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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인이시니까요! *

by clavecin

* 귀인이시니까요! (2025.11.08.(토)) *


- 선생님은 제 귀인이시니까요!


언젠가 우리 반 학생이었던 A가 교회를 옮기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이유는, 교회에 불편한 친구 B가 있는데 일요일마다 마주쳐야 해서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함께 들은 A의 친구 C가 말했다.


- 다른 교회에 가도 불편한 사람이 또 있을 거야.


그 이야기에 나도 고개를 크게 끄덕거리며 말했다.


- 어디에나 불편한 사람은 있는 거래. 많이 힘들겠지만, 그냥 무시하고 다니면 어떨까.


B로 인해서 힘들었던 마음이 새롭게 사귀게 된 친구 D에게로 옮겨가면서, A는 교회를 옮기지 않았다.

요즘 많이 사용하는 빌런(villain)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악당, 악역, 나쁜 사람이라는 뜻이 있지만, 근래에는 그 뜻이 확대되어 조금 불편하지만, 존재감 있는 사람, 행동이나 태도로 주변을 피곤하게 하는 사람, 혹은 좋은 의도였더라도 결과적으로 불편함을 만드는 사람을 일컫는다고 한다. 한마디로, ‘불편한 사람’이라고 하면 되겠다. 중요한 것은, 어느 곳에서나 빌런이 있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어느 때나 어느 곳에서나 빌런이 있었다. 두루두루 원만한 성격이 아니어서, 뾰족하고 날카로운 데다 예민하기까지 ‘했던’ 성격이어서 무엇 하나 쉽게 넘기지 못하니 이것저것, 이 사람 저 사람, 온통 불편한 것투성이였다. 사실 대학교에 다닐 때까지도 주변에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학생 때는 얌전한 학생이어서 그 감정을 속으로만 간직하고 있었기에 더 힘들었던 것 같다. 그 감정들을 어떻게 풀었을까. 아마도 종이에 그 사람 이름을 쓰고는 두 줄을 긋고 지우면서 감정을 해소했던 것 같다. 또 베개를 밟으며 화를 솎아 내기도 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는, 정말 상상조차 못 했던 전쟁터 한가운데 서 있는 느낌이었다. 그 어디에서도 본 적도 느낀 적도 없는 다양한 사람들로 인해서 너무너무 힘들었다. 그 감정들을 어떻게 풀었을까. 직장 생활을 하면서는 조금씩 괄괄해진 성격 때문에 그 앞에서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도 했던 것 같다. 불같았던 감정이 착 가라앉혀진 말랑말랑해진 상태가 되었을 때,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쑥스럽게 감정을 해소하고, 더 친밀해진 것 같다. 하지만 늘 생각했다.


- 아,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상을 줘야 해. 모두 다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걸까.


맞다. 직장 생활을 한다는 것 자체가 큰 상을 줘야 하는 이유가 된다고 생각한다. 감히 그 무엇과 비교할 수도 없는 놀라운 전쟁터!

누구하고나 ‘하하’하면서 손 붙잡고 화기애애하면 좋으련만 그렇게 할만한 사람을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인 나에게는 무수히 많은 빌런이 있다. 그도 알고 나도 알고 있는 그 불편한 감정을 품은 채 묵묵히 직장 생활을 하고 있지만, 모두 다 성인이고 지식인이기에, 대부분은 티를 내지는 않는다. 당연히 나도 수많은 사람의 빌런이 되어 있을 것이다. 빌런을 피해서 다른 곳을 가더라도 어디에나 항상 빌런이 있다니, 재미있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빌런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귀인(貴人)이 있다.


- 귀인(貴人) — 지위나 신분이 높거나, 자신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푼 사람.


