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개발자와 함께하는 회사생활
영어를 잘한다고 업무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는게 아니더라...
1.
회사에 외국인 개발자가 있다. 그것도 영어권도 아닌 우즈벡 출신 개발자다. 심지어 외부 협력업체도 이 친구가 찾아온 우즈벡 출신의 개발팀이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기획서와 이미지가이드를 '영어로 제작해야하는' 상황에 놓였다. 심지어 이 개발자들도 영어를 그렇게 잘 하는 사람이 아니여서, 서로 영어를 '공용 언어'로 써야하는 상황이었다. 이렇다보니 업무용 메일 하나를 쓰더라도 '영어적 업무표현'을 찾아서 확인해야했다. 이미지가이드? 설계도? 당연히 영어로 표현해야하고, 개별 조건식도 영어로 풀어서 써야했다. 그런 과정에서 파파고같은 영어번역 프로그램이 상당히 도움이 되긴 했지만, 대부분의 중요한 문장들은 내가 직접 써야만했다.
대부분 게임이나, 인터넷 서칭으로 알게된 영어가 대부분이었기에, 개발자와 커뮤니케이션을 그것도 영어로 해야한다는건. 내게도 엄청난 장벽이었다. 심지어 그리 영어로 말하는걸 잘하지도 않는 내가, 이 사람들과 대화를 영어로 해야하다니. 심지어 내부 공지나, 화면이 바뀐 지점들도 영어 채팅으로 일일히 공지를 해줘야했다. 이런 문제 떄문에 내부 개발자들끼리의 커뮤니케이션도 쉽지않은 문제가 있었다. 심지어 대표님과 외국인 개발자간의 커뮤니케이션도 내가 통역자 역할을 해줘야했다. 심지어, 국적상 외국인을 회사에 유지해야하니, 그들의 비자 문제에 대해서도 찾아봐야했다. 이런식으로 약 3개월간, 대체 '어떻게 소통을 하면서 산건지' 알 수 없을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놀랍게도 작업은 잘 이뤄지고있다. 가끔씩 '이건 영어로 뭐라고 하더라' 같은 일들이 생기긴 하지만, 큰 문제는 없다. 어찌보면 상대가 내 부족한 영어실력을 이해해줘서 그렇기도 하겠지.
2.
사실, 외국인 개발자들과 겪게된 가장 큰 문제는 상대에 대한 '친근감'과 '업무적 똑부러짐'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였다. 실제 우리의 인간관계에서는 대부분 '친근감'을 바탕으로 대화를 나누고, 업무에 있어서는 '명확한 선을 긋게되는 지점'들이 있다. 단지 그런 지점을 '너무 냉정하지 않게' 진행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외국인은 그런 '선을 짓는 지점'도 서로 다르다. 상대가 대화가 잘 통하지 않기 때문에, 감정을 상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래서 아무래도 서투른 표현 속에서도 고민을 하게되고, 이걸 어떻게 말해야하는지를 고민하게된다.
다른 문화권, 다른 표현방식, 식생활도 다르고, 지향점도 다르다. 그런 외국인 개발자를 대체 어떻게 대해야할지, 내게는 항상 여러가지 생각이 많이 들었다. 실제로 어떤 지점에서는 다른 외국인 개발자와 '뭐 시발? 너 지금 뭐라고했어?' 수준의 영어대화가 이어지기도 했었다. 물론 일 때문이다. 책임소재가 명확히 되지 않은채 흘러가는 문제들을 정리하다보니, 결국 상대와 맞서 싸울 수 밖에 없는 경우가 있었다. 다만 이런 경우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경우는 상대를 이해하기위한 노력이 먼저였다. 먼저 나서서 이야기를 걸어주고, 가족들은 어떻게 사는지를 물어보고, 취향은 뭔지 체크하고... 그런 것들은 한국사람이나 외국사람이나 다를게 없었다.
결과적으로는 서로 농담따먹기도 하고, 힘든일 있으면 물어봐주고, 나중에 '비자 연장'같은 민감한 문제들도 도와주는 사이가 됐지만 말이다. 이런 관계가 - 일반적인 한국인과의 커뮤니케이션보다 훨씬 어렵고, 많은 기회비용이 든다는건 부정할 수 없다. 단지, 상황상 주어진 요소들은 최대한 이용할 수 밖에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어찌되었건 개발자는 가장 중요한 기업의 인재고, 좋은 사람은 구하기가 어려우니까.
3.
