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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예술 박기열 Aug 04. 2018

처음 하는 이야기 5 _ 마지막 이야기

내가 예술로 인문학을 말하는 이유

“기열 씨”


이 공간 안에서 유일하게 내 이름을 불러주는 분.
사장님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내가 온 이후 호텔 예약사이트에 좋은 평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투숙객의 불만들도 줄어들어 아주 기분이 좋다는 것.
처음 본 날부터 그런 사람이란 걸 알았다는데 뭐.. 내가 그날 당신의 눈빛을 기억하니까..
어쨌든 매니저로 승격시켜 줄 테니 정직원이 되어 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난 그럴 수 없었다.
과장님, 절대포스 할머니, 나 이렇게 셋인 모텔에서 매니저 승격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학교에 전업강사로 계약이 되어 있어서 다른 곳에서 취직을 하면 여러 가지 문제들이 생기기도 하고 더 중요한 건 여기서 오래 일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적응된 이제부터가 진짜일 것 같아서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한편으론 이쯤 하면 됐다 싶어 그다음 주에 바로 일을 그만두었다.
겨우 넉 달이지만 매일매일 에피소드가 넘쳐나고 인간의 끝을 발견하기도 했으며 우리 안의 다양한 욕망의 모습도 목격했다. 더 중요한 것은 나의 나약함, 그 나약함을 헤쳐 나가려는 또 다른 나의 의지 모두를 확인했다는 것. 이제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하게 된 일이 대학 강의 외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시작한 예술 관련 강의이다.
10여 년을 대학에서 전공자들만 가르치다가 처음엔 동네 어머니들을 상대로 사진인문학 강의를 했다. 대상이 바뀌어도 크게 다를 건 없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내가 좋다고 느끼는 것들을 알아들을 수 있게 전달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에서도 내 강의가 특이한 편이어서 반응이 나쁘지 않았지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늘 얘기하지만 난 배움이 깊어 아는 것이 많은 학자가 아니다.
사람과 소통하는 걸 좋아하고 이왕 소통할 거라면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내 의도를 최대한 전달하고자 하는 것뿐인데 그럴 때 약간의 창의력이 필요하다.
청담동에서 연예기획사를 운영하시는 김 대표님부터 저 멀리 전남 벌교 갯벌에서 꼬막을 캐시는 꽃분 할머니까지 대상이 누구건 내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도록 연구하는 것이 내 방식이다.
그런데 그게 일반인에게 신선하게 어필이 된다는 것.
그만큼 일반인의 수준이 높은 곳에 도달했고 예술을 통한 갈증해소가 이제는 특정인에 국한된 게 아니라 많은 대중 또한 예술을 자신의 삶에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격변하는 세상에 대한 돌파구로 삼고자 하는 마음이 커진 것이 절묘하게도 나에겐 운 좋은 기회가 됐다.
이런 반응들이 계속되는 것이 특별한 경험이었고 새로 해야 할 일이 뭔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일을 시작으로 스펙트럼을 좀 더 넓혀 기업 강연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대학도 강의가 끝나면 강의평가를 하지만 산업 강의에서는 강의 피드백이 절대적이라서 교육담당자나 기획사 모두 그 결과를 근거로 강사를 평가해 다음 기회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내 입으로 말하기는 그렇지만 지금 증언해 줄 사람이 옆에 없으니..
느낀 그대로를 묘사해 보자면 한마디로 엄청난 반응들의 연속이다.
난생처음 보는 스타일을 가진 사람의 출몰에 공공기관과 기업의 교육담당자들, 중간에 다리를 놔주는 에이전시 매니저들의 격앙된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한 가지 나도 새롭게 알게 된 것은 머리가 희끗한 임원부터 이제 막 입사한 신입직원까지 대상이 누구라도 내가 의도한 바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센스가 나에게 있다는 것.
이 일에서 실력과 경험, 노력과 내공이 기본으로 갖춰져 있다는 전제 하에 나머지를 완성하는 결정적인 한방은 센스가 절대적이다.
기업 강의는 대학 강의와는 본질과 목적이 전혀 달라서 아무나 적응할 수 있고 하다 보면 금세 잘할 수 있다고 말하진 못하겠다.
학생들은 같은 전공의 선생님에 대한 정보를 미리 찾고 이미 준비된 상태에서 강의를 선택하는 것이지만 자기 일에 베테랑인 기업 구성원들은 처음 보는 나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다.
