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타(現time) (2021.12.04.토) *
산타클로스가 선물을 줄 것이라는 ‘아름다운 환상’을 가지고 양말을 머리맡에 두고 기대감에 부풀어 잠들었던 순수한 어린 시절, 그 선물이 사실은 부모님의 선물이었다는 것을 언제쯤 알게 되었을까....
크리스마스이브에 산타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하는 7살 아이와의 전화 통화에서 아직도 산타를 믿느냐고 반문하던 트럼프를 소환하지 않더라도 순수한 동심을 유지하도록 해 주는 것이 맞는지, 아님 그것은 거짓이라고, 산타는 없다고 사실을 말해 주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연구는 계속 있었다.
동심을 위해서는 사실을 그대로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는 의견과 순수한 동심을 가능하면 지켜주어야 한다는 의견들이 팽팽했었던 것으로 안다. 요즘 아이들은 훨씬 더 빨리 현실을 알아버리지 않을까...
17살이 갖는 일반적인 정서가 있는데 일반 아이들보다 왠지 착하고 예의 바르고 일명 순진해 보이는 아이들이 종종 있다. 보면서 흐뭇하기도 하고 어떻게 저렇게 곱게 자랐을까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어서 담임 선생님께 여쭈어본다.
- 선생님... 혹시 A가 같이 어울리는 친구가 있나요????
다행히 대부분은 ‘친구가 있다’는 대답을 듣기도 하지만 그 순수함을 ‘받아들여 줄’ 친구가 없어서 홀로 있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욕도 좀 하고 거친 모습도 좀 보여주어야 하는데 아직도 ‘아름다운 세상’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이어서 걱정이기도 하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학교의 대표 프로그램 중 하나는 여름방학에 10여일 동안 미국연수를 가는 것이었다. 초반에는 서부만 가던 연수 일정이었지만, 동부에서 서부까지 걸쳐가는 프로그램으로 바뀌어서 한동안 진행이 되었었다. 지도교사로 3번을 다녀왔는데 어느 해에는 동부에서 서부에 도착한 날에 라스베이거스를 들러야 하는 일정이 있었다. 서부의 라스베이거스는 ‘밤에만’ 보아야 하는 것이고, 항상 밤에만 보았었는데 그때는 일정이 맞지 않아서 낮에 라스베이거스를 방문하게 되었다.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밤의 오색찬란한 조명 불빛 아래에서의 신비롭고 화려하고 따뜻해 보이던 라스베이거스가 그 조명 불빛을 걷어낸 환한 낮에는 얼마나 삭막하고 썰렁하고 볼품없는지를 보고서... 정말 큰 충격이었고 마치 못볼 것을 본 듯한 느낌이었다.
사실 낮의 라스베이거스가 진짜 모습일 수 있는데, 우리는 무언가 꾸며져 있는 것을 보고 좋아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낮의 라스베이거스는 보고 싶지 않다고, 진짜가 아닌, 꾸며진 모습이더라도 밤의 라스베이거스를 보아야 한다고... 환한 낮에 라스베이거스를 방문했던 그 학년 아이들이 얼마나 불쌍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말했었다.
- 나중에 커서, 밤에 다시 와야 해...
라스베이거스는 밤에 봐 주어야 하거든...
이건 진짜 모습이 아니야..
고3 때는 사실 내가 가려는 학교가 어떤 곳일지 상상을 해 볼 시간, 마음이 없었다. 앞선 글들에서 언급했듯이, 매일 눈앞에 주어진 일들을 ‘해결’하느라 ‘미래’를 상상하고 꿈꾸는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은혜’로 들어간 대학교에서 생활하면서 어느 날인가 깨달았던 것은 이것이다.
- 아니... S대가 이정도면 다른 학교는 어떻다는 걸까..
그게 무슨 일이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대학 생활이 ‘장미 빛일 것이라고’ 아예 꿈꾸고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나였음에도, 무언가 ‘기대’하던 나의 눈에 어떤 ‘적나라한 현실’이 보였던 것이 아닐까 한다.
그 일이 무엇이었을까 억지로 생각해 보면, 회색빛 낡은 건물들, 널부러져 있던 학생회관 의자들도 아쉬웠지만 무엇보다 무언가 꽉 채워져 있지 않았던 수업들, 쉽게 휴강을 일삼았던 어떤 수업들, 3학점짜리인데도 1시간 정도만 했던 것 같은 수업들.. 뭐 수업에 대한 안타까움들이 좀 더 컸었던 것 같다. 물론 빡세게 수업을 했어도 불만이었겠지만 어렸던(?) 나는 무언가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사실주의 – Realism’가 1840년부터 1870년대를 풍미하면서 사람들의 환대를 별로 받지 못했던 이유는, 추하고 불편한 현실을 미화하지 못했던 탓일 수 있다. 노동자와 삶의 적나라한 모습을 그렸던 귀스타브 쿠르베(1819~1877, 프랑스)의 ‘돌 깨는 사람들(1840)’ 작품은 그 당시 일반 서민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 놓아서 아름답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그 시절 사람들의 모습이었고 실제하는 사실이었다.