영어적 표현해서 가장 쉽지않은 것들 중 하나가, '스케쥴과 개발 로직' 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다. 날짜를 영어로 말하는것도 쉽지 않은데다, 그때까지 무엇을 해야하는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일일히 이야기해줘야하기 때문이다. 영어 채팅이라면 글로 정리하는거니까, 일단 써놓고 정리라도 할 수 있겠지. 말로 하게되면 되지도 않는 영어로 상대방 앞에서 말더듬이가 되어야한다. 심지어 이런 경험을 6명 정도 되는 외국인 개발자들 앞에서, 화상회의나 실시간으로 하고있다고 생각해봐라. 없던 영어 울렁증이 가슴을 박차고 튀어나올 지경이다.
그들은 내가 기획한 기능과 의도에 대해 물어보는데, 나는 '정산'을 영어로 표현하려면 calculate가 부정확한 표현이란걸 생각하고있다. 입으로는 'for... for...'를 중얼거리고있고 - 그 정산이 저번주에 일한 파트너의 1주일 작업치를 특정 날짜에 지급하는 거다. 라는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를 연신 고민한다. 이럴때는 정말 잠깐 '일시정지'를 눌러놓고 사전이라도 찾아보고싶지만, 내가 아는 단어와 문법 상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해나갈 뿐이다. 세상에, 이런 쪽팔리는 경험과 순간들을 외국인 개발자들의 의문스러운 눈빛과, 제스쳐마저 함께 보고있어야한다니. 실시간으로 손발이 차갑게 식어가는 기분이다.
지금은 어떻게든 기능을 단계별로 풀어서 쓰거나, 정리해서 전달하는 방식을 쓰곤한다. 하지만 여전히 이 부분은 쉽지않다. 애초에 한국어에는 한자단어가 많다보니, 번역기조차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 단어가 많다. 그러니 굳이 표현하자면 주어와 형용사를 추가로 붙여서 설명해줘야하는 경우가 생긴다. 예를 들어 주간정산이란 표현을 weekly payment from company 라고 표현한다거나 하는 식이다. 이런 상황이니 내가 영어로 만든 기획서를 '이해하려고 해보다가 도저히 알 수 없어서' 질문을 하게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간다. 단지 개발자들의 생각처럼 영어로 말하는게 쉽지 않다는게 문제일 뿐이다.
4.
회사에 들어와서 기획이 아니라 제안서를 쓰고, 영어로 개발자와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1달만에 O2O 서비스 하나를 모두 새로 갈아엎어 기획하고... 약 3개월간정말 정신없는 상태로 지내왔는데, 눈 떠보니 팀장 역할을 하고있다. 사람도 뽑고, 하나하나 진행하는 것마다 대표님과 논의해 진행하고. 여러 업체에 미팅을 가거나 화상미팅을 진행해야했다. 외부에서 원격업무를 진행하는 사람들도 체크해야했고, 매주 주간 보고도 정리해서 대표보고를 해야했다. 그와중에 구인공고도 내가 직접 작성해서, '어떻게하면 사람들이 많이 오게될까'를 고민했었다. 그런 과정에서 생겨난 수많은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해야했고, 실제로 일부 문제는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것들도 있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해냈고, 버텨냈다는 생각은 든다. 단지 앞으로도 생존하려면 내가 영업을 뛰고, 제안을 써서 더 많은 업무를 물어볼 수 밖에 없다는 거. 그게 변하지 않는 현실이다. 이제는 웹 개발자나 백엔드 개발자를 뽑는 방법까지 고민해야하는데. 대체 내가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지 계속해서 시험하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하다보면 잘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되는걸까? 내 생각에는 6개월에서 1년정도, 회사가 유지가 될 수 있다면 - 그 이후에도 생존하는건 가능할것 같다. 물론 그만큼 내가 물어올 업무들의 수준이 높고, 금액대가 높아야겠지만... 그건 나중에 고민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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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임을 많이 져야하는 지점이 힘들때도 있지만, 적어도 '무언가를 해내야하는 상황, 내가 해내면 처리가 가능한 지점'들이 있다는건 좋은 기회이기도 한것 같다. 외국인 개발자와의 소통에서 영어공부가 필요하니 찾아보게되는 것처럼, 다른 지점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적어도 이 3개월간의 생활은, '내가 스스로 만족할 수준으로' 흥미로운 일들이 가득차있는것 같다. 아마 앞으로도 더 이것저것 실험을 하게되겠지만 - 1년쯤 지났을 때, 되돌아보게되면 내가 해온 일들이 더 명확하게 보이지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