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만에 쓰는 대만 여행 (2) / 단수이 홍마오청
현지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계란 전병과 또우장과 볶음밥. 또우장은 대만의 국민조식이라 불린다. 두유와 비슷하다. 식당은 깔끔하진 않다. 방금 사용한 듯한 만두 찜 용기는 여기저기 널려 있고, 러닝셔츠만 입은 주인 아저씨는 청결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래도 밥맛은 괜찮다. 계속 느끼한 음식만 먹었는데, 몸이 개운해진다. 처음 접한 현지 음식이 그리 싫지는 않은 듯 아이도 허겁지겁 먹는다. 사람은 역시 어딜 가든 적응되나 보다.
단수이에 갔다. 역시 지하철로 움직였다. 제일 먼저 예쁜 가게와 맛집이 모여 있는 ‘빠리’에 갔다. 배를 타고 가야 한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했나. 너무 추웠다. 하긴. 한국도 추우니 여기도 추운 게 당연했다. 따뜻함을 예상하고 온 곳인데.... 왠지 속은 느낌이다. 뭐, 날씨는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거니까....
반오픈 식의 배라 매서운 강바람을 제대로 맞으며 도착했다. 날씨가 이러니 여행책에서 본 활기찬 광경과 사뭇 다르다. 가게도 절반은 닫혀 있다. 우리나라 10월의 해수욕장 분위기가 이렇지 않을까. 그래도 이곳의 명물 ‘대왕오징어’는 먹어야겠기에 그나마 사람이 모여 있는 가게에서 오징어 튀김을 사 먹었다. 평소 같았으면 맛 평가를 해 댔던 우리 가족들은 연신 집어넣기에 바쁘다. 맛보다는 의무감으로 먹은 것 같다. “이거 하나 먹으러 추운데 여기 온 거야?” 속으로 툴툴대며 얼른 다시 배를 탔다.
다시 단수이. 좀 걸으니 붉은 벽돌로 지은 아치형의 건물이 보인다. 홍마오청이다. 전형적인 유럽 건물의 모습. 이곳은 1629년 단수이를 침략한 스페인이 대만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한 발판이었다. 그 옆에는 옛날 영국영사관 건물이다. 1867년부터는 백 년 넘게 영국의 영사관으로 사용된 곳이다. 조그만 박물관 같다. 큰 식탁, 샹들리에, 나선형 계단, 아궁이... 과거 유럽인의 생활상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예쁜 건물과 잘 정돈된 정원의 모습은 이내 추위에 지친 마음을 풀어 주었다. 때마침 궂은 날씨도 개어 따뜻한 햇살을 내리쬔다. “역시 겨울엔 따뜻한 곳에 와야 돼!” 다시 기분이 좋아진다. 연신 사진을 찍었다(사진이 날아간 것이 못내 아쉽다. 머릿속엔 기억되어 있으니 그나마 다행).
옆에는 진리대학이 있다.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촬영지로 유명해진 곳이다. 서양식 스타일로 지어진 대만 최초의 대학. 대만 오기 전, 늦게나마 보길 잘했다 생각하며, 영화 속 주인공들이 걸었던 곳을 밟았다. 기분이 묘했다.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숙소로 발걸음을 옮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홍마오청은 스페인의 침략을 증명하는 대표적인 곳 아닌가. 대만 사람들은 자존심도 없나. 이런 곳을 왜 이렇게 관광지로 만들었지? 그것도 이렇게 예쁘게...’
순간 한국에서의 나의 모습도 겹쳐졌다. 요즘 TV를 보면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많이 나온다. 그들의 대부분은 남산, 홍대, 경복궁 등 우리가 알만한 곳을 간다. 그렇지만 ‘서대문 형무소’, ‘판문점’ 등을 간 사람들도 있었다. 의아하게 생각했다. “왜 하필 거기를?” 방송 직후, 각종 뉴스에서도 그들의 역사의식을 칭찬했다.
나라마다 숨기고 싶은 역사가 있을 것이다. 방문하면 아픔과 슬픔,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곳... 가 봐야 하는 건 알지만 왠지 꺼려진다. 웃고 즐기며 사진 찍는 관광지로는 여겨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곳에서는 침략의 장소가 버젓이 유명한 관광지로 대우받고 있었다. 가슴 아픈 역사가 되풀이 되어선 안 됨을 입증하는 대만인의 의지일지도 모른다.
서대문형무소나 판문점에 가는 것(외국인을 포함)이 전혀 의아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모양새가 되면 어떨까. 학생들의 교육용 코스로만이 아니라, 연인들이 데이트 하러 가고, 가족들도 나들이 가는...
그곳을 밟으며 선조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곳에서 사진을 찍으며 선조들과 교감하는 것. 더 나아가 과거의 아픈 역사를 보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숙고하는 것. 이것은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산교육이 되지 않을까.
홍마오청 입구에는 스탬프가 있다. 아이는 몇 번이고 스탬프를 찍으며 즐거워했다. 기념품 가게도 있었다. 거기엔 마그네틱, 엽서도 있고, 레몬홍차 등의 음료수도 있다. 심지어 입장권마저 예쁘다. 대만에서의 두 번째 날은 오래도록 기억이 남았다.
(1년만에 대만 여행을 글로 쓰니, 그때의 추억이 떠오른다. 역시 여행은 갖다와서가 중요하다. 잘 정리하고 기록해야 여행이 완성된다. 1년만에 드디어 대만 여행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