대충 빨리 끝내고 퇴근하고 싶은 사람들을 상대로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내가 해야 할 일은,
내 일에 있어서 당신들만큼 나도 베테랑이라는 것, 그리고 진짜라는 것, 마지막으로 내가 전달하려는 이야기에 동화되어 의자에 붙였던 등을 바로 세워 나를 향에 몸을 굽히게 만드는 것인데 그 짧은 사이 엄청난 경계를 넘나들고 미세한 주파수를 맞춰내야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정해진 시간 안에 모두 풀어낼 수 있기 때문에 이 일에 관심이 있다는 이유로, 무작정 강의를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적응할 수 있는 일도 아닐뿐더러 자기 일에 일가를 이룬 대가라고 해서 사람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베테랑이면 베테랑일수록 자신 스스로가 진짜인 삶을 살았기 때문에 무작정 유명한 사람보다 진짜인 사람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보통 예술 인문학 강의를 할 때 세계적인 예술가의 이야기를 알기 쉽게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게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니까.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내 이야기의 비중을 조금씩 늘렸는데 예상보다 훨씬 반응이 좋았다. 자신들과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고민을 하는 예술가가 삶에 예술을 어떻게 개입시키는지, 아이들과는 어떻게 지내는지를 목격하고 나면 모두들 무장해제가 되고 많다.
내 이야기를 통해 자신과 자신의 아이들을 상상하게 되니 무언가를 특별히 전달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작가인 내가 떠올린 아이디어를 어떻게 작품으로 연결시키는지, 그리고 아버지로서 큰 딸 서진이와 노래 부르는 모습과 5분 만에 작곡했던 공중파 라디오 프로그램의 로고송을 들려주기도 하고 선생으로서 학생들과 진행했던 한계가 없던 그 많은 프로젝트들을 공유하면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보다 더 공감하고 감탄해한다. 그리고 하이라이트는 모텔 청소부로 겪었던 경험들의 공유다.
그 이야기가 끝날 즈음이면 다들 각자의 방식대로 나름의 결의를 다지는 눈빛이 현장에서 느껴진다.
내가 지금 경계하는 건 내가 내 일을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유명세를 타지 않는 것. 뻔해지지 않는 것, 계속해서 진짜가 될 수 있도록 삶의 작은 경험조차도 예술처럼 아끼고 소중히 대하는 삶의 예술가가 되는 것이다.
여전히 흙 작업은 언제 다시 할 거냐는 물음들이 많지만 그건 언제든 다시 할 수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뭔가 손으로 만들어 덩어리가 된 물리적 결과물로 증명하는 방식이 아니라 내가 경험하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데이터화하고 시각화할 수 있다면 그 어떤 것도 난 또 다른 형태의 작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나는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고 아이들과 노는 잔잔한 일뿐만 아니라 대형 콘서트의 아트 디렉팅을 하고 있고 마치 10년은 해왔던 사람처럼 기업 강연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마구마구 제시하고 있다. 결과가 좋으면 제시같은 건 마구마구 해도 된다.
또 소중한 가족과 애정 해 마지않는 제자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 동안 더 깊숙이 통하기 위해 시간을 쪼개 열심히 드라마도 챙겨보고 책을 읽고 음악도 듣는다.

처음 모텔 일을 시작했을 땐 아내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첨엔 그냥 어떤 프로젝트가 있어서 새벽같이 나갔다 밤늦게 들어온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찌든 땀 냄새와 난생처음 보는 피로가 역력한 얼굴을 계속 숨길 수는 없었다.
아내가 자랑스러워할 줄 알았는데 내 얘기를 듣고 울었다.
아직까지 아이들은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른다. 이야기해주고 싶지만 가족들은 아빠에 대한 주관적인 믿음과 기대가 있기 때문에 좀 더 세상에 대한 눈이 넓어지면 그때 해줄 생각이다.

뜻대로는 안 되지만 살다 보면 세상은 놀라움 투성이다.
그리고 지금 가장 놀라운 건 하루 만에 이 긴 글들을 미친 듯이 써 내려갔다는 것.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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