반면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 프랑스)는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실주의 화가이면서도 ‘만종(1857)’ 과 ‘이삭 줍는 여인들(1857)’과 같은 따뜻한 농촌을 그려 약간의 꾸밈을 넣기도 하였다.
이후에 나온 ‘인상주의 – Impressinism’는 창세 이래로 지금까지 존재해 왔던 ‘안개(Frog)’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신비롭게 보이게 해 주었고 사물의 명확성을 흐트러 놓으며 빛을 부각시킨다...
사실주의 이전의 그림은 천사나 신화의 영웅을 아름답고 웅장하게 포장해서 그렸었는데 이런 그림을 놓고 쿠르베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 내가 천사 그리기를 원하면 천사를 내 눈앞에 데려와라.
보지 못한 것을 상상하여 아름답게 그리는 것을 거부하고 눈에 보이는 비참한 현실을 똑바로 직면했던 사실주의는 그 이후에도 미술과 문학에서, 지금까지도 우리의 삶 속에서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 눈에 보이는 (불편한) 현실을 직시할 것인가.
아님, 그 이면에 가리워져 있는 다른 (아름다운) 면을 보도록 노력할 것인가....
‘현타(現time)’ 라는 단어가 있다. ‘현실 자각 타임’을 줄인 말로, 헛된 꿈이나 망상 따위에 빠져 있다가 자기가 처한 실제 상황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사실이 아닌 무언가에 홀려서 실제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다가, 그 장막이 걷어지면서 실제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연구에 의하면 연애 시절에는 일명 ‘사랑의 콩깍지’가 벗겨지는데 100일 정도라고 하고, 결혼 3년이 지나면 모든 콩깍지는 완전히 벗겨진다고 한다. 처음에는 좋아하는 이유가 되었던 어떤 부분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단점으로 보이기 시작해서 힘들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듣는다. 원래 처음부터 있었던 사실이었지만 사랑에 빠져서 제대로 보지도 느끼지도 못했던 것을 뒤늦게 알고 깨닫게 되어서 외면하고 싶어진, 믿고 싶지 않게 된 것이라고나 할까..
사람이나 사물이나 어느 분야나, 잘 알지 못할 때는 아름답고 신비하고 귀하게 보이지만 그것을 경험하고 조금씩 알게 되면, 그 적나라한 실체가 보여지게 되면서 함부로 하게 되고 다 아는 것 같이 되면서 쉽게 생각하게 된다.
핑크빛으로 알았던 것이 원래는 잿빛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어떻게 해야 할까... 핑크빛으로 잘못 보았던 자신을 탓해야 할까... 아님 핑크빛인 것인양 나를 혼란스럽게 했던 상대를 탓해야 할까....아니면 그냥 눈을 감아 버리고 끊어내야 하는 걸까...
내가 내린 결론...
- 사실 산타클로스는 없지만, 산타클로스를 믿었던 때를 후회하지는 않기
- 사실 친구가 없이 혼자일 수도 있지만, 일부러 순수함을 망가뜨려 오염되지는 말기
- 사실 볼 것 없는 사막 한가운데에 세워진 도시이지만, 화려한 가면을 썼더라도 밤의 라스베이거스가 진짜라고 믿어 보기
- 사실 S대라도 당연히 수업이 만족스럽지 못할 수 있지만 그래도 S대라는 것에 현혹되어 보기
- 사실, 인생 자체가 고난이지만,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말을 왜들 그렇게 주구장창 외치고 있는지 생각해 보기
- 사실 헛된 꿈이나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었지만, 현타가 왔을 때, 다시 한번 헛된 꿈이나 망상에 사로잡혀 보기
- 사실 콩깍지가 씌워져서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지만, 벗겨진 콩깍지를 다시 주워서 제대로 써보고 처음처럼 바라보기...비록 잘못 보고 있는 것일지라도........
- 그래서 결국, 현타가 왔더라도, 인정하지 말고 거부해 보고, 처음처럼 지내보기... 사실이 아닐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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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생활에 익숙해져서 편해진 12월의 아이들을 보며,
낯설지만 어색했던 3월의 모습으로 돌아가면 어떨까 하는 제안을 했었던 글...
학교에 대한 확실한 자각을 한 아이들이,
다시 콩깍지를 씌우기를,
현타의 순간을 조금 늦추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