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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예술 박기열 Aug 03. 2018

처음 하는 이야기 1

삶은 예술인데 왜 예술로는 삶을 영위할 수 없는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님 부끄러운 일인지 모르겠지만 어른이 된 후 학교를 20년 가까이 다닐 때까지 태어나서 한 번도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없었다.
여유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있으면 나가서 쓰고 없으면 집에 있는 성격이라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나 목적이 딱히 없었던 것 같다.
그게 학생 때는 가능했는데 문제가 된 건 학교에서 배운 밑천으로 이제 밖에 나가 정상적인 생활인이 되어야 하는 시간이 왔음을 스스로 깨닫고 나서부터다.
오롯이 자신의 생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그 과정을 지속적으로 쌓으며 창작하는 이토록 멋진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자 결심한 대부분의 유명하지 않은 예술가들이 다 그렇듯 꾸준히 작품을 만들어내도 당장 쓰일 데가 없어 돈과 연결시키지 못하고 간헐적으로 작품을 팔아 얻게 되는 돈은 다음 작품의 밑천이라 생각되어서인지 쉽게 쌀 사고 옷을 사게 되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엔 지극히 평범하고 일반인보다 더 세속적인 방식으로 그 돈을 탕진하고 만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내 돈을 들여 전시하지 않아도 될 만큼 경험이 쌓였을 땐 이것도 감사한 일이라며 만족했던 순간도 있었던 것 같은데 사업을 하는 사람이나 자신이 일을 하는 유일한 이유가 월급인 사람들의 시각에선 이 또한 현실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무책임하고 나태한 태도라 생각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그게 좋았고 그렇게 훈련을 받으며 늘 새로운 뭔가를 만드는 삶을 살자 다짐해 온 터라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
태어나면서부터 킬러로 훈련받은 사람에게 공무원이 안전빵이라던가 그 총으로 멧돼지를 잡아보라던가 4대 보험의 필요성을 인식시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결국 과거에 내 처지를 경험했던 주변 어른들이 기회를 주고 그렇게 도움을 받아 시작한 강의가 지난 15년 간 나를 지켜낼 수 있게 해 주고 내 생활에 보탬이 되어 준 꾸준하고 감사한 수입원이었다.
물론 방학은 늘 어려웠는데 그 두 달 동안 딱히 생산적인 일을 할 만한 게 없었고 뭘 하는 게 맞는지 방법도 몰랐다, 그리고 불현듯 “맞아 나 작가였지” 이렇게 각성하고 나면 작업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또 방학이란 생각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뭐 어떻게든 되겠지.하고 살아왔는데 참 신기한 건 진짜 죽지 않고 어떻게든 살게 되더란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는 게 불편해지면 예술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살아야 한다.
물론 예술가가 돈에 쪼들릴 수 있다. 그래서 한 끼를 굶고 그 돈으로 물감을 사서 성공하면 훗날 그게 다 스토리텔링의 소스가 될 수 있고. 그러나 그러려면 결혼도 하지 말고 아이도 낳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예술이 삶의 모토인 냥 잘난 척을 하다가 결국 창의력 없이 남들 하는 거 다 하고 싶었으면 하기 싫은 나머지도 해야 한다. 바로 책임을 지는 일.
왜냐하면 아버지가 아무리 예술혼에 불타는 광기 어린 예술가라고 해도 그 자식은 인수분해도 배워야 하고 친구들과 생일파티도 해야 할 텐데 아주 작고 원초적인 아이의 소망과 훗날 그 아이의 밑천이 될 좋은 기억조차 축적시켜주지 못하는 아버지라면, 게다가 한술  더 떠 그런 게 속상하고 미안한 아버지라면 예술을 한다한들 그의 작품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제도적인 문제, 예술 저변의 한계 뭐 이런 것과 상관없이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한다는 건 지난달에 요가를 배웠으니 이번 달엔 기타를 배워볼까 하는 고민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내 삶의 가치와 기준이 전복되는  소스라치게 싫은 그 느낌과 낯선 고민들 ....
우린 복받치는 감정에 귀를 자르던 고호의 세대도, 창작의 괴로움에 삶을 날려버릴 만큼 예술에 집중할 수 있는 세상 그 어디에도 있지 않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방법을 떠올려야 하는, 그럴 일이 있을 거라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예술가가 어느 순간 현실적인 문제와 대면하게 되면 너무 초현실주의적인 상황에 오히려 창의력에 마비가 온다. 문제 자체를 즐기고 자기 방식대로 재해석만 하며 살아봤지 한 번도 그 문제를 현실적으로 해결하지 못해봤기 때문이다.
그러던 내가 중대한 결심을 한 적이 있었다. 아주 극단적이고 아주 실험적인 결심.
4년 전쯤인데 방학이 막 시작될 무렵이었고 그 전 방학에 발생한 뜻하지 않은 문제로 인해 뼈저리게 괴롭고 배고픈 시간을 한번 보낸 터라 이미 난 물불을 안 가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얼마를 벌어야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그냥 단 하루도 쉬지 않겠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래 땀 한 방울에 100원 이면 된다. 그동안 예술가로서 흘린 땀이 보상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철저히 돈이 되는 땀만 흘리겠다.
더 이상 편한 방에 누워서 현실을 탓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그런데 나도 어쩔 수 없는 또라이인가?
처음 하는 아르바이트인데 뻔한 걸 하고 싶진 않았다.
나도 실수하면 사장님한테 혼나겠지? 나이 마흔이 넘어 첨 보는 손님에게 무시도 당하겠지?
그런 일차적인 걱정은 하지도 않았다. 당시 내가 오랜 시간 고민하고 깊숙이 빠져있던 작업의 주제가
에로티시즘인데 이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한 달 밤낮을 이야기해도 부족하지만 중요한 건, 그런 내밀한 감정을 작품으로 표현하는데 한계를 느낀 지 오래되었고 그런 마음이 작업을 한동안 머뭇거리게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부족한 걸 어디서 채울 수 있을까. 아니다 이번 방학엔 땀을 흘리며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지..
그러다가 찾아낸 게 바로 모텔 청소.

욕망을 쏟아 낸 사람들의 흔적을 합법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드디어 찾아낸 것이다. 땀도 흘릴 수 있고 처음 해보는 아르바이트치곤 상당히 하드코어 한 장르이기도 하고.
복잡했던 계산들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느낌. 인터넷을 뒤져 청소부를 찾는 호텔에 지원을 했다.
근데 좀 쫄린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그날 이후 나는 넉 달 동안 모텔 청소부로 일을 했다.
방학이 끝나고도 두 달 더 일을 했는데 대학과 모텔을 넘나들며..

(2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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