‘귀인’이란, 특별히 나를 챙겨주고 도와주는 사람을 일컫는 말인데, 특별한 전환점이 되도록 인생의 어느 지점에 나타난 사람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돌아보면 빌런과 같이, 귀인도 자주 등장했었다. 어디에서나 빌런이 있다면 어디에서나 귀인도 있을 법한데, 빌런보다는 좀 귀하다. 빌런은, 빌런이라는 것을 알면서 불편을 감수했지만, 귀인은,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1년 일찍 들어갔던 초등학교 때의 담임 선생님 여섯 분, 특히 5학년 때 오*연 선생님, 6학년 때 최*열 선생님, 초등학교 때부터의 한*열 피아노학원 원장 선생님, 고등학교 때 김*선 음악 선생님, 김*서 작곡 선생님, 대학교 때 백*동 교수님, 대학교 동아리 선배 김*숙 언니, 직장에서의 김*중 목사님, 이*선 선생님 등…. 나에게 귀인이었던 분들을 꼽으려고 하니 끝도 없이 나온다.

귀인들 덕분에 내 삶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유지되고 있는데, 요즘 나를 ‘귀인’이라고 부르며 ‘따르는’ 사람이 있다. 갑자기 내 삶에 ‘훅’ 들어온 E. 얼마 전 F 선생님이 말했다.


- E 선생님이 G(나)를 따르던데요?

- 아, 어떻게 아셔요??

- 보면 알지.

- 그러니까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다른 그룹과 식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나에게 고개를 돌려서 인사를 한다거나,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 내 옆에 앉아서 요모조모 이야기한다던가. 그러면서 말한다.


- 선생님은 제 귀인이시니까요.


어느 날 내 책상 위에 놓여 있는 휴지 한 조각을 보며 생각했다.


- 뭐지??


종이가 없어서 휴지에 쓴 글자만으로는 ‘내 마음으로 들어오라는’ 의미인 줄 알았는데, 휴지를 들춰보니, 떡 한 덩이가 있었다.


- 이게 뭐지?


점심시간에 만난 E가 나에게 말했다.


- 떡 받으셨어요?

- 아??


E가 이어서 말한다.


- 선생님은 제 귀인이시잖아요. 같이 취미 활동하는 선배가 떡 4개를 저에게 주었는데, 이 떡을 누구에게 줄까 하고 고민하다가 H, I, J 선생님, 그리고 선생님께 드리는 거예요!


난, 깜짝 놀랐다.


- E 선생님은 안 드시고요??

- 네! 저는 안 먹고요!

- 떡 4개 중의 1개를 저에게 주다니! 자기도 안 먹고! 감동인데요!


식사하다가 E 선생님에게 단순한 내 생각 하나를 말했을 뿐인데, E 선생님은 내 말에 따라서 무언가를 결정하셨고, 그 이후로 나를 ‘귀인’이라 부르며 이것저것을 챙겨주고 있다. 며칠 전에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 선생님! 운동을 하셔야 합니다! 식사 거르지 말고, 일하시다가 간간이 산책도 하시면서 건강도 챙기셔요. 바깥바람 쐬며 걸으면 음악, 미술뿐만 아니라 글쓰기의 영감도 아주 많이 떠오르실 거예요.


팔짱을 끼고 운동장을 돌며 말하는 E의 목소리에서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그날은 운동장을 두 바퀴나 돌았다. E는 내가 글 쓰는 것을 알고는 매주 글이 올라가는 사이트를 알려달라고 하기도 했고, 내 뒷모습을 보고 뛰어와서는 내 양산을 대신 들어주고 항상 이런저런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기도 했다. K가 말했다.


- 아니, 요즘 같은 때, G(나)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사람이 있어??

- 음…. 그러니깐요.


담담하게 E에게 말해본다.


- 내가 E의 귀인이 아니라, E가 저의 귀인인 것 같아요. (불쌍한) 나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귀인이 아닐까요.


빌런 때문에 힘들기도 하고, 어떤 빌런은 아주 가끔 귀인이 되기도 해서 놀라게도 하며, 애지중지하던 귀인이 빌런이 되어가는 슬픔을 말없이 견뎌내기도 해야 하는 인생사에서, 지금 내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생각지도 못한 귀인을 통해서,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려는 것일까. 앞뒤 따지거나 아무것도 계산하지 않고 다만, 그냥, 고마울 뿐이다. 그리고 생각해 본다.


- 내가 누군가의 귀인이 되는 것을 원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냥, 어떤 귀인이 나에게 조용히 찾아와서 아주 오랜 시간 함께 머물면 좋겠어.


*** E가 조용히 놓고 간 떡

37, 귀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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