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하루, 어쩌다 휴가
사용하지 못했던 휴가를 내고 따릉이를 타고 한강을 달렸다. 평일이기도 하고 제법 쌀쌀한 강바람에 바닥이 살짝 얼어서인지 한적하게 라이딩을 즐길 수 있었다. 한참을 타고 놀다가 우연히 들린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음악 영화 [크레센도]를 보기로 하였다.
크레센도 (2023.12.26. CGV 영등포)
2022년 반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 참여한 연주자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평일 낮시간임에도 좌석 절반정도를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채우고 있었다.
우승자인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연주장면 등은 물론 소름 돋을 정도로 감동적이었지만, 중간중간 음악과 연주자로서의 마음가짐에 대해 묻는 질문에 수줍게 답하는 이 어린 연주자의 인터뷰까지 더해지니 마치 함께 대화하 듯 감동적이다.
"음악은 가장 아름다운 것이고,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 음악가의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앞서간 하늘에 계실 위대한 음악가들께 제가 얼마나 깊이 있는 음악을 하고 있는지 들려주고 싶다는 목표로 온 마음을 다해 연주했습니다.... 이곳 텍사스 포틀랜드의 자연환경이 무척 멋지지만, 저는 지금 연습을 더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음악을 공부하고 싶습니다." -임윤찬-
그리고... 오타니 쇼헤이
운과 타고난 재능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즐기면서 최고로 잘하는 일로 만들고야 만 야구에 미친 운동선수도 있다.
"던질 때도 칠 때도 나의 레벨을 얼마나 올릴 수 있을까 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매일 배트를 휘두른다기보다 매일 몇 분간이나 매일 몇 번씩 휘두르는 식으로 합니다."-오타니-
이렇게 타고난 재능에 감사하며 그곳에 머무르지 않고, 본인의 직업을 소명을 가지고 정성으로 대하는 젊은 프로들을 보니 그들의 미래가 기대되고, 응원의 박수를 보내게 된다.
유독 예민하고 까탈스럽게 좋아하는 것 '적성'
얼마 전 읽은 아주대 심리학과 김경일 교수의 책에서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음악을 할 때 진심으로 행복해한다면 아이의 진로는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에 대한 내용이 생각난다.
약간의 음이 틀린 노래를 들으면 일반인이라면 모르고 지나칠 그 작은 차이에도 불편함을 느끼는 작곡가의 예를 들면서 "좋아하지만.. 유독 예민하고 까탈스럽게, 좀처럼 만족이 되지 않는 것"이 직업으로 적합 한 적성일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진짜 좋아하는 일'이 '적성'이니까, 좋아하는 일을 빨리 찾아서 '직업'으로 할 때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이 많은데 조금 다른 관점이다.
소명에서 시작되는 '적성'
생계를 위해 '업'을 찾기 보다는 소명을 가지고 적성에 맞는 업을 갖고자 하는 꿈을 꾸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그 긴 시간을 한가지 직업으로 산다거나 수십년을 그냥 놀 수도 없으니, 이제는 최소 2개 이상의 '업'을 수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적성을 고민하는 시대가 되었다.
임윤찬 피아니스트나 오타니 선수의 경우에서 힌트를 얻어 보자면, 그들은 "타인과 경쟁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소명을 찾고 정교하고 성실하게 꾸준히 자신을 갈고 닦을 뿐이다. 잘되건 못되건 상황에 따라 조바심을 낸다거나 경쟁자들과 비교하며 긴장할 이유도 없다.
이 정도 했으면,
나도 생활의 달인쯤 되었어야 하는데..
직장인 경력 25년 차를 맞는 새해가 시작되었다. 선배들의 넋두리처럼 책상 위에 놓인 달력을 넘기는 속도가 번쩍번쩍한다. 이 정도 했으면, 해가 바뀌며 조직개편을 하고 새로운 동료와 일을 하게 되는 루틴에도 제법 적응할만한데도 좀처럼 편해지지가 않는다.
지금의 업에 헌신한 시간으로만 보면, 임윤찬 피아니스트 처럼 신께 선물받은 재능과 엄청난 노력으로 만들어낸 큰 성과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름의 사명으로 제1의 직업을 무난하게 마무리 하고 있다. 나름의 소명과 열정도 놓고 있지 않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이제 제2의 업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어떤 소명으로 살아가야 할까? 고민이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