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괴산 <숲속 작은책방> _2015년 12월
2015년의 마지막 날, 경기도 광주 부모님 댁을 가고 있었다. 낮이라 막히지 않고 뻥 뚫릴 줄 알았는데, 이게 웬일. 차가 많다. 해돋이를 보러 다들 일찍 퇴근하고 길을 나섰나보다.
저 멀리서 표지판이 보였다. ‘괴산’. 뭐에 홀린 듯, 괴산 IC로 급히 차를 돌렸다. 그곳에 특별한 책방이 있기 때문이다. 전부터 가고 싶었던 곳 <숲속 작은책방>.
내비게이션을 다시 수정하고, 찾아갔다. 고불고불한 시골길이 계속 이어진다. 뒤에 앉은 아이는 속이 안 좋아 보인다. 약간의 후회도 들었다.
‘책방 하나 가는데, 이렇게 고생을 해서 가야 하나?’
30분 쯤 갔을까. 드디어 도착. 책방 이름과 너무 잘 어울리는 풍경이다. 큰 나무들이 무성한 숲, 그 사이에 책방이 자리하고 있다. 예쁜 팬션 같다. 그러고 보니, 위치한 동네 이름도 예쁘다. ‘미루마을’.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집들도 정갈하고 아름답다. 마치 유럽의 마을이라 해도 믿을 만큼. 나중에 인터넷을 찾아보니 계획에 의해 만들어진 귀촌마을이란다.
책방인데도, 일반 가정집 같다. 떨리는 마음으로 들어섰다. 날이 날이니만큼 다른 손님은 없었다. 주인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아 주셨다. 전에 읽었던 『유럽의 아날로그 책공간』을 쓰신 분이다. 많은 의미를 주었던 책의 저자를 바로 앞에서 보다니... 신기했다. 그 책과 『누가 그들의 편에 설 것인가』를 읽었다 하니까 반가워하신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책방을 구경하며, 아주머니와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었다. 처음 보는 주인장과 다정스레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 또 어디 있을까.
눈에 띈 것은 책 띠지. 손수 다 쓰신 것. 예쁘고, 의미가 있어 도서관 관계자들을 비롯한 손님들이 많이 가져가신단다. 단순히 책을 파는 목적이 아닌, 책을 추천하며 한 자 한 자 써 내려갔을 정성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거실 벽면을 가득 채운 서재도 “이런 서재는 처음이지. 어서 와!”라고 말하는 듯하다. 어린이 책과 다양한 소품도 눈에 띈다. 2층은 북스테이를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어디를 둘러봐도 책 사랑이 느껴진다. 자신의 집을 매일 오픈한다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유럽의 아날로그 책공간』에서 주인장은 이렇게 말했다.
책을 읽지 않으니 동네마다 서점이 죽고, 누구도 시를 기억하지 않으며
문학에 몰두하지 않는다. 어두컴컴한 골방에서 엄마 눈을 피해
몰래 책을 읽던 기억은 몇몇 이들의 과거 속에 박제되어 버리고
영혼의 문구를 찾기 위해 시집을 뒤적이며
밤새워 썼던 편지 한 통의 설렘은 잊혀진지 오래다.
책의 운명은 점차 쇠락해가고 언젠가는 종이로 만든 책은
소멸되고야 말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지만
이를 걱정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12쪽)
이런 위기감과 책에 대한 애정이 더해져 이렇게 멋진 책방이 만들어졌으리라. 우리나라 각지의 작은 책방 분투기를 모은 책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우리가 원하는 책방은 그보다는 좀 더 적극적인 책의 순환과 판매였다.
사람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 널리 읽혔으면 좋겠는 책,
작은 출판사의 좋은 책이지만 마케팅 기회가 없어 독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책, 이런 책을 적극 추천하여 팔고 싶었다.
묻혔던 좋은 책이 빛을 보고, 그로써 좋은 저자들이 계속 책을 써낼 수 있고,
심지 굳은 작은 출판사들이 버텨나갈 수 있는
그런 책 시장의 선순환을 꿈꾸었다. (95쪽)
이 곳은 베스트셀러를 우선적으로 파는 시장 원리가 통하지 않았다. 정말로 좋은 책을 선별하고,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곳이었다. 서점이니 어느 정도 매출이 있어야 할 텐데, 주인장의 착한 마음이 느껴진다.
이곳만의 특징이 있다. 들어가면 꼭 책을 사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 강매하려는 것 아냐?’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공간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는 생각이 든다. 이곳을 방문하면, 세계 책마을을 누비며 모은 어린이 책, 다양한 팜업 책 등 신기한 책과 소품에 놀란다. ‘책을 사는 건 당연하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서점이란, 그곳에 들어가면 반드시 책을 한 권이라도 사들고 나와야 하는 곳.
그곳에서 내게 필요한 정보를 얻었거나 친구와 만남의 장소로 이용했다면
더더욱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책 구매 행위로 치러야만 하는 곳.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 39쪽)
주인장이 추천해 준 무민 책과 『작은 사람』이라는 책을 샀다. 아이는 책방이 낯선 지 약간 쭈뼛하다 책을 받아들으니 기분이 좋아진 듯하다. 늦지 않게 올라가야 돼서 아쉬운 마음에 발걸음을 옮겼다. 날씨가 풀리고, 책방 정원에 봄꽃이 만발할 때 다시 들르고 싶다.
그땐 미리 예약해서 책과 함께하는 북스테이도 즐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