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문중일기 24화

아는 만큼, 보이는 만큼

라카페 갤러리, 윤동주문학관, 서촌한옥마을_2016년 1월

by Philip Lee

제주도 여행에 들떠 있었다. 겨울 제주도 모습은 어떠할까? 장모님과 형님네까지 함께하기에 더 기대했다. 부푼 마음으로 짐을 챙기던 그때, 뉴스가 연이어 터졌다. ‘제주도 수십 년만의 한파, 폭설...’ 결국 비행기는 뜨지 못했고, 부랴부랴 항공권과 숙소, 렌터카를 취소해야만 했다. 갔어도 분명 고생했을 거야’라고 마음을 달랬다. 그나저나 남은 휴가는 어떻게 보내야 할까? 다음날, 오랜 친구와 종로에서 만났다.


부암동 라 카페 갤러리


잡지 기자로 일하는 친구. 설 연휴 전에 취재를 마쳐야 한다고 툴툴댄다. 몇 년 만에 만났지만, 어제 만난 것처럼 친근하다. 경복궁역에서 버스를 타고 오르막길을 굽이굽이 올라, 자하문 고개 역에 내렸다. ‘자하문’의 공식 명칭은 ‘창의문’, 북문(北門)으로도 불린다. 서울 성곽을 쌓을 때 세운 서울 사소문(四小門)의 하나로 창건된 것이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우진각 기와지붕으로 사소문 중에서 유일하게 완전히 남아 있는 문이란다.


그러고 보면, 서울 곳곳에는 눈여겨보지 않으면, 쉽사리 지나치고 마는 유적이 많다. 북악스카이웨이 옆길로 올라갔다. 요즘 많은 이가 찾는다는 부암동이다. 언덕길을 몇 분 걷다 보니, 손으로 쓴 빨간 간판이 보인다. ‘라 카페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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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에 들어가 보았다. ‘라 카페 갤러리는 생명・평화・나눔의 세계를 열어가는 비영리 사회단체 <나눔문화>에서 운영하는 좋은 삶의 문화공간입니다.’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조그만 카페와 책방이 함께하고, 그 옆엔 박노해 시인의 사진을 전시하고 있었다.


지금은 <카슈미르의 봄>을 전시중이다. ‘카슈미르’? 생소했다. 카슈미르는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분쟁지역이었다. 사진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사진 속의 사람들은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슬픈 표정도 있지만, 웃는 얼굴 역시 있다. 1947년부터 계속된 분쟁 지역, 그 땅에도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던 것이다. 괜스레 코끝이 찡해진다. 사진마다 박노해 시인의 짧은 글이 쓰여 있다. 사진과 글을 보며, 그 땅을 직접 본 시인의 마음을 헤아린다. 한 글이 눈에 밟힌다. <동 트는 달 호수>라는 글.


우리들 고통과 슬픔은 끝이 없겠지만

우리들 사랑과 희망 또한 끝이 없으니.

오늘도 새로운 태양이 처음인 듯 떠오르고

오늘도 새로운 생(生)이 첫마음의 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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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나는 ‘카슈미르’라는 곳을 알았고, 그곳 사람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했으며, 그들의 눈물이 걷혀지길 기원했다. 밖으로 나왔다. 갤러리 주위엔 의자, 돌멩이 등의 소품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내 눈을 사로잡았던 건 정갈한 소품만은 아니었다. 여기저기 틔운 푸르른 움이었다. 이 생명력이란... 유난히 몸을 움츠리게 만들었던 계절, 그 추위를 뚫고 이제 봄은 오나보다.


윤동주 문학관


‘윤동주 문학관’. 자하문 건너편이다. 부러 찾지 않으면 금세 찾을 수 없다. 이런 높은 곳에 문학관이라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들어가서 둘러보니 끄덕여졌다. <별헤는 밤>, <자화상> 등의 대표작들이 이 시기에 쓰였단다. 당시 시인은 이곳 인왕산에 올라 시정(詩情)을 다듬은 것이다. 이곳을 빼놓고는 윤동주의 작품세계를 말할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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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전시실인 ‘시인채’에 들어서니, 제일 먼저 우물 모형이 보인다. 그의 시에 많은 모티브를 주었다던 우물이다. 시인과 관련된 것들이 그곳에 놓여 있었다. 시인의 다양한 사진과 친필원고 영인본... 시인은 지금 없지만, 친필은 남아 그의 시와 삶을 증거한다. 제2전시실 ‘열린 우물’. 이름처럼 실제 우물 아래 있는 느낌이다. 차가운 시멘트벽이 주위를 감싼다. 긴 벽 사이로 올려다 보이는 파란 하늘. 사실, 문학관은 버려져 있던 청운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한 것이다. 물의 흔적은 아직도 벽에 남아 있다.


