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집
요즘 어떤 콘서트의 아트 디렉터를 맡아 일을 하고 있는데 마침 기획사 사무실이 청담동이라 일주일에 한번은 회의를 하러 강남에 간다. 근데 이곳도 많이 변했다.
70년대 후반 개발붐을 타고 시작된 강남 신화는 럭셔리의 대명사였던 찬란한 시절을 뒤로하고 이제는 건물 여기저기 임대문의 현수막이 붙어있는 지경이 됐다.
사람마다 ‘입장차이’란 것이 있다.
나는 이 입장이란 것이 ‘당면하고 있는 상황’보다는 상황에 대처하는 그 사람의 가치관에 의해 구별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당연히 가치관은 살아온 환경의 영향을 받게 돼 있어서 예를 들어 말보다는 주먹이 앞서는 부모를 둔 아이와 모든 일을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조근 조근 설명해주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가 같은 일에 대처하는 방식은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물론 날 때부터 꿰차고 있는 ‘천성’이란 것을 무시할 수 없지만 오랜 기간 보고 듣고 배우며 스며든 것 역시 한 인간을 완성해내는 큰 힘을 가진 요소들이다.
내가 지금 하려는 이야기는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내 동네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는 대체적으로 ‘강북’의 정서를 갖고 있어서 오리지널 강남 출신인 아내와 연애시절부터 지금까지도 일치하지 않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건 바로 서로가 살아온 삶의 방식에 대한 입장차를 좁히고자 할 때 느끼는 난감함에 관한 것들이다.
모든 곳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지금의 ‘강북’에 선입견을 갖고 있다. 물론 강남만큼 정리되어있지 않은 건 인정한다. 가끔 다큐나 드라마를 보면 삶이 고단한 주인공이 사는 동네의 배경이 되기도 하고 여전히 시내 한복판에 5일 장에 들어서는 촌스럽고 투박한 미장센을 가지고 있지만 이곳에는 편안하고 깨끗한 강남이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몇 가지 것들이 있다.
첫째는 물씬 풍기는 사람 냄새이다.
지금은 신도시에 살고 있지만 내가 태어난 곳은 강북에서도 달동네의 대표격으로 회자되는 성동구 ‘금호동’이다.
옥상에서 바라보면 집 앞엔 한강이 유유히 흐르고 예전엔 없던 압구정동 아파트들이 그 강 건너편에 줄지어 서 있다.
나는 금호동에서 태어나 그 집에서 정확히 25년을 살았고 내 청춘이 그 곳에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의 활동 반경은 금호동을 비롯해 옥수동, 신당동, 한남동, 약수동, 행당동, 장충동, 왕십리 주변이었는데 사실 이름만 달랐지 이 공간의 냄새와 색깔은 서로 많이 닮아 있다.
우선 집을 나서면 목적지가 어디가 됐건 주변가게의 상인들에게 인사를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상인들은 내 친구 누군가의 부모이며 내가 엄마 등에 업혀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같은 자리에서 그대로 장사를 하고 있거나 혹은 내 친구가 그 가게를 물려받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가게가 학창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나 선배의 가게이니 이곳에선 신도시 대형마트에서처럼 유통기한을 살펴보거나 직원의 불친절에 노여워할 필요가 없다.
모두가 내 이름을 불러주거나 내 가족의 안부를 물어봐 주는데 어찌 감히 손님의 까칠함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변하지 않는 옛 동네를 걸으면 아련하고도 뭔가 뭉클한 것이 있다.
기름집에서 갓 짜낸 고소한 참기름 냄새와 싱싱한 배추냄새, 그리고 각자 개성 있게 진열된 물건들의 모양에서부터 장식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오랜 시간 덧대어지며 야금야금 진화된 가게의 인테리어까지 예술가들에게 꼭 필요한 섬세한 자극들을 내 몸 곳곳에 흡수할 수 있다.
강북의 또 다른 매력은 역사적 미장센이다.
우리나라가 민주화가 되기까지에는 처절한 투쟁의 역사가 있었다. 많은 학생들과 노동자들이 시위와 집회를 하고 최루탄을 맞으며 자유를 외쳤던 그 현장은 대부분 강북을 상징하는 신촌, 명동 같은 곳들이다.
생각해보라.
“지금 민주화를 부르짖는 시위대 3만 명이 뱅뱅 사거리를 지나 강남역 뉴욕제과 앞으로 들어섰습니다.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시위대의 행렬은 잠시 후면 가로수길을 통과해 로데오 거리, 그리고 청담동 카페골목까지 이어질 전망입니다.” ........
이 얼마나 후줄근한 그림인가?
차라리 세금을 낮추라던가 부동산 정책을 완화하라는 시위가 여기엔 어울린다.
뭐니 뭐니 해도 시위나 집회는 탑골공원에서 집결해 광화문을 시작으로 이순신 동상을 지나 시청에서 마무리해야 제 맛이다.
한국을 방문한 엘리자베스 2세나 외국의 국가원수가 코엑스에 가지 않고 경복궁이나 인사동에 가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강남이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다.
심지어 나는 대치동에 사는 어떤 친구가 자신이 사는 아파트의 낙후되어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한 상가를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본 적도 있다. 정확히 어떤 지점을 자랑스러워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강남을 떠나본 적 없는 그 친구를 보면서 그 곳이 그에겐 세상의 전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굳이 시작을 하드코어 한 서울역과 남대문의 뒷골목에서부터 하지 않아도 좋다.
강북에선 어디라도 사람의 냄새와 역사의 흔적과 같은 다양한 정서들을 만날 수 있다.
외모와 편의, 규모와 새로움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즐비한 세상에서 인생을 굴곡 없이 살 자신이 없다면 오랜 세월 촘촘히 분열한 강북의 다양하고도 난해한 마을들을 하나 씩 섭렵해보길 권한다.
신도시, 신개념, 신기술.. 새로운 것이 다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