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라노사우루스가 아니란 말야"

낭만사전 #16. 공룡 / 한번 다시 외워 보자.

by Philip Lee
공룡2.jpg


“이게 티라노사우루스인가?”


“아니야. 이거 알로사우루스야. 아빠 그것도 몰라?”


여섯 살 먹은 아들과의 대화. 발음은 좀 어눌해도 공룡 이름은 척척 댄다. 공룡이라고는 ‘티라노사우루스’와 ‘트리케라톱스’정도밖에 아는 나보단 공룡에 있어서만은 확실히 선생님이다.


“이거는 물에 살고, 이거는 목이 길어. 이거는 빨라. 이거는...”

다 비슷해 보이는 공룡 그림. 하나하나 손으로 집어 가며 제법 특징도 잘 잡아낸다. 새로운 공룡을 보면, 눈빛이 반짝인다. 그리고는 책을 가져와서 무슨 공룡이고, 어떻게 읽느냐고 꼬박꼬박 물어본다.


도서관에 가면 공룡 책부터 집는 아들. 무엇이 그토록 아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을까? 공룡의 어떤 점이 아들의 마음에 들었을까? 공룡이 무섭진 않을까? 나도 어렸을 때 그랬을까?


내가 지금 외우고 있는 건 무엇일까.


통장의 잔고, 갚아야 하는 은행 대출 이자, 빼야 하는 몸무게 Kg, 다음번 병원 진료 예약 날짜, 근처에 새로 생긴 아파트 분양 정보, 새로 오픈한 맛집 정보, 가족들 생일, 가고 싶은 나라의 티켓팅 세일 날짜...


순간 씁쓸했다. 물론 필요한 정보들이지만 건조하다. 공룡의 이름을 외우며, 머릿속으로 공룡의 거대한 몸짓을 상상하는 아들에 비해 난 너무 ‘현실적’ 아닌가... 내가 외우고 있는 것들 중 조금이라도 내 가슴을 설레게 하는 건 과연 하나라도 있을까?


나도 예전에 무언가 외웠던 기억이 있다. 나라 이름, 강 이름, 산 이름을 외우고, 한국의 성씨를 외우고, 위인의 이름을 외우고... 공책에 이름들을 쭉 적기도 했다. 그때 부모님께서 쓸데없는 거 왜 외우냐고 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지금 돌아보니 그것들을 외우고 익힐 때 나름 행복했던 것 같다.

다시 외워야겠다. 일단은 공룡 이름부터. 아들과 함께 아이스크림 내기라도 하며 같이 외워 볼까.

티라노사우루스, 메갈로사우루스, 프테라노돈, 오비랍토르, 브리키오사우루스.... 왜 이렇게 이름이 어려운거야?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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