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소리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찌뿌둥했다. 분명 잠을 푹 잔 것 같은데 밤사이, 수십 명이 나를 밟고 지나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잠꼬대를 심하게 했나?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전날 가족 모임을 무사히 마치고 맞이하는 평일, 운동을 하러 헬스장에 가는 것이 오늘의 첫 일정이다. 개운하게 근력 운동을 하고 러닝 머신 위를 걸으며 땀을 쭉 뺐다. 어제 하루 쉬면서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었으니 오늘은 건강한 움직임으로 나를 가득 채우고 싶었다. 폭식하고 토하지 않은 나를 자축하며 헬스장 전신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열흘도 안 되어 몸이 바뀔 리 없었지만 확실히 얼굴색은 달라져 있었다. 그거면 됐다. 올해 목표는 ‘건강’이니까.
운동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와 가벼운 점심을 먹었다. 기름진 걸 먹은 다음날은 아무래도 야채와 식물성 단백질 등으로 식단을 꾸리면 몸에 부담이 덜할 것 같았다. 음. 잘 모르겠지만 끊이지 않았던 다이어트의 세월이 나에게 그러하도록 종용했다. 오후 시간엔 글을 열심히 쓰고 살림도 알차게 했다. 온 가족이 함께 먹는 저녁은 단백질 풍부한 식단으로 닭가슴살을 이용해 닭죽을 만들었다. 나 때문에 엉겁결에 건강하게 먹는 가족들이지만 다행히 모두 맛있다고 해주었다.
하루가 의도했던 대로 마무리되어간다. 저녁 설거지까지 마치고 잠시 숨을 돌리려는데 자꾸 이상한 마음이 삐죽 새어 나온다.
-아,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
-초콜릿도 당기는데? 안 먹은 지 꽤 됐잖아?
-배는 찼지만 뭔가 먹고 싶어... 허전해!
그동안 세 끼니를 잘 챙겨 먹은 날은 이런 일이 없었던지라 몹시 당황했다. 영양소에 맛까지 챙겨 충분히 먹었는데도 자꾸 군것질이 하고 싶다니? 지금 PMS 기간도 아닌데? 스스로 의아해하며 입이 터지지 않게 미리 얼려놓은 딸기를 하나 꺼내어 입에 넣었다. 새콤하고 시원한 맛이 입안을 깔끔히 정리해 주었다. 됐다. 이 정도면 몸도 만족했겠지.
-이거 아니야. 다른 거야. 어서 그럴싸한 걸 내놔!
... 아니란다. 결국 다시 냉동실을 뒤졌다. 급할 때 식단으로 하는 단백질 스콘을 찾아냈다. 초콜릿 맛을 내는 작은 조각 몇 개를 꺼내어 먹고 마무리해야지.
-장난해 지금? 뭘 원하는지 알잖아!
결국 마음의 소리에 굴복했다. 편의점에서 바삭한 감자칩에 달콤한 초코바 하나를 구입했다. 오랜만의 편의점 방문이다. 집으로 가는 길에 수차례 물었다. 정말 지금 먹고 싶어? 진짜로 이걸 원해? 그렇지만 대답은 한결같았다. 먹고 싶었다. 억누르지 않기로 했다. 그랬다간 며칠 지나지 않아 감당하지 못할 식욕이 큰 파도로 몰려오리라.
아이들과 과자를 함께 먹으며 재미있는 유튜브 영상을 보았다. 무언지 모를 긴장이 풀리며 신이 났다. 감자칩은 고소하며 짭짤해 입에 딱 맞았고 내내 원하던 달콤함은 초코바가 꽉 채워주었다. 이거지 이거!
여기에 더해 팬트리에 있던 비빔면까지 손을 댔다. 그 와중에 건강 챙기겠다고 반숙란 하나를 까서 넣었다. 정말 웃기고 자빠졌다. 그릇이 바닥을 보이자 조금 허탈했다. 계속된 의문이었다. 왜 먹고 싶단 생각이 들었지? 몸에 필요한 영양소는 다 채워졌을 텐데.
그릇을 씻으며 생각을 잇는다. 무엇 때문일까? 아마 스트레스를 받은 모양인데 무엇이 나를 힘들게 했나... 생각의 끝에 다다른 건 어제의 ‘가족 모임’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아주 훌륭하게 적당히 먹어 대처를 잘했다. 그 과정에서 정신적인 에너지를 꽤 소모했던 것이다. 물론 자연스러운 흐름은 아니었다. 평상시의 두세 배쯤은 되는 절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하, 어제 하루 종일 적당히 먹으려 신경 쓰며 스트레스받았던 것이 다음 날 터졌구나! 갑자기 찾아온 이상 식욕이 모두 이해되었다.
정리를 마치니 잠이 쏟아졌다. 바로 눕고 싶었다. 야식을 먹곤 늘 그래왔으니까. 하지만 내일, 후회하며 러닝 머신에 오르고 싶지 않았다. 더부룩한 속으로 새벽에 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 평소처럼 똑같이 행동하는 거야. 생각이 정리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깨끗하게 세수부터 하고 피부 관리까지 마쳤다. 거실로 나와 고양이 사냥 놀이까지 마치니 소화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더불어 기분도 나아졌다. 루틴을 지키는 건 이렇게 소중한 일이었구나.
이 모든 과정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무엇이 먹고 싶니? 이걸 원하니? 이건 괜찮았니? 왜 먹은 거야? 어떤 스트레스가 있었어? 덕분에 폭식하지도, 구토로 이어지지도 않았다. 왜 처먹은 거냐며 자책하지 않았고 먹은 후의 행동 역시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평생 이렇게 끊임없이 마음과 대화하며 살아야 할지도 몰라. 그래도 괜찮겠어?
길거리에 버려두었던 나를 주워 탈탈 먼지를 털어냈다. 이젠 무슨 일이 있어도 버리지 않겠다. 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