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이제 자유야"
그 대답에 가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달콤할 것만 같던 그 말이 막상 귓전으로
들려오니 머릿속에 울리는 걸 넘어
메쓰꺼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의미를 부여해 가며 연명했던 불길이 막 다른 곳에
다다른 듯 숨을 죽이고
생명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뜻이야"
A는 눈을 마주치지 못하며 말을 내리듯 말했다.
어떻게든 의미를 찾아야만 했다.
여기서 불이 꺼지면 영영 주위를 못 돌아보겠지
그는 웃으며 손을 붙잡는다.
"아무 의미 없어"
온몸이 부르르 떨려오며,
A는 주위에 다니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듯
그의 손을 뿌리치며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재미난 볼거리에 가던 길을 멈추던
사람들의 발걸음은 곧이어 수근거림이 웅성거림으로
입들을 움직였다.
이런 게 아니었다. A가 바랬던 이별은
이런 게 아니었다.
이젠 문드러지고 터질 대로 터져
볼품없어진 운동화를 바라보며
서서히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래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
A는 아스팔트 한복판에 주저앉아
눈물 흘리기 시작했다.
위로받고 싶은 게 아니었다.
상황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도
붙잡고 싶은 마음에서도 아니었다.
저 대답이 A를 너무도 초라하고 비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와 있었던 시간들이 모두 날카로운 송곳니가
되어 앞으로의 갈길에 계속해서 마주치게
될 거란 사실도 A를 더욱 옥죄여왔다.
본능이 알려 준걸지도 모른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저 "아무 의미 없다"라는
대답처럼 다가올걸 예고하듯이
A의 두 팔에 숨어버린 얼굴로
뜨거워진 눈시울, 귓가에 들려오는
무심한 찻소리, 애써 외면하려 했던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눈물과 같이 섞이고 있었다.
자유가 초라했다. 네가 말한 그 자유란
설렘 가득한 생생하고 파릇한
젊음의 기회가 아닌 마치 이곳에 덩그러니 버려진
갈 곳을 잃어버린 빛바랜 짐덩이였다.
들썩이는 호흡에 덩달아 몸을 가라앉히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린 순간 흐려진 눈시야로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이 보여왔다.
현실이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와서
A는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흐르는 콧물이 주체를 못 해
지켜보고 있던 사람이 휴지를 건네주었다.
A는 차마 쳐다보지 못하고
눈물과 콧물범벅이 된 손으로 나지막이 받아들였다.
이제야 귓속에서 웅웅 거리며 막히던 소리가
뚫려 서서히 들려오기 시작한다.
이걸 어떻게 담고 살았을까?
이렇게 울럭거리는 마음이
언제든 넘쳐흐르기 직전이었을 텐데
멘탈이 약하고 예민하다는 그의 말에
평소에 그런 줄로 순응하던 A는 그렇게
마음을 숨기고 가두워왔음을
아니 그렇다고 표정이 숨겨졌을까
오늘만큼은 주위의 세상과 A의 시간이
다르게 흐름을 이해해주어야 한다.
휴지를 건넨 이가 닦는 A의 모습을 보고
최소한의 배려로 더 이상 묻거나
다독일 필요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그 자리를 떠나 주었다.
서서히 그가 떠난 그 자리에서 시선이
운동화로 바뀌며
A는 결심을 한다.
2년 전, 그가 사준 운동화를 벗기로 말이다.
그를 위해 움직인 발이다.
처음으로 밖에서 운동화를 벗어본다.
여름철 뜨거울 줄 알았던
아스팔트 위에 새 하얀 양말을
디디었을 땐 해가 저물어
차디찬 감각이 살아있다는 걸 느끼게 해준다.
A는 살아있다.
후덜 거리던 다리를 붙잡고 두 손으로 바닥을 짚는다.
한걸음 한걸음 내딛기 시작했다.
A가 가야 하는 바닥을 똑바로 바라보며
아스팔트 사이에 끼어있는 잡초 같은 풀과
이름 모를 꽃들을 새기며 A는
한걸음 한걸음 내딛기 시작했다.
A는 집으로 향할 것이다.
모르는 사람들 사이로 한 손엔
운동화 한 켤레, 오른손으로 들고서
A가 주저앉았던
그 자리도 서서히 온기를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