‘열린 우물’을 지나면 마지막 제3전시실 ‘닫힌 우물’에 이른다. 조그만 의자에 앉아 윤동주의 삶과 시세계를 담은 영상을 감상했다. 해방을 6개월 남겨 두고, 타국의 형무소에서 쓸쓸히 죽어간 시인. 영상은 끝났지만 금방 일어날 수 없었다. 감옥 같은 어둑한 전시실에서 잠시 회한에 잠겼다. 윤동주의 마지막 심정은 어떠했을까? 끝내 해방된 모국을 보지 못한 그의 마음. 나는 헤아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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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 뒤로 펼쳐진 ‘시인의 언덕’에 올랐다. 겨울 바람이 매서웠다. 눈발도 날린다. 곳곳에 윤동주 시인의 시가 새겨져 있다. 큰 돌에 새겨진 대표작 <서시>를 조용히 읊어본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칠흑 같은 일제 강점기, 그 속에서도 하늘을 노래하고 별을 노래했던 윤동주. 그는 이제 하늘에 있지만 그의 노래는, 그의 시는 아직도 우리의 정신을 일깨우고 있었다.


서촌한옥마을


서촌한옥마을에 윤동주 하숙집터가 있다는 문학관 안내인의 말에 발걸음을 옮겼다. 통인시장에서 내려 골목을 따라 걸었다. 요즘 관광객이 몰리는 북촌한옥마을처럼 으리으리한 한옥이 쭉 늘어선 모습을 상상했다. 그렇진 않았다. 그저 골목이 좀 많은 동네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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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어디고, 저기가 어딘지 잘 모르는 상황에서 쭉 걸었다. 정겨운 옛 동네를 방문하는 기분도 들었다. 혼자가 아니라 친구와 함께해서 더 친근하다. 곳곳에 갤러리와 카페가 보인다. 지금은 잘 볼 수 없는 오락실도, 접시, 액세서리를 파는 상점도 보인다. 오래된 서점도 있다. 서촌 골목길의 가게들. 손님을 막 끌어 모으는 마트와 시장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오래 전부터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정돈된 느낌이다.


15분 쯤 걸었을까. 윤동주 하숙집터에 이르렀다. 종로구 누상동 9번지.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과 문과 재학 시절,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문우 정병욱과 함께 하숙 생활을 했다. 지금은 3층 주택이 들어서 있다. 한마디로 ‘터’일 뿐. 대문 옆엔 조그만 현판만 덩그러니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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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숙집 근처를 윤동주 거리로 조성하든지, 시인이 이곳에 살면서 썼던 시를 전시하면 어떨까. 다른 시인도 아닌, 국민 시인이라는 윤동주 아닌가. 내년이 그의 탄생 100년이라는데... 우리네 삶의 터전 곳곳에 시가 자리하고, 누구나 서너 편씩 시를 읊는 모습이 아직까진 요원해 보인다.


계획하지 않던 짧은 종로 여행. 아니, 여행이라기엔 너무 짧았던 시간이다. 그럼에도 곳곳에 볼 것이 많았고, 느끼는 것도 많았다. 사전에 자료를 찾아보고 갔었다면 훨씬 풍성한 시간이었으리라. 유홍준 교수가 강조했던 말이 떠오른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


치열한 삶에서 쉼표 하나를 찍은 기분이다. 문득 주위의 여러 모습들이 떠오른다. 시시각각 변하는 가로수 색깔, 자주 타는 버스 운전사 아저씨, 수백 가지 표정이 있는 아이 얼굴, 매일 같은 소리로 아침을 알리는 참새와 까치... 그것들을 자세히 보리라. 어떤 시인은 이렇게 노래하지 않았나.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풀꽃>, 나태주


<이제 여기 그너머> 7호(2016년 봄)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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