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잠들지 못했나
대가족이었던 탓에 홀로 방을 차지하고 잠드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늘 누군가가 함께 자야 했었다. 아주 어렸을 땐 당연히 부모님과 함께 잠들었다. 우리는 MBC 9시 뉴스의 띠-띠-띠-땡! 시계 알람이 울리면 불을 끄고 강제로 누웠다. 그건 우리 집의 당연한 규칙이었고 나는 눈만 감은 채 소록소록 숨을 쉬며 오래도록 잠들지 못했다. 잠든 척을 하던 나는 부모님의 한숨 소리를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루 종일 바깥일에 시달리다 허리도 아프고 어깨도 아픈 부모님은 내 옆에 누워 후욱 본능적인 한숨을 쉬었다. 그 숨엔 하루치의 피곤이 듬뿍 담겨있었다. 잠들기 아쉬웠던 엄마는 가수 김수희의 노래 테이프를 틀어놓으셨다. 그녀의 ‘정거장’ 노래를 들으며 가물가물 잠이 든다. 꿈속에서 김수희가 나와 나에게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중학생 때 시험기간이 되면 당연한 것처럼 친한 친구들과 모여 밤을 지새웠다. 밤새워 벼락치기 공부를 하기 위해 모인 자리였으나 왜 ‘내 옆에서 잠든 사람들’의 제목 아래 이 내용이 쓰여있을까. 모두가 일정 시간이 되면 잠들어버렸기 때문이다. 공부라는 명목으로 과학 참고서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다 보면 ‘퍽’ 소리가 나곤 했다. 옆에 누워서 책을 펼쳐 들고 보던 친구의 얼굴에 책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아픔보다 졸린 게 더 컸던 친구는 떨어진 책으로 눈을 덮은 채 쭉 잠들었다. 사춘기를 함께 지나던 친구는 쌔액쌔액거리는 숨소리를 내었다. 아이의 경계에서 벗어나 어른의 울타리로 들어가기 위해 무진 애를 쓰는 우리는 잠을 자면서도 성장해 나갔다. 친구의 얼굴에서 소녀의 고단함을 보았다. 자라느라 힘들지? 나도 그래. 우린 언제쯤 어른이 될까? 잠을 물리치기 위해 당시 유행하던 팝송을 열심히 불러제꼈다. 하지만 내 목소리도 점점 사그라들더니 익숙한 ‘퍽’ 소리가 나면서 눈앞이 깜깜해졌다.
고등학생이 되어 1박 2일로 수련회를 갔을 때에는 반 친구들과 함께 잠들었다. 말이 친구들이지 그저 시절인연이다. 교실이라는 공간을 함께 공유하는 것뿐. 밤새 진실게임을 할까, 무서운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던 나와 친구 무리들은 교관의 강제 소등 덕분에 누울 수밖에 없었다. 하루종일 땅바닥에 굴렀던지라 금세 곯아떨어지는 친구들이 많았다. 다들 그렇게 잠들어버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 소위 날라리라 불리는 아이들이 갑자기 가방에서 소주와 조그마한 봉투에 담긴 김치를 꺼내어 술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냄새에 극도로 예민한 나는 죽을 맛이었다. 머리카락의 올마다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졸음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빨리들 처먹기를, 그래서 얼른 좀 치워주기를. 코의 역치는 감각기관 중 가장 낮다는 걸 애써 떠올리며 가만히 누워 시절인연들을 바라보았다. 이미 다 큰 성인여성의 신체를 가졌지만 학생인 신분으로 꽤 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우리들. 그녀들은 어찌나 피곤했던지 코를 골기도 하고 부드득 이를 갈기도 했다. 눅진한 냄새를 잊기 위해 나의 잠자리를, 옆 친구들을 관찰했다. 쉽게 잠들지 못했고 날라리 그녀들은 끝끝내 새벽이 올 때까지 치우지 않았다.
가장 많은 시간 옆자리를 차지한 사람은 여동생이다. 수능을 보고 나서도 우리는 방을 함께 사용했다. 대부분 동생이 먼저 잠들고 나면 뒤이어 내가 잠드는 순서였다. 침대가 없는 우리들은 바닥에 두툼한 목화요를 깔고 잠들었다. 나는 늦게 잠들고 항상 먼저 일어났다. 기억에 남는 모습은 이불속에서 왕꿈틀이처럼 꾸물거리는 동생의 옆태. 그녀는 일어나는 데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동생에 대한 악감정은 없다. 하지만 잘 때 누군가의 살결이 내 피부에 닿는 것을 지나치게 싫어했다. 그건 옆이 누구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잠꼬대를 하느라 그녀의 다리가 내 허벅지 위로 올라오는 때엔 치를 떨며 내동댕이치듯 들어 던져버렸다. 던진다고 던져지는 것은 아니지만 내 몸에 누군가의 신체가 닿는 뜨뜻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긴 시간 함께 잠자리를 공유했다는 사실은 놀랍고 신기하다.
성인이 되어 나는 생판 모르는 사람과도 함께 잠들기 시작했다. 과실에서, 동아리방에서, 기억조차 나지 않는 다른 대학교의 한 강의실에서 술을 잔뜩 마시고 몸 누일 한 뼘의 공간을 찾아 기웃대다 까무룩 쓰러졌다. 술이 세지 않음에도 청춘의 기세로 다 마셔버리려 했다. 술에 취해 어디든 바닥에 누우면 자유로웠다. 내 옆에 누가 눕든 상관없다. 어떤 때는 다른 과 회장이 눕기도 했고, 어떤 때는 타 지역 대학의 학생이 눕기도 했으며 말 한마디 나눠본 적 없는 복학생 선배가 눕기도 했다. 낯선 남녀가 차가운 바닥에 누워 야릇한 분위기가 아닌, 전우애를 풍겼다. 함께 누워서도 대화는 없었다. 그저 천정을 바라보며 석고보드의 무늬를 하나 둘 세고 있을 뿐이었다. 새벽녘, 깨질 듯한 머리로 먼저 일어나면 나는 살금살금 자리를 빠져나왔다. 마치 원래 없었던 사람처럼. 잠들어 있던 낯선 사람의 곁을 스윽 스쳐 지나가 우리의 마지막 인연을 별생각 없이 한 번 훑고 밖으로 나왔다. 몸에서 새록새록 가시가 돋아났다.
지금 내 옆에 잠들어 있는 건 고양이다. 왜 얘는 다른 푹신한 데 놔두고 내 사타구니 쪽에 자리를 잡는 걸까. 거기 누워서 나를 꼼짝도 못 하게 만든다. 따뜻해서 그러는 건 알겠지만 당장 난 쉬가 마렵거든.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생각한다. 앞으로 내 옆자리엔 또 어떤 이가 누워 잠들게 될까. 확실한 것은 누가 눕든 나는 바로 잠들지 않고 그, 또는 그녀를 바라보다 결국 뭉게뭉게 헛생각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