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게으름
무언가를 하다가 내 맘 같지 않으면, 잘 풀리지 않으면 짜증이 난다. 나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그러한 면모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쪽은 바로 ‘그림’. 생각을 글로 풀어쓸 수 있는 그럴듯한 재주를 가졌긴 하지만 때로는 눈앞에 좌악 펼쳐 보이고 싶을 때가 있다. 읽는 것보다 보는 것이 더욱 명확하고 가슴 설레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글쓰기 쪽에 능력이 몰빵 된 편인 나는 그림을 시도해 볼 때마다 짜증지수가 높아진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 유튜버는 자신의 손을 아주 많이 그려보았다고 했다. 그 말을 떠올리고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나의 왼손을 무턱대고 그려보았다. 엄지를 추켜올린 모습과 어슷하게 살짝 주먹을 쥔 모습. 차라리 쫙 편 손바닥과 꽉 쥔 주먹을 그리는 편이 더 쉬웠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다 떠올린 두 개의 포즈는 어설프게조차 그리기 어려웠다. 게다가 무슨 배짱인지 나는 연필이 아닌 펜을 들고 그리겠다고 설쳤다. 펜으로 그어버린 선은 연필처럼 지울 수가 없다. 일단 종이 위에 흩뿌려지고 나면 거기서 끝이다. 완벽함을 원하다 시도조차 못해보고 포기했던 일이 어디 한두 번인가. 분명 연필을 쥐고 그렸다간 예쁜 손을 그리려 끊임없이 지우개에 손을 대었을 것이고 나는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도 왼손의 모습을 완성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펜을 잡은 것은 과거의 나와 작별해 보겠다는 작은 의지였다.
하지만 펜으로 선 하나를 긋자마자 이내 후회했다. 아… 이 길쭉한 선 하나로도 미술에 재능이 있고 없음을 판별해 낼 수 있을 것 같다. 망설임과 두려움이 가득 담긴 선은 종이 위에 그려진 채로 “너 지금 뭐 해?” 나에게 묻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을 먹었으니 일단 그려본다. 처음 그린 선은 대차게 망했다. 게다가 연필이 아닌 펜 선이다. 돌이킬 수 없다. 그렇다고 선 하나 그은 종이를 넘기기엔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망한 선 옆으로 또 다른 망한 선이 함께한다. 난감하다.
최대한 깔끔하게 그려보고 싶어 잔선을 없애려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조급해지고 손이 빨라진다. 빨라질수록 비율은 엉망이 되고 만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멀리 보기. 나는 지금 손톱의 거스러미와 주름만 한참을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그리고 있는 것은 손톱 밑의 때인가, 아니면 원래 그리려던 왼손인가? 다시 시야를 넓게 바라본다. 왼손이 한눈에 담기도록 멀리. 그제야 새끼손가락이 비정상적으로 작게 그려졌음을 알 수 있었다. 손가락 하나에 지나치게 집중하니 이런 일이 생긴다. 누가 봐도 엉망진창인 그림이다. 갑자기 짜증이 단전에서부터 올라온다. 뜻하지 않은 자기혐오의 말들이 시작된다. 내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그럴 줄 알았다. 역시 난 그림에 재능이 없어.
세상에, 새끼손가락 하나를 그리다가 이렇게 수치심을 느낄 일인가. 어디에 발표할 작품도 아니고 미술입시를 준비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취미로써의 그림을 시작해 보는 단계인데도 여기서 나는 모종의 불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 감정은 ‘아주 많이, 열심히 그린다’는 중간 단계의 동사들을 훌쩍 뛰어넘어 ‘잘 그리는 사람’인 명사만을 획득하고 싶은 나의 알량한 게으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세기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천재가 아니고서야 누구나 일정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리고 그리고 또 그려낼 것인데 그 과정에 짜증을 느끼면서도 나는 얼른 명사를 얻어내고 싶었다. 그림을 몇 번 그리지 않고서도 잘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지만 이 글의 처음을 읽어보자. 나는 글을 쓰는 것처럼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내가 겪고 느낀 것들을 글로 풀어내는 과정처럼 재미를 느끼고 싶었던 것이지 완성된 그림에서 희열을 느끼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펜을 쥐고 그리면서 어디서 이런 오만한 생각이 시작되었을까 생각해 보다가 에이, 그런 생각해서 뭐 해. 손이나 한 번 더 그리자. 망한 손 옆에 망한 손을 하나 더 그린다. 앞으로 나는 천 개의 망한 손을 더 그려낼 것이다. 그리고 천 번의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 엉망이라고 생각한 처음의 펜 선이 조금 빛나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