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장을 그리던 날의 공기
그림 그리기를 제법 좋아했다. 날짜가 지난 신문지를 펼쳐 크레파스로 물고기의 비늘을 그리던 어린 날의 내 모습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얇은 신문지에 뭉개지는 크레파스의 선, 찌꺼기와 함께 퍼져가는 유치한 색깔들, 그리고 환해지는 나의 얼굴까지도. 그 시절 내가 받은 최고의 어린이날 선물은 64색 크레파스였다. 세상에, 금색과 은색이 들어있다고? 그것만으로도 나는 진짜 부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방학 숙제로 ‘그림 그리기’는 필수였다. 내 기억이 맞다면 4학년의 여름방학, 다른 어렵고 복잡한 숙제를 피해 그리기로 도망치려는 아이들을 붙잡으려 담임선생님은 무리수를 두셨다. 3장 그리기라던가, 즐거웠던 일 그리기가 아니라 ‘100장 그리기’였던 것이다. 아무리 문제집 풀기, 독후감 쓰기가 귀찮고 싫은들 누가 그런 숙제를 선택하겠는가?
바로 나! 내가 그 숙제를 선택하였다. 이유는 딱히 없었다. 그저 그리기가 좋아서 한 당연한 선택이었다. 나에겐 다른 선택지 자체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행히도 100장은 요즘으로 따지면 ‘드로잉’만 할 수 있었다. 색칠까지 해야 했다면 작업실에 틀어박힌 화가의 삶으로 방학을 보냈을 것이다.
방학이 시작되자 일단 두꺼운 스케치북을 하나 준비했다. 날이 선 잘 깎은 연필과 지우개를 들고 정말 ‘산과 들’로 걸어 나왔다. 시골 소녀는 상상력만으로 100장을 채우기에 무리가 있었으니 길가에 핀 들꽃도 그리고 흘러가는 하늘의 구름도 그려야 했다. 어느 날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주름살을 그렸고 내 손톱 밑의 거스러미를 그렸다. 멀리서 보면 매끈한 산등성이를 그렸으며 동네의 유일한 공장의 우뚝 선 굴뚝을 그리기도 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제 보았던 만화의 주제곡이 자동 재생될 법한데, 지나가는 새소리마저 귓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끔은 짜증이 났다. 열심히 관찰해서 보고 그렸지만 비율이 맞지 않았다. 스케치북의 이쯤에서 선이 꺾여나가야 하는데 내가 그린 선은 벌써부터 이만치 꺾여버렸다. 그려놓은 부분이 너무 많아서 지우기도 애매하다. 그럴 땐 자기 합리화를 하는 수밖에 없다. 이건 진짜가 아니야, 나는 어린애잖아? 이 정도는 허용될 수 있어.
그렇게 나는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정말로 100장을 그려 학교에 가져갔다. 그 숙제를 택한 사람은 전교에서 오로지 나뿐이었다. 선생님께서도 ‘누가 이걸 고르겠어’하는 마음으로 내주셨던 게 분명했다. 내 그림 뭉치들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으셨던 걸 보면.
그림을 그리던 여름방학 동안 늘어난 건 그림 실력이 아니었다. 지금도 생각나는 매끈한 산등성이, 흘러가는 구름의 모양, 피어있던 들꽃의 꽃잎 색깔… 그림 실력이 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것보단 사물을 관찰하는 능력과 순간에 머무는 능력이 압도적으로 발달되었다. 예상외의 소득이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동안의 내 모습마저 소름 돋을 만큼 뚜렷이 기억할 수 있다. 1994년 8월로 금세 돌아가 버리는 공기의 흐름. 그림을 그리는 순간이 많아질수록 내가 돌려볼 수 있는 공기의 흐름은 더욱 늘어났다.
이 글을 쓰기 전, 오랜만에 굴러다니는 종이와 책상 위의 볼펜을 들고 그림을 그렸다. 눈앞의 인센스 홀더, 책상에 놓인 스마트폰, 늘어져 있는 내 손목시계 등. 분명 음악을 틀어놓고 그렸는데 무슨 음악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적막함이 가득한 가운데 사물과 나와 펜과 종이만 있었던 것이 떠오른다. 언젠가는 이때의 공기가 생각날 것이다. 손목시계의 로마자 눈금을 그리던 때가 떠오르겠지. 꺼내 보고 싶은 장면들을, 공기의 흐름들을 아주 많이 늘리고 싶어졌다. 다시 그림을 그려야겠다. 순간에 머물고, 그것을 가끔씩 꺼내 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