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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예술 박기열 Aug 03. 2018

처음 하는 이야기 2

청소부


학교와 모텔을 넘나들며 며칠은 교수님으로 불리고 나머지 며칠은 또 다른 이름으로 불렸는데 그게 참 재밌는 상황이었다.

처음 모텔(이름은 호텔이나 모텔 수준의 시설) 사장님과 만나 인터뷰하던 날.
그게 소위 말하는 알바 면접이겠지. 위아래로 한참을 쳐다보더니 일을 되게, 막, 잘할 것 같아 보이지 않는 나에게 마땅치 않은 눈빛을 보내고 있다는 걸 스스로 느꼈는지 난데없이 동의할 수 없는 나의 장점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착하게 생겼어요. 범생 같아 보이는데 이런 일 잘할 수 있겠어요?” 이런 일을 하기엔 그동안 너무 유약하게 살았다는 약점을 들킨 것 같아 위축됐지만 나는 단호하고 명료하게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쪽도 사람이 급했는지 내일부터 당장 일을 하기로 했다.
당시 종강을 바라보는 시점이기도 했고 언제까지 이 일을 할지 몰라 우선 강의가 있던 수요일을 휴일로 정하고 나머지는 6일은 내가 그토록 원하던 땀을 흘리게 된 것이다.
일주일 간 최대 3일 이상 일해본 적 없는 인생을 평생 살던 내가, 돈은 부족해도 낮잠이 있는 삶을 살던 내가 정말 잘할 수 있을까 걱정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그냥 새로운 일, 뭔가 두려운 일이 펼쳐질 내일이 기다려졌다.
그리고 대망의 다음 날.
첫 일과가  끝날 무렵 내일부터 나오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을 만큼  그간 내가 알고 있던 힘들다는 개념을 모두 깨버린 강력한 모든 것들이 첫날부터 시작이 되었다. 그리고 그건 진짜 시작에 불과했다.
 
내가 일한 호텔은 건물의 8,9,10 세 개 층을 쓰던 곳이었는데 작은 규모는 아니지만 규모가 크다고 해서 일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그 일을 오래 했던 과장님 한분, 그리고 우리가 절대 손으로 잡을 수 없는 것들을 턱턱 맨손으로 잡아내시는, 허리가 90도로 꺾여진 팔순이 넘은 절대 포스의 할머니 한분, 그리고 아무 기술이 없으니 잡일을 도맡아 해야 할 나, 이렇게 세 사람이 한 조가 돼서 모두 60개의 객실을 ‪아침 9시부터 낮 12시 전까지 완벽하게 세팅을 해야 한다‬.
백발의 할머니가 나에게 묻는다.
 
“자넨 성이 뭔고?”
“박씨입니다”
“결혼은 했고”
“네. 아이도 둘이 있어요”
 
그 시간 이후로 나는 ‘박씨’가 되었다.
그리고 내가 일을 관둘 때까지 내 이름을 물어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늘 교수님으로 불리던 내가 다른 공간에서 박씨로 불린다는 게 낯설기도 하고 일 시작하고 며칠은 누구를 부르는 건지 몰라 대답을 못한 적도 있는데 금새 또 적응했다.
왜 서로 이름을 묻지 않을까?
근데 그것은 내 삶의 패턴에서나  이상했던 거지 막상 일을 해보니 왜 그런지 알 것 같았다.

우선 3시간 동안 60개의 방을 문제없이 정리하려면 각자 집중해서 맡은 역할을 완벽하게 끝내야만 한다. 만일 어떤 손님에게 침대 밑에 떨어진 앞 손님이 버린 콘돔 포장지 하나, 쓰다 만 면봉 하나라도 발견되는 날엔 감당하기 힘든 일이 생긴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내가 일한 호텔 건물은 룸살롱 같은 유흥업소가 빽빽하게 들어선 곳인데 호텔 영업에 도움이 될 환경인지는 모르겠지만 청소하는 입장에서 이런 곳은 정말 최악 중에 최악이다.
어떤 날은 출근하고 청소할 첫 방에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다리에 힘이 쫘악 풀리기도 하는데 그 광경이 마치 살해 현장처럼 처참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웃고 농담하며 일을 할 수가 없을뿐더러 그런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일을 끝내고 잠시라도 쉴 때는 철저히 혼자가 돼서 각자 어디론가 흩어져 버린다. 처음에 나는 쉬는 시간 동안 어디에 짱 박혀 있어야 할지 몰라 그냥 손님이 다니지 않는 계단에 앉아서 음악을 들었던 것 같다.
이들은 서로의 이름을 알고 친목을 하는 것보다 누구 하나라도 실수해서 문제가 생기는 걸 원치 않을 뿐이며 이 힘든 일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모두가 자신의 컨디션을 자기만의 방식대로 조절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 달쯤 지나니 어느 정도 일이 익숙해졌고 그때부터 나는 사람들의 흔적을 사진으로 담기 시작했다.
 
동네 호텔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온다.
이 공적인 공간에서 불특정 한 다수를 상대로 모든 이야기를 할 수 없다.
그리고 내가 기록한 사진들 모두를 보여줄 수도 없다.
호텔엔 로맨스도 있지만 ‘황해’ 같은 범죄 스릴러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모텔 이야기’에 관한 세미나를 열어 공개할 수도 있겠다.

낮 시간에는 대부분 쉬러 오는 연인들. 아니면 야매 성형시술을 하러 오는 아주머니들
회사원인 거 같은데 같은 시간에 한두 시간 잠을 자러 오는 남자, 혼자 오는 여자 등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우연히 카운터를 보고 있던 날 처음 숙박을 하는 날부터 유난히 거슬리는 사내가 한 명이 있었다.
촌스러운 시골 깡패처럼 생긴 사람인데 나이는 20대 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놈이 첫날부터 말이 짧은 거다,
 
‘방 있나?’
평소 같으면 “ 응 있어”라고 할 텐데
“얼마나 묵으실 건가요?“
늘 손님 눈에 안 띄게 청소만 하다가 내 인생 처음으로 손님.이란 대상을 상대하는 것이니 예전에 내가 일급 호텔에서 받던 서비스의 기억을 떠올리며 최대한 정중하게 응대를 하였다.
그 이후에도 이 친구는 계속 반말이다.
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던 이유는 어느 날 이 친구가 나와 대화를 하다가 우연히 나를 ‘형님“이라 지칭하는 걸 듣게 됐는데 “ 이놈도 내가 자기보다 나이 많은 줄은 아는구나.” 라는 걸 알게 되니 그다음부터 이 친구의 말투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보이는 태도보다 내면의 의식이 중요하단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어쨌든 말이 짧은 이 친구는 보름 동안 장기 투숙을 하기로 했는데 밖으로 거의 나가지도 않고 비슷한 사람들만 들락날락 거리며 어떤 날은 룸에서 누굴 때리는 소리, 맞고 아파서 내는 곡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방 청소도 못하게 하는 등 여간 신경이 거슬리는 게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험악하고 건장한 남자들 두 명이 카운터를 보고 있던 내 앞에 나타났는데...
 
(3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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