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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채우기

작고 작아진 몸

by 김지현

부모님이 책을 읽는 모습을 본 적은 없었다. 어려서부터 그랬다. 시골 00면 00리에 살아 집 주변에 서점이 없었다. 차를 타고 멀리 나가야 책 구경을 할 수 있었지만 부모님께서는 내게 곧잘 책을 사주셨다. 외출하고 돌아올 때 과자 사 오듯 두세 권 사 오시기도 했다. 물론 나의 취향은 묻지 않으셔서 그런지 그림명작동화가 아니라 톨스토이의 명작을 사다 주신 기억이 난다. 당장 문구점에서 뽑는 10원짜리 뽑기가 소중한 아이에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건네는 부모님의 마음은 어떤 종류의 것일까. 뜻도 모르면서 열심히 읽었다. 시골에서는 읽는 것 외에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때론 학교에서 전집을 판매한다는 사기성 농후한 사짜 가정통신문이 배부될 때가 있었다. 제목만 봐도 조악한 내용임을 알 수 있는 동화책들이었지만 사은품에 눈이 멀어 부모님을 졸라댔고, 대부분 그것에 속아 덜컥 사주셨다. 갑자기 거대한 책덩어리 50권, 60권이 눈앞에 생겨났다. 그것은 내게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들려주는 재미난 이벤트였다. 아마 학업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셨으리라. 지금도 책은 ‘책육아’라는 타이틀을 달고 검은 속내를 품은 엄마들을 현혹하곤 한다. 그때라고 다를 리 없다. 책을 읽으면 머리가 똑똑해지고 공부를 잘하게 되어 좋은 대학에 가서 효녀가 되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당연한 욕망. 그리 싼 값이 아니었음에도 어떤 물건보다 덥석덥석 잘도 사주셨다. 덕분에 옆집도, 앞집도 없이 주변이 온통 밭뿐이었던 곳에 살던 나는 책 읽고 그림 그리는 게 유일한 삶의 재미였다. 투두리스트를 짜보라고 하면 '독서-그리기-독서-그리기'만 순차적으로 적었을 어린 나. 책 속 세상이 전부였던 삶.


초등학교는 집에서 2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책 구경을 자주 할 수 없음에 학교에서는 특별한 행사를 기획하기도 했다. 출판사 한두 곳이 학교로 찾아와 좌판처럼 강당에 책을 뉘어놓고 판매하는 독특한 행사였다. 학생들은 학년별, 그리고 학급별로 강당 바닥에 가지런히 놓인 책을 슥 훑으면서 사고 싶은 책을 종이에 적었다. 그 종이를 담임선생님께 제출하고 추후에 현금을 가져오면 대리결제가 되는 써어비스. 흔하지 않은 기회에 들뜬 어린이들은 뭐라도 사고 싶어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 어려운 책을 읽는 멋진 어린이로 보이고 싶은 나는 무조건 두꺼운 책을 골랐다. 선생님, 얘들아! 난 이런 책도 읽는단다? 어때, 나는 이제 10원짜리 뽑기에 기분이 좌우되는 한낱 어린애가 아니야. 그렇게 내 손으로 고른 첫 책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열두 살에 어깨 으쓱은 했지만 막상 받아 든 어린이용 베개만 한 두께를 보고 있자니 잔뜩 겁이 났다. 내가 이걸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어려움보다는 이 활자들을 언제 다 읽어낼까, 부담감이 컸던 모양이다.


그런 황당한 학교 행사에서도 부모님은 지갑을 아끼지 않고 열어주셨다. 그러나 떠올려보면 부모님은 책 한 장을 읽지 않으셨다. 집안 곳곳에 어린이 동화책은 널브러져 있었지만 어른들이 읽을법한 책은 한 권도 꽂혀있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농사짓는 부모님께서 읽는 활자라고는 우체부 아저씨를 통해 정기적으로 배달되는 농민신문이나 농약, 종자 광고지 따위였다. 나는 일찌감치 농약과 종묘사 광고를 통해 한글을 깨친 전적이 있다. 읽을 수 있는 활자라곤 농사와 관련된 것이 전부였던 집이다. 그러니 부모가 책을 읽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어야 자녀가 책을 읽는다는 것은 허상이다. 독서와 일억 광년 떨어져 있는 부모님 아래에서 나는 오로지 책만 읽으며 자라나갔다. 책은 그냥, 할 일이 없으면 읽을 수 있는 SNS 같은 기능을 수행했다. 책을 통해 남의 일기를 읽어볼 수 있어 재미있었다.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을 여행할 수 있었으며 평생 만날 일 없을 것 같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알 수 있었다. 심심하면 그저 책을 펴고 내 앞에 줄지어 놓여있는 활자들을 읽어나갔다. 그러다 보면 만 가지 상상을 할 수 있어 좋았다.


덕분에 책이라는 말없고 묵묵한 평생의 친구가 생겼다. 하지만 가끔은 내게 이런 친구를 소개해 주신 부모님이 안쓰럽다. 힘들게 농사지어 하루의 시간을 일구느라 책 한 장 들여다볼 시간이 없었을 그들. 부모님에게도 책은 분명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사실 알고 계셨을 것이다. 다만 생활에 치여 본인들이 직접 책을 읽을 여유가 없었을 뿐. 더 오랜 시간 딸내미를 안아주지 못하고 부대끼지 못한 미안함을 뭉텅 뭉텅이로 가져다 주신 책을 통해 나타내셨을게다.


하루를 힘겹게 보낸 젊은 부모님의 달뜬 한숨을 들으며 어린 나는 책을 읽어나갔다. 읽을수록 부모님의 어깨는 축 처져 내려갔다. 나는 이제 이만큼 책을 읽어 똑똑해졌는데 부모님은 점점 모르는 게 많아졌다. 읽을수록 부모님의 무언가를 내가 야금야금 빼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며 홀로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던 나는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부모님께 책에서 읽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드린다. 엄마 어제는 애들 동화책을 읽었는데 그림이 되게 신선했어. 아빠 지난주에 그 정치인이 쓴 책 있잖아. 그거 재밌더라. 어떤 부분이 재밌었냐면...


홀쭉하고 작아진 부모님의 몸을 이제는 내가 읽은 이야기로 채워드리고 있다. 그 안에서 도스토예프스키와 사기꾼 출판사가 서로 뒤엉켜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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