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문중일기 25화

마천루와 옛 보물이 공존하다

1년만에 쓰는 대만 여행 (1) / 타이베이 101타워,국립 고궁박물원

by Philip Lee
대만 고궁.jpg


작년 1월.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해외 여행을 갔다. 4년 간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온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따뜻하고, 물가가 저렴하고, 가까운 곳으로 정했다(사실, 특가로 나온 항공권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대만이었다.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썼던 글과 사진을 찾았다. 오 마이 갓! 대만에서의 사진이 모조리 날라간 것! 군대간 GD가 ‘영원한 건 절대 없어’라고 외쳤듯, 정말 영원한 건 없나 보다. 글과 내 머릿속 기억을 더듬어 써 보기로 한다. 사진은 항상 백업해 둬야 한다는 진리를 곱씹으며...


나와 아내는 몇 주 전부터 준비를 했다. 인터넷으로 타이베이의 주요 관광지와 식당을 찾고, 도서관에 있는 대만 여행책도 몇 권이나 빌려 읽었다. 여행은 떠나기 전이 제일 행복한 것 같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볼까.... 아이도 처음 타는 비행기에 설레나 보다(사실, 처음은 아니다. 세 살 때 제주도행을 탔었는데, 기억 못할 뿐).


만반의 준비를 하고, 대만으로 출발했다. 영하10도를 훌쩍 넘는 한국을 떠나는 것 자체로 기분이 좋았다. 간절했던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세밀하게 세웠던 계획은 처음부터 어그러졌다. 비행기가 연착되어 거의 두 시간이나 늦게 도착한 것이다. 얼른 도시철도를 타고 타이베이 중심으로 향했다.


미리 약속했던 후배와 만났다. 현지에서 공부중이다. 시간이 촉박해, 찾아 두었던 맛집은 가지 못했다. 아쉽지만 그냥 기차역의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메뉴는 샤오롱바오(만두), 볶음밥, 계란 전병, 오이 무침. 평범한 음식(우리 식으로 하면 백반)이었지만 시장이 반찬이다. 어느 맛집보다 맛있었다. 후배와도 그동안의 회포를 풀었다.


마천루에서 땅을 보다


호텔에 짐을 풀고 곧바로 나왔다. 벌써 저녁 6시. 도시의 랜드마크, 타이베이 101타워로 향했다. 한국에서 티켓을 구매한 우리는 스마트폰을 보여주며, 티켓을 받으려 했다. 그런데, 확인메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웬일.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다른 관람객들은 아무 탈 없이 다들 잘 올라가는데.... 왜 이렇게 되는 게 없지? 십 분도 넘게 직원과 실랑이를 해야만 했다. 결국 다시 티켓을 구매했다. 찝찝함을 뒤로 하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5, 6, 7... 45, 46, 47.... 82, 83, 84... 순식간에 올라간다. 귀가 먹먹해진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엘리베이터임을 몸으로 느낀다. 37초 만에 89층 전망대 도착. 힘들게 줄을 서서 기다린 수고를 보상이라도 받는 듯 했다.


얼른 창가로 달려갔다. “와~” 관람객들이 일제히 탄성을 지른다. 이렇게 야경이 멋있다니.... 저기 아래에 수많은 불빛이 반짝인다. 밤하늘에 별이 반짝이는 것만 같다.


화려한 조명, 멋진 건물, 좋은 차... 아무리 좋고 크고 멋진 것도 위에서 보면 다 똑같다. 그러고 보면 한국에서 내가 끙끙 앓고 고민하던 문제들. 그것들도 나중에 돌아보면 그리 큰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제에 사로잡혀 지금 이 순간뿐인 현재를 놓치는 어리석음도 없어야겠다.


91층 아웃도어 전망대에서 다시 한 번 야경을 바라보았다. 찬 공기에 노출되어서인지 더욱 아슬아슬하다. 대만에서의 하루가 저물어간다.


과거를 걷다


호텔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섰다. 일정이 빡빡해 빨리 움직여야 한다. 전철과 버스를 타고 국립 고궁박물원에 갔다. 이곳은 고대 중국의 보물과 미술품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다. 무려 75만 여 점에 달하는 소장품을 한 번에 공개할 수 없어 3~6개월마다 교체하며 전시한다. 다 보려면 무려 8년이나 걸린단다. 못 본다는 얘기다.


주요 보물이 있는 3층부터 관람했다. 고궁박물원에서 제일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취옥배추’가 보인다. 옥을 배추 모양으로 조각한 것이다. 조그마한 작품 주위로 사람들이 가득하다. 사람들을 헤치고 보물 앞으로 갔다. 경이롭다. 어떻게 옥으로 배추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배추 위에는 여치까지 있다. ‘이 정도는 돼야 정교하다고 할 수 있지!’라고 뽐내는 듯 정교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바로 옆에는 ‘육형석’이 있다. 삼겹살 모양의 돌이다. 고기의 비계와 껍질이 제법 선명하고 부드러워 보인다. 당장이라도 맛보고 싶어진다. 왕관이나 칼 등 엄숙한 것만이 보물이 아니다. 당장 옆에서 볼 수 있는 배추와 고기를 이토록 아름답게 조각하다니... 그네들의 해학이 느껴지는 것 같아 유쾌하다.


이외에도 시대별 서화, 도자기, 자수, 문헌 등 중국 왕조들의 보물들이 곳곳에 가득하다. 다리가 아프도록 구경했는데도 ‘수박 겉핥기’로 돌아본 셈이다. 중국과 중국미술에 대한 조예가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이곳과 자주 비교되는 곳은 역시 중국 베이징의 국립 박물관이다. 그곳의 소장품이 더 많고, 규모는 더 크지만, 전시품의 질과 가치는 대만 고궁박물원을 훨씬 앞선다고 한다. 대만 초대 총통인 장개석 총통이 본토에서 대만으로 물러날 때 중국과 자금성의 보물 중 제일 가치 있는 것만 모두 긁어 와서 그렇단다.


공산당에 패해 내쫓겼던 장개석. 그 황망하고 정신없었을 때. 그가 결사적으로 취했던 건 가치 있는 보물이었다. 보물만 손에 넣으면, 언젠가는 본토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걸까. 그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가 챙긴 값진 보물을 보며 감탄하고 있다. 지도자의 혜안이 이래서 중요하다. 문화를 중시하는, 역사를 중시하는 그의 모습에서 대만의 저력을 느낀다.


현대 기술의 결정체인 ‘타이베이 101타워’. 지금도 수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는 화려한 보물. 대만은 상반되는 이 두 가지를 갖고 있었다. 마천루와 보물이라니... 이 두 가지가(각기 다른 매력으로) 전해 주는 신비로움에 빠져 사람들은 지금도 대만으로 발걸음을 옮기나 보다.


기술의 힘과 문화의 힘. 어떤 것이 더 중요한 것일까. 최소한 이 곳에서는 둘이 공존해야 한다고 말한다. 마천루의 아찔한 높이와 옛 보물의 상서로움에 취해 스스로 되뇌어 본다. 살아갈 미래가 중요한 만큼 살아온 과거도 중요한 것이라고... 미래를 계획하고 꿈꾸듯, 과거도 잘 갈무리하고 기억해야겠다고...


(덧붙여서, 원래 한 편으로 쓰려 했는데, 쓰다 보니 길어져 두 편으로 나눈다. 아싸, 일타 이피. 2편은 커밍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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