생에게 매우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하며, 라오스 선교팀에 굉장한 복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저희 반 아이들은 여러 면에서 잘 배웠기에 선생님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내 추천서를 읽어본 B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 아….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어요.


결국, 최종적으로 우리 반 5명 모두 데리고 가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또 며칠 전에 이런 연락을 받았다.


- 다른 학급에서 1명이 못 가게 되어서, 나머지 아이들에게 뽑기를 시켰는데, 선생님 반 아이 C가 뽑혔어요. 선생님 반에서 총 6명이 가게 된 거죠.


라오스 28명의 아이 중, 6명이 가게 되었다니, 한편으로는 뛸 듯이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한다.


- 내가 의견서에 쓴 것처럼, 아이들이 라오스팀에서도 잘해야 할 텐데….


며칠 전 라오스 관련 선생님들과 함께 식사하게 되었는데, 라오스팀 이야기가 나왔다. 면접을 기획했던 D 선생님께 질문했다.


- 어느 선생님들께서 면접하셨을까요? 저희 반이 많이 뽑혀서 우리 반 아이들을 아는 선생님들이신가 해서요.


D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 아이들이 많아서 몇 팀으로 나눠서 했고 8명의 선생님이 각각 맡으셨죠. 학급 표시 하나도 하지 않고, 아이들만 보고 면접을 진행한 것인데, 뽑고 나니 E 학급 (우리 반)이 제일 많더라고요. 인원을 조절해야 했는데, 면접하신 선생님들이 이 아이, 저 아이, 뽑힌 아이들을 꼭 데려가야 한다고들 말씀하셔서 아무도 못 잘랐어요(아마 이런 내용이었던 듯.).


내가 말했다.


- 저희 반을 특정한 것이 아닌데도 많이 뽑힌 거네요. 지원한 아이들도 모두 괜찮은 녀석들이었지만, 신기하게도 모두 잘 뽑으셨어요! 감사합니다!


그때 면접과는 상관없는 F와 G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행동하는 아이들이 있더라고요. 우리도 그런 면이 있지만요. 그런 것을 잘 볼 줄 알아야 하는 것 같아요.

- 말 잘하는 것 가지고 사람을 뽑는 것은 오류가 있어요. 다음에는 담임 추천서가 함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그 아이에 대해서는 담임이 가장 잘 아니까요.


모두 이 말에 동의했다. 면접에서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유리하게 되어 있으니까. 말을 잘하지만 별로인 사람이 있고, 아주 괜찮은 사람이지만, 말은 꽝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 인생에서 알고 있으니까. 이야기 끝에 내가 이야기했다.


- 저희 반 아이들 모두, 학급에서 배운 대로 잘할 거예요.


매일 아이들 얼굴을 보면서 사람에 대해 배워가는 교사이지만, 사람을 제대로 볼 줄 아는가를 늘 돌아보게 된다. 나는 H에 대하여 동그란 사람이라고 알고 있는데, I는 세모라고 알고 있기도 하고, J는 네모라고 알고 있기도 한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왜냐하면 나와 I와 J는 H에 대하여 서로 다른 일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또 같은 일을 경험했더라도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한 사람에 관한 생각은 조금씩 달랐다.

사람을 제대로 볼 줄 안다고 자평하는 나이지만, 안타깝게도 그 생각이 뿌리째 흔들릴 때가 종종 있다.


-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 내가 정해놓은 어떤 모습에 그 사람을 끼워 맞추고 있었던 걸까.

- 아, 언제쯤 사람을 제대로 볼 수 있을까.


아, 사람을 제대로 볼 수는 있는 걸까.


**********************


***올해 나와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세 사람과 각각 따로 식사했다. 모두 내 생일을 축하해주는 의미였다. K는 이렇게 말했다.


- 태어나 주어서 고마워.


L은 이렇게 말했다.


- 같이 밥 먹어 주어서 고맙습니다.


M은 또 이렇게 말했다.


- 생일을 챙겨주고 싶었어요.


나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존경과 사랑받는 K와 L과 M이 나에게 선사해 준 식사는 지금까지 내가 개인적으로 경험한 것 중에, 진짜, 가장 비싼 식사였다. 여기서 ‘비싼’이란, ‘돈을 많이 지급한’이라는 뜻이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하하!


-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태복음 6:21)


나에 대해서 비교적 정확하게 알고 있는 이 사람들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불편해하며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는지도 잘 알고 있다. 물론 나에 대해 알고 있는 것보다 잘 모르는 부분이 훨씬 더 많지만, 그것 또한 받아주고 눈감아주고 이해해 주며, 무엇보다 굳이 물어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또 내가 그들의 그 호의와 따뜻함에 일일이 답하지 못하고 그렇게 다정다감하게 대하지 못하는 것도 넘어가 주는, 착한 사람들이라는 것도 얼마나 감사한지!

나의 모습, 지금의 이 부족한 모습 그대로 보아주고 받아주고 있는 K와 L과 M에게 말해 본다.


- K! L! M! 기억해 놓을게요. 내 삶의 2025년에 당신들이 내밀었던 그 다정한 손길, 잊지 않을게요.


***(2025.09.05.(금)) 채플 시간에 나왔던 찬양 중 가사 한 구절.

서로의 모습 이대로 사랑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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