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요즘 걷는 이유
아무래도 안 되겠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가방에 생수 한 통과 가벼운 책 한 권 넣었다. 귀에 무선 이어폰을 끼고 밖으로 나갔다. 앗. 선글라스도 챙겨야지.
아파트 정문을 지나 아들이 다니는 중학교를 끼고 10분쯤 걷는다. 걷다 보면 새로 지어진 큰 아파트 단지 사이로 쭉 펼쳐진 길이 갑자기 나온다. 자전거도로도 있고 걷기에 좋다. 졸졸 흐르는 시내도 있어 나름대로 운치 있다. 이곳이 내가 요즘 좋아하는 길이다.
올해 초부터 불안이 찾아왔다. 친구도 아니면서 친한 척하며 들러붙었다. 떨쳐버리면 되지만 쉽사리 떠나지 않았다. ‘에이, 산책이라도 하자!’라며 무작정 밖에 나갔다. 계획 없이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곳이 이 산책로였다.
집 가까운 곳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다 걸으면 30분쯤 되는 이 코스가 괜찮았다. 도중에 그네 흔들의자도 있어 잠깐 쉬기에 안성맞춤. ‘바로 여기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때부터 마음이 불안하고, 근심이 끊이지 않을 때 이곳을 찾았다.
장소도 장소이지만 걷다 보면 유익이 많다. 집에서 이곳까지 와서, 한바퀴 돌고 집에 가면 약 한 시간이 지난다. 5~6000보 걷는다. 전문적으로 러닝을 하는 사람들은 비웃겠지만 나름 괜찮은 운동이 된다. 이곳의 유익은 그것만이 아니다.
여러 걱정과 불안을 달고 걷기 시작한다.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걷다 보면 조금씩 그것들이 옅어진다. 그러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나마 괜찮은 생각들이 떠오른다. 조금 더 걷다 보면, 그 생각들도 희미해진다. 그냥 약간 숨을 헐떡이며 걷는 데에만 집중한다. 그러다 흔들의자가 나오면 앉아 잠깐 쉬고 물을 마신다. 갖고 온 책을 읽기도 한다.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는 것. 고민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최고의 유익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길을 ‘망각로’라 부른다(하지만 이 길을 벗어나는 순간 다시 고민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건 어쩔 수 없다).
일주일에 망각로를 3~4번은 가는 것 같다. 운동과 담쌓은 내가 그렇게 나가는 것을 보며 아내가 놀라기도 한다. 고민과 걱정이 다 없어진다면, 제일 좋겠지만 그게 어찌 가능할까. 최대한 그것들을 잘 다루며 스트레스를 잘 풀어야겠지.
아마 내일도 그곳에 가야 할 것 같다. 내일은 가끔 날라오는 오리들도 봤으면 좋겠다. 걷기에 조금 더운 날씨이지만, 분주한 내 마음까지 날려버릴 시원한 바람도 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