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문중일기 28화

과거와 현재, 고양이와 사람

1년만에 쓰는 대만 여행(4) / 허우통 고양이마을 , 지우펀거리

by Philip Lee
허우통.jpg 펫이슈 사이트에서 퍼왔습니다(http://m.petissue.co.kr/news/newsview.php?ncode=106562456404648)


다음 목적지는 허우통. 이곳은 고양이 마을로 유명하다. 탄광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마을도 폐허가 되어갈 무렵 마을 사람들은 길고양이들을 하나둘씩 받아주었다. 고양이 수는 점점 늘어 고양이 마을이 된 것이다.

역에서 내리자마자 고양이 캐릭터가 그려진 마을지도가 눈에 들어온다. 곳곳에 고양이 벽화와 인형이 가득하다. 고양이가 관람객을 맞이하는 느낌이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어.”


한가로이 마을을 걸었다. 실제 고양이들이 거리에 있었다. 한국의 길고양이들과는 달리 피하지 않고 온순히 앉아 있다. 손을 대도 꿈쩍하지 않는다. 매일 찾아오는 관광객들의 손길이 익숙한가 보다. 고양이를 위한 집과 먹이도 곳곳에 위치해 있다.


우리나라에선 갈수록 길고양이를 향한 범죄가 늘어난다. 그들을 찌르고, 독약을 먹이고, 불로 태우고... 길고양이의 부정적인 영향이 있고 싫어하는 건 자유겠지만, 생명을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대하고 있다니...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주민들과 관람객의 따스한 손길과 관심을 받고 있는 허우통의 고양이들을 보며, 마음이 편해진다.


탄광으로 사용되었던 건물들이 주위에 있다. 수십 년 전만 해도 석탄을 캐며 땀을 흘렸을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짠하다. 그들이 있던 곳은 이제 수십 마리의 고양이가 자리한다. 과거의 찬란했던 추억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양이들은 어슬렁대며 따스한 햇살을 쬐고 있다.


이곳은 과거의 모습을 여전히 간직하고, 고양이가 편하게 살아가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공존’ 아닐까. 고양이와 사람, 그리고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 허우통은 공존의 마을이었다.


아, 움직일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간 곳은 지우펀. 홍콩 영화 <비정성시>가 여기에서 촬영되었고,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티브를 제공한 곳이다. 오늘의 마지막 방문지이고, 대만의 마지막 여행지라 기대감이 컸다.

내내 친절하셨던 택시 기사님이 ‘지산제’라는 골목길에 내려주셨다. 지우펀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다. 산 중턱을 동서로 연결하는 이 길에서 지우펀 여행이 시작된다. 지산제에는 아기자기한 기념품이 가득한 가게와 음식점, 카페 등이 줄줄이 늘어서있다. 양쪽에 죽 늘어선 가게를 신기하게 바라보며, 거리를 걸었다. 어두워져 가게마다 홍등을 밝힌다. 마치 중세를 탐험하는 모험가가 된 기분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사람이 많았다. 많아도 너무 많았다. 뚫려 있는 모든 길마다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때부턴 걷는 게 아니라 밀려 나는 것. 나의 의지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의지로 움직이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이가 칭얼댄다. 이른 아침부터 걸었기에 충분히 힘들만하다. 어른도 힘든데... 결국 아이를 업었다. 아내와 내가 번갈아 업고, 좁은 골목과 계단에서 사람들을 헤치고 나아가야만 했다. 지우펀이 ‘지옥펀’이라고도 불린다던데...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래도 목표로 했던 ‘수치루’를 방문하기 위해 계속 걸었다. 지산제를 따라 걷다가 사거리 오른쪽으로 나오는 급경사의 계단 길이다. 영화 <비정성시>의 배경이 된 거리로 이곳에 술과 우롱차, 꿀을 섞어 만드는 ‘구이화차주’로 유명한 아메이차주관이 있다.


내게 의미 있는 곳이면, 다른 사람도 의미 있다 생각한다. 당연한 걸 왜 그때는 몰랐을까. 지우펀에 온 사람들이 전부 다 여기로 온 듯 했다. 서울의 출근길 전철을 탄 것처럼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다. 사진이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찍어보지만, 그마저도 의미 없다. 어디에서 찍어도 다른 관람객이 나와 배경을 지우니까.

그래도 빨갛게 저물어가는 노을에 잠깐이나마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그것마저 없었으면 여행의 마지막을 제대로 망칠 뻔 했다.


오늘 둘러본 네 군데. 예류 지질공원, 스펀 기차마을, 허우통 고양이마을, 지우펀 거리... 다들 특색 있고, 의미 있었다. 택시 투어를 이용해서 시간도 많이 아낄 수 있었다. 다음에 또 간다면, 지우펀 거리를 맨 먼저 방문하리라. 낭만적인 홍등은 못 보겠지만, 호젓하게 거리를 걷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히 